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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에서 바라본 청계천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1-06-20 15: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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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길이 27m, 너비 7m.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원래는 현재의 청계천 2가에 있었으나 1959년에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북악산쪽 신영동으로 옮겨졌다가 1965년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놓았다. 이때 다리의 서쪽에 있었던 수표석(水標石)은 홍릉의 세종대왕기념관에 옮겨졌다.



1441년(세종 23) 수표(水標)를 만들어 마전교(馬廛橋) 서쪽에 세워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해 홍수에 대비했다. 수표가 세워지기 이전에 이곳에 우마시전(牛馬市廛)이 있어 마전교라 불리었다. 그뒤 수표교라 바뀌었고 이 일대 동네를 수표동이라 했다.


마전교는 1420년(세종 2)에 놓아졌다. '동국여지승람', 교량조(橋梁條)에는 수표교로 돼 있다. 화강석을 깎아 만든 석재(石材)를 가구식(架構式)으로 짜맞춰 세운 돌다리다.



기둥의 아래는 거칠게 다듬질 된 네모난 돌로, 위는 고르게 다듬은 네모난 돌로 만들어 2단으로 포개어 쌓았다. 이 가운데 위 4각주(四角柱)는 물의 흐름이 유연하도록 모서리를 물의 방향에 맞춰 배열했다.


모두 9줄 5열로 배열한 돌기둥 위에는 양 끝을 반원형으로 다듬은 굵고 긴 석재를 세로로 걸쳐놓았고, 그 위에 바닥돌을 가로.세로로 짜맞춰 바닥면을 구성했다.



바닥의 양쪽 언저리에 돌난간을 세웠다. 한쪽마다 엄지기둥 11개를 세우고, 그 사이에 동자기둥 1개씩을 세워 6모로 된 난간석을 받쳤다. 난간을 구성하고 있는 부재는 연꽃봉오리.연잎 등을 모티프로 해 설계돼 있다. 이는 조선시대 돌난간의 전형적인 형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1760년(영조 36)에 수리됐다. 이때 다리 앞쪽 하천 바닥에 눈금을 새긴 돌기둥을 세웠다. 이 기둥에는 10척(尺)까지 눈금을 그어 불어나는 물의 양을 측정케 했다 한다. 



한편 교각(橋脚)에도 ‘庚辰地平(경진지평)’이라는 글씨를 새겨 수준(水準)으로 삼았다. 1406년(태종 6)에 인공으로 물길을 뚫어 만든 개천 위에는 돌다리 7개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수표교만이 남아 있다.


다리 곳곳에는 ‘丁亥改造(정해개조)’ ‘戊子禁營改造(무자금영개조)’ 등의 글씨가 남아 있어서 500여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수축됐음을 알 수 있다. 물길을 건너는 통로로서뿐만 아니라 홍수의 조절을 위해 수량(水量)을 재는 구실도 했던 중요한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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