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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의 뿌리 된 근현대 과학자 조명 책 출간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5-15 15: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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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대 김근배 교수팀, 15년 걸친 연구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박광준 기자] 대한민국 최초의 화학자인 리용규(1881~미상), 최근 타계한 위상수학의 권위자 권경환(1929~2024), 우리나라 유기광화학 분야를 개척한 심상철(1936~2002), 갑작스런 죽음으로 많은 의혹이 퍼져 있는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1935~1977), 최초의 대한민국 여성 과학자인 김삼순(1909~2001).


우리나라 역사에서 비록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 있지만, 분명 지금의 한국과학기술의 발전사에 길을 터준 과학기술인들이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우리나라 과학의 토대를 만든 근현대 과학자들을 본격 조명한 책이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전북대학교 김근배 교수(자연대 과학학과) 등 연구진들이 최근 펴낸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이다. 


이 책은 김근배 교수팀의 연구진이 15년에 걸친 아카이브 작업을 바탕으로 총 6권으로 기획된 ‘한국 과학기술 인물열전’ 시리즈의 첫 성과물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근현대 한국 과학기술인을 발굴해 그들의 삶과 자취를 추적한 책이다. 


그동안 근현대 한국 과학기술인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했고, 그들의 이름은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시기 인물의 삶은 친일과 독립운동,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사적 관점에서만 주로 논의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이 책 출간의 의미가 더욱 소중한 이유다.


이 책을 통해 발굴된 근현대 과학기술인은 모두 30명. 한국의 첫 화학자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의 일환으로 만년필용 모란잉크를 개발한 리용규(1881~미상), 세계 최초로 비타민E 결정체 추출에 성공해 한국인 처음으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김량하(1901~미상), 해방 직후 남대문 시장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미국수학회보’에 실린 미해결 문제를 풀어 논문을 발표한 수학자 리림학(1922~2005), 그리고 식민지 여성이라는 이중 차별을 극복하고 한국 여성 최초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아 느타리버섯 인공 재배에 성공한 김삼순(1909~2001)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탁월한 업적들이 감동적인 서사로 적혔다.


이 밖에도 두만강 유역의 모래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해 동아시아에는 다이아몬드가 없다는 통념을 뒤집은 지질학자 박동길, 일본에 양자화학을 처음 도입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리-아이링 이론을 남긴 세계적인 화학자 이태규, 한국인 집단 유전학 연구로 일찍이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잇달아 논문을 발표한 강영선 등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활동한 한국의 선구적인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나비 박사로 알려진 석주명, 페르미가속기연구소 이론물리학부장을 지내면서 ‘노벨상 메이커’로 불린 이휘소 등 한 번쯤 이름은 들어 봤지만 제대로 몰랐던 인물들의 진면목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대한민국 과학자들의 업적뿐 아니라 암울했던 근현대사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굴곡진 삶도 담겨있다. 그러한 이념 대립 하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월북하거나 납북됐고, 이태규와 같은 과학자는 미국으로 떠났다. 


이어 발발한 전쟁과 증폭된 이념 갈등은 여러 과학자의 목숨까지 앗아갔고, 그나마 남은 과학자들조차 이념으로 재단되어 배제되고 지워졌다. 북한에서는 정풍운동으로 과학자들이 숙청당했고, 남한에서는 ‘빨갱이’ 과학자를 언급하는 건 금기시 됐다.


다양한 키워드에 숨어 있는 현대 한국인의 생활과 의식의 기원도 이 책에 담겼다. 1930년대 후반에 지금 우리가 부르는 많은 동식물의 우리말 이름이 지어졌고, 1933년 찰스 다윈 사망 50주년을 즈음해 그의 사망일인 4월 19일이 과학데이로 지정됐다. 


한글날은 음력과 양력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 등 복잡한 논의 끝에 10월 9일로 결정됐다. 해방 후 조선산악회의 시민식목등산회 개최는 1949년 식목일의 제정으로 이어졌고, 1978년에는 식물학자 이민재와 이은상, 이숭녕이 초안을 작성한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됐다.


이 밖에 여성사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이 많다. 김삼순이 입학한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는 기혼자의 재학을 허용하지 않았고, 학생 신분으로 남자를 만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해 ‘50세 이하의 남성과는 나란히 걷지 말 것’이라는 내부 지침까지 있었다. 


석주명이 신여성인 김윤옥과 이혼하면서 ‘시가와 의합치 못한 점, 단추 떨어진 와이셔츠를 함부로 내놓은 점’ 등을 들자, 김윤옥의 친구들이 ‘남성 중심의 전제주의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비난했다는 기사는 남녀평등 의식을 탑재한 신여성과 전통적인 여성상에 머물러 있는 구시대적 제도와 남성이 갈등하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 책에서 언급된 30인의 과학자 중 전북특별자치도 지역과 관련된 과학자도 3명이나 조명되고 있다. 전주사범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뛰어난 생물학자로 양성한 입지전적인 어류생태학자 최기철(서울대)과 군산 태생으로 군산고를 졸업하고 4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논문왕’ 수학자 박세희(서울대), 전주북중과 전주고를 나와 서울대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고 노벨과학상 후보로 거론된 바 있는 화학자 심상철(카이스트) 등이다.


집필에는 전북대 김근배 교수와 공동 편저자인 이은경, 선유정 교수를 비롯해서 근현대 시기를 연구하는 10여 명의 과학사학자가 참여했다. 미생물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등 학부 전공이 각기 다른 저자들은 논문, 저서, 기고와 기사, 회고록, 정부 문건 등 다양한 자료를 살피고 때론 유족이나 제자를 인터뷰하면서 인물의 삶을 폭넓게 들여다보았고, 교차 검증을 통해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회고록과 기고.기사 중 일부는 인물의 생생한 목소리를 글로 만날 수 있도록 발췌해 실었다. 충실한 참고자료 목록은 후속 연구자를 위해 책에 그대로 수록됐다. 


정두현의 이력서(국가기록원 소장), 고려인 화가 변월룡이 그린 조류학자 원홍구의 초상(변월룡 유족 제공), 연희전문학교 언더우드관 옥상에 국내 최초로 설치됐던 천체망원경의 사진(연세대 기록관 소장), 조순탁의 통계역학 관련 친필 원고(아들 조권국 제공) 등 여러 기관과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자료와 사진을 제공 받아 수록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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