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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전시4] 선사.고대관/청동기.고조선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5-04 22:14:49
  • 수정 2024-05-07 18: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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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훈 기자] 청동기시대는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를 주무대로 기원전 15세기 무렵 시작됐다. 일상생활에서는 주로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기가 사용되었고, 청동기는 권위의 상징물이나 의기(儀器)로 일부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벼농사 등 농업이 발달하면서 오늘날 농촌과 비슷한 대규모마을이 생겨났고, 집단내에서는 사회적 계층화가 이루어졌다. 



고조선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 이후 발달된 철기 문화를 꽃피우며  중국 랴오닝 지역과 한반도 서북 지역을 주요 무대로 중국 연(燕), 진(秦), 한(漢)과 대등하게 겨루었다. 특히 고조선은 중계 무역 문제로 일어난 한과의 전쟁에서 1년여에 걸쳐 맞설 만큼 강성한 국가였으나 오랜 전쟁으로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기원전 108년 멸망했다. 고조선이 멸망할 무렵, 각 지역에서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이 일정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 민무늬토기



청동기시대에는 토기 겉면에 무늬가 거의 없는 민무늬토기를 사용했다.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어 다소 거친 진흙으로 빚어 한뎃가마에서 구웠으며 바닥이 납작하고 적갈색을 띈다. 



민무늬토기 아가리에는 간단한 선무늬나 구멍무늬, 점토띠 등이 있는 경우도 있으며, 토기 겉면을 잘 문질러 붉은색이나 검은색을 낸 것도 있다. 민무늬토기는 지역과 시기애 따라 여러 특징을 모이며 꾸준히 사용되었다. 


# 벼농사


잡곡을 위주로 한 밭농사는 신석기시대에 시작됐으나 청동기 시대에 와서 벼농사가 시작된다. 벼농사는 잉여 생신믈의 증가는 물론 농경도구의 발달을 초래했고, 한편으로는 노동력과 수확물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계층이 나타나게 되는 등 사회적인 모습까지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농경문 청동기



농경문 청동기는 앞면에 솟대, 뒷면에 농경 의례를 표현해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에 사용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갈래의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는 마을에 안녕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솟대를 표현한 ㅜ것이다. 뒷면에는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쓰고 벌거벗은 채 따비로 밭을 일구는 남자와 그 아래에 괭이를 들고 있는 사람,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시작해 수확하기까지의 모습을 순서대로 표현한 것이다. 


# 농경과 마을의 탄생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을 바탕으로 정착 생활이 본격화하면서 큰 규모의 마을들이 생겨났다. 주로 움집에서 살았는데, 집터 안에는 화덕 가리, 기둥 구명, 저장 구덩이 등이 있었다. 집터는 면적이 큰 장방형에서 작은 원형.방형으로 변화한다. 마을 유적에서는 논과 밭, 물길, 우물, 마을 전체를 두른 도랑, 울타리 등이 발견되어 본격적인 농경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돌칼의 상징성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돌칼은 규모가 큰 주거지나 일부 무덤에서만 출토되기 때문에, 마을에서도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만 소유했을 것이다. 길이 40cm가 넘는 대형인 것, 손잡이 부분이 과장되어 실용성이 없거나 장식된 돌칼은 신분을 상징하는 의기의 일종으로 단순한 칼 이상의 의미를 지녔음을 알려 준다. 


# 별처럼 달처럼 생긴 도끼들



톱니말 도끼 혹은 바퀴날 도끼라고도 아며, 가운데에 구명이 뚫여 있어 막대자루를 꽂아서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실제무기나 지휘봉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생업 활동


청동기시대에는 쌀농사를 비롯한 농경이 활발했지만, 수렵    과 어로 역시 중요한 생업으로 지속되었다. 대표적인 수렵도구인 돌화살촉과 석창은 청동기시대에 수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준다.

 


최근에는 살대가 꽂혀 있는 돌화살촉과 나무활이 발달되어 당시 수렵 도구의 사용방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짐승을 잡기 위해 땅을 파고 내부에 뾰족한 막대를 꽂아 만든 함정도 확인되는데, 이것은 청동기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수렵 방식이다. 


# 고조선의 청동기



고조선의 특징적인 청동기인 요령식 동검은 몸체가 비파 라는 악기를 닮아 ‘비파형 동검’이라고도 불린다. 전형적인 요령식 동검의 형태는 검몸 아랫부분이 폭이 넓고 둥근 비파 모형을 이루며, 좌우 돌기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검몸과 자루를 따로 만들어 조합하는 형식으로 한 몸으로 만드는 중국식 동검과는 차이가 있다. 요령식 동검은 중국 랴오닝지역을 중심으로 지린, 한반도 등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 고조선의 무덤




고조선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인 탁자식 고인돌은 판돌을 지상에 세워 평면이 네모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 놓는 형태이다. 팽이 모양 토기, 옥 등이 출토되는 탁자식 고인돌은 중국 랴오둥, 지린 지역, 한반도 서북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같은 시기 고조선에서는 고인돌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 돌널무덤, 돌무지널무덤 등이 만들어졌다. 


# 고조선의 토기




고조선의 대표적인 토기(미송리식 토기)이다. 평안북도 의주 미송리의 동굴 유적에서 처음 발견되어 ‘미송리식’이라고 부른다. 이 토기는 납ㅂ작한 바닥에 아가리가 점차 벌어지는 형태로 통통한 몸체에 띠 모양 손잡이가 마주보게 달려 있다. 주로 돌널무덤에서 출토되며청천강 이북으로부터 랴오닝, 지린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같은 시기  청천강 이남 한반도 서북 지역에서는 팽이 모양 토기가 사용되었다. 


# 한국식 동검 문화의 성립



기원전 5세기 무렵 청천강이남을 중심으로 한국식 동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한국식 동검은 요령식 동검과 같이 검몸과 자루를 따로 만들었으나, 검몸이 직선화하고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과 마디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 청동 유물로는 한국식 동검을 미롯해 공구, 거울 등의 의기들이 있다. 이러한 청동기들은 돌무지널무덤, 움무덤 등에서 검은간토기, 덧띠토기, 옥, 돌화살촉과 함께 출토된다. 


# 청동기 만들기




거푸집

청동기는 채취한 광석을 녹여 얻은 구리와 주석이나 아연.납 등을 섞은 용액(合金)을 거푸집에 부어 만든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생긴 거친 흔적을 숫돌로 갈아 날을 세운다. 이러한 과정에는 전문적인 기술이필요하고, 이에 따른 기술의 진보와 향상은 교역의 증대, 생산력의 향상, 사회 분업 등을 가져왔다. 


# 한반도 서남부 지역의 성장




한국식 동검 문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한반도 서남부지역에 서도 강력한 지배자의 출현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대전 괴정동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돌무지널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들에서는 청동 무기, 공구, 의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껴묻거리의 양적.질적 차이를 통해서 사회적 계층이 명확히 구분되는 정치 집단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 명도전



손칼 모양 동전 앞면에 ‘명(明)’자가 새겨져 있어 명도전이라고 부른다. 대개 수십 매에서 수천 매에 이르기까지 나무상자, 단지나 항아리에 담겨 구덩이에 묻힌 채로 발견된다. 


# 철기의 등장




청천강 이남 지역에서는 한국식 동검 문화가 성숙하여 투겁창, 꺾창, 등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고, 청동기 제작 기술이 최고 수준에 이르러 정교한 잔무늬 거울도 제작된다. 고조선은 전국시대 나라들 중 하나인 연(燕)나라와 첨예한 대립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조선은 철기 사용을 통해 더욱 발전했다. 철기 문화는 청천강 이북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어 점차 남부 지역으로 퍼졌다. 


# 고조선과 한(漢)



중계무역으로 성장한 고조선은 한나라의 대규모 침략에맞서 1차 전쟁에서 승리하고 1년여에 걸쳐 겨룰 정도로 강성한 국가였으나,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기원전 1208년 멸망했다 평안도.황해도 지역에서는 고조선의 한국식 동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나무곽무덤이 계속 유행해 옛 고조선 지배 세력들이 자신의 기반을 상당 부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 고조선 문화의 파급





북한강 유역에 있는 가평 달전리 움무덤에서는 배부른 단지, 화분 모양 토기 등과 함께 한국식 동검, 쇠가지창 등이 출토되었다. 기원전 1세기 대로 추정되는 고조선의 특징적인유물이 일괄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기원전 108년 고조선 멸망 이후 유이민들의 이동에 의해 고조선 문화가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파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회에는 세계문화관 그리스.로마를 살펴볼 예정입니다./사진-우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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