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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보원사 터 ‘부처:철조 불 좌상(鐵造 佛 坐像)’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5-07 23: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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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소개된 때는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으로 본격적으로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6세기부터이다. 불상 제작 초기에는 단순히 중국 불상을 모방했으나, 점점 우리나라 특유의 조형감각이 두드러진 불상을 만들게 되었다. 


삼국시대 고구려 불상이 사실적인 인체 표현보다 강건한 기상을 강조했다면, 백제 불상은 정교함과 세련미가 돋보이며 신라 불상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통일신라 불상은 삼국 불상의 특징을 하나로 아우르는 한편, 8세기에는 중국 당나라의 사실적인 조각 양식을 받아들여 조화와 균형을 이룬 이상적인 불상을 만들었다. 9세기부터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유행하지 않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갖춤)을 한 불상이나 지권인(智拳印, 곧추세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손갖춤)을 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 유행했다. 



고려시대에는 새 왕조의 활약을 반영한 거대한 불상과 지역별로 특색 있는 불상을 만들었다. 고려 후기에는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불상을 만들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을 펴던 시기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왕실이나 상류계층에 서도 불상 제작을 후원했고, 조선 후기에는 여성과 지역민의 후원 아래 전국 각지에서 승려 조각가집단을 이루어 불상을 제작했다.



# 부처/철조 불 좌상(鐵造 佛 坐像)/고려 11세기, 충남 서산 보원사 터 출토


쇠로 만든 이 부처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 터에서 옮겨졌다. 두 손이 모두 없어졌지만 오른 손목의 위치로 보아 손갖춤은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향미축지인으로 추정된다. 몸에 비해 큰 머리와 부자연스러운 옷주름 등은 고려 철불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특히 강원도 원주에서 출토된 철불 세 구와 비교하면, 얼굴 모습을 비롯해 왼쪽 어깨에서 한 번 접혀진 편단우견(偏袒右肩, 오른쪽 어깨는 드러내고 겉옷인 대의를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리에 걸친 모습), 왼팔이 접히는 곳에 표현된 리본 형태의 옷주름, 향미축지인의 손갖춤에서 거의 동일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같은 조각가 집단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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