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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화제의 인물] 성악가이자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조수미'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11-30 22:58:59
  • 수정 2021-12-01 09: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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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대한민국의 성악가이자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1962년 11월 22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출생. 프로필상에는 서울특별시라 기재돼 있으나 창원에 있는 성산아트홀 개관 행사에서 자신이 직접 밝힌 바 있다. 


본명은 조수경이였지만 외국어로 'ㅕ' 발음이 힘들어서 조수미로 개명했다. 처음에는 주변으로부터 해외 활동이 많을 것을 고려해 외국식 이름을 지을 것을 권유받았지만, 조수미 본인이 외국식 이름을 짓지 않겠다고 했다.


2006년 파리 독창회의 마지막 앵콜 곡인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로, 1절은 원곡 그대로의 가사로 불렀고, 2절에서는 라틴어로 노래했다.


어렸을 적 글을 배우기 전에 피아노부터 쳤을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다. 부모는 조수미에게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켰다. 부모는 조수미가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할머니가 조수미를 보면서 "저렇게 아이가 영특하면 단명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부모는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지 물었더니 "뭐든지 두드리라. 두드리면 나쁜 기운이 빠져나갈 것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두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한 부모는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어렵게 돈을 마련해 고가였던 피아노를 구입했다. 4살부터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조수미는 이유도 모르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쉬지도 않고 하루에 8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는 노래 신동 소리를 들었는데 조수미를 가르친 선생마다 모두 부모님에게 "수경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노래를 시키셔야 합니다"하고 당부했다고 전한다. 


서울음대 성악과 역대 최고의 점수로 수석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동갑내기 남학생 K와 사랑에 빠지면서 조수미의 학업 생활은 모범생에서 날라리로 180도 달라졌다. 


당시 A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조수미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조수미는 A에게 "나인지 그 여자친구인지 담판을 지으라"고 과감하게 대시했고, 결국 A는 자신의 여친과 헤어지고 조수미와 사귀었다. 그 후 다방, 영화관, 디스코클럽, 여행 등 어느 곳에서든 1년 24시간 내내 A와 함께 하면서 수업은 물론 시험까지 펑크 내면서 선동열 방어율로, 석차는 1등에서 꼴찌로 전락했다. 


당시 이 정도로 깊은 사이였다면 A와 동거 생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조수미는 "상상에 맡기겠다"고 말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조수미의 설명에 의하면, 당시에는 A가 원한다면 성악가의 길도 포기할 수 있었을 정도로 오로지 A와의 결혼에만 마음이 전부 가 있었고, 심지어 A와 함께 태어날 아기 이름까지도 미리 지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조수미의 노래를 직접 듣게 된 A는 유학을 가도록 적극 추천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전두환 정권의 학생통제정책 일환으로 대학 입학정원을 늘린 뒤 성적에 따라서 졸업정원을 조정하는 졸업정원제가 시행 중이었기 때문에, 꼴찌를 계속하다 보면 대학을 졸업하기도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결국 졸업정원제는 FM대로 실시되지 않았다.



조수미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교수들과 조수미의 부모님은 결국 합심해 조수미를 서울대에서 중퇴시킨 후 이탈리아 로마의 명문 음악학교인 산타 체칠리아(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 음악원에 강제로 유학을 보냈다. 


입학시험 때 반주자가 아파 감독관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반주를 자원해 60여 명의 노래를 반주하고 본인도 로시니의 ‘La promessa’를 부르고 합격점을 받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월간 객석 2014년 7월호 참조 조수미의 어머니는 이 때를 회고하기를, A가 인물도 집안 배경도 흠 잡을 데 없는 괜찮은 인물이었는데, A와 열애하면서 조수미가 음악을 놓았다는 것에 A와의 결혼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학 후 몇 달 되지 않아 조수미는 편지를 통해 A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는데, 주변을 통해 알아보니 조수미의 같은 과 단짝친구가 A와 눈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 뒤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독하게 매달려 5년 과정을 단 2년 만에 마치고 졸업했다.


조수미의 옛 연인이었던 A는 1987년 결혼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MBA를 받고 1996년에 귀국해 미국의 모 컨설팅 회사의 서울 지점 파트너로 재직하게 됐다고 한다. 조수미가 외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아진 성악가가 된 후에 조수미의 공연장에 말 없이 관람하고 가기도 했다고 조수미가 언급하기도 했다. 


아직 미혼이기도 하고 바쁜 스케줄 탓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어려운 조수미의 생활 환경상, 자신의 첫사랑인 A에 대한 마음을 아직까지도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조수미는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에 외국인과도 충분히 연애가 가능한 환경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배우자 상대는 반드시 한국인을 원한다고 한다. 



이는 "A와의 첫사랑의 추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조수미가 언급하기도 했다.


그녀는 지병인 자궁근종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됐다. 이 사실은 그녀의 임신설 루머가 퍼지자 본인이 직접 일축하면서 이야기한 부분이며 만약 미래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성악가라는 직업의 생활패턴상 전 세계를 정신 없이 돌아다녀야 하기에, 가정을 꾸린다 해도 정상적인 결혼생활은 어렵다. 1년 365일 중에 330일을 집을 떠나 공연하면서, 개인 시간은 당연히 거의 없고, 2~3년 뒤 공연 스케줄까지 다 짜여져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유명한 성악가들의 삶이 이렇긴 하다. 조수미 본인도 이를 알고 있는지, 결혼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는 듯하다. 자서전에 나온 내용에 의하면, 애견인으로서 커다란 셰퍼드를 공연 중에도 동반하기도 했다고 한다.


앙드레 김과의 관계도 유명하다. 조수미의 회고에 의하면 앙드레 김이 처음 조수미의 공연을 관람한 뒤 당시 조수미의 드레스를 보고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가 입는 것인데 너무 초라하다"면서, 조수미의 드레스를 직접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약 20년 동안 200벌 이상의 드레스를 제작해 주었다고 전한다. 


로마에서 살았기 때문에 AS 로마와 프란체스코 토티의 팬이며 유로 2012 때 트위터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봉헌된 미사에 메인 게스트로 초청되어, 식전 행사에서 아베 마리아와 넬라 판타지아를, 교황 집전 미사 중에 성체 성가를 불렀다.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친서훈장과 기사작위를 받았고, 2020 이스키아 글로벌 필름 앤드 뮤직 페스티벌(Ischia Global Film and Music Festival)에서 음악 부문 아트 어워드를 수상했다. 


2021년 TVN의 예능 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 석학교수로 임명됐다. 임용 기간은 2024년 9월까지다.


데뷔 전에는 카를로 베르곤지와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등의 가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경력이 있다. 또한 이 무렵 7개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986년 이탈리아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역으로 데뷔한 후, 각국 극장에서 공연했다. 1991년에는 필립스에서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을 녹음했고, 1993년에는 데카에서 ‘그림자 없는 여인’을 녹음했다. 이 두 음반은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다만, 이 매의 소리 역은 단역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을 맡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수미가 참여한 마술피리는 3년 안에 3개가 서로 다른 메이저 회사에서 녹음돼 나왔고, 게오르크 솔티 경이 이미 조수미와 계약 중이던 에라토 사를 설득해 데카 레이블의 본인 지휘 음반에 참여시켰을 정도였다. 다만 조수미의 '밤의 여왕'은 너무 기교적으로 예쁘게만 불러서 극의 표현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고, 'Opera Love' 같은 아리아집으로 들어야만 비로소 괜찮다는 평도 일부 존재한다. 


특히 극의 표현까지 생각하면 유명한 크리스티나 도이테콤과 디아나 담라우가 버티고 있고, 이에 비교하면 조수미의 밤의 여왕은 예쁜 꾀꼬리 목소리 같아서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에 조수미의 밤의 여왕을 역대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밤의 여왕 역을 맡았던 유명한 소프라노들도 조수미만큼 정확한 템포와 칼음정으로 부르지는 못하기 때문에 단순 가창력과 기교 한정으로 조수미가 최고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편이다. 또 인간이 부르는 것 같지가 않은 높은 수준의 정확성과 기교 때문에 다른 의미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측면도 있어 조수미 버전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MBC 허준의 '불인별곡(不忍別曲)', KBS의 명성황후의 주제가 '나 가거든' 등의 드라마 OST에 참여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응원가로 유명한 Champions 등이 대표곡이다.



90년대 초중반에 조수미가 맡았던 배역을 보면 리릭 콜로라투라 음역이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보다는 로시니 오페라 히로인이 훨씬 어울린다는 평이 상당수다. 왜냐하면 밤의 여왕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도 악녀 역할이라 드라마티코를 겸비한 소프라노가 맡아야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터키인’ 중 피오릴라는 마리아 칼라스와 체칠리아 바르톨리 못지 않게 또 다른 매력이 들어있는 '최고의 피오릴라' 라는 호평을 많이 받았다.


조수미가 데뷔부터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주연으로 시작했지만, ‘가면 무도회’의 오스카도 찬사를 받았다. 오스카 역은 당시 신예였던 조수미를 카라얀이 점찍어서 캐스팅한 것인데, 활달한 성격을 가진 시동 캐릭터에 잘 맞아서 이 역으로 몇 번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카라얀과 같이 가면 무도회 전곡반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녹음하기도 했다. 다만 이 전곡반은 혹평이 상당하다. 레나토 역의 레오 누치가 매너리즘이 가득한 노래를 들려주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도 전성기 때와는 달리 템포를 늘어지게 설정한 바람에 음악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다는 비평이 상당수. 그나마 구스타보 3세 역의 플라시도 도밍고와 오스카 역의 조수미만 건졌다고 한다.


리골레토의 젤다는 그녀가 무려 15년 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역할이다. 또한 호프만 이야기의 올림피아와 가면무도회의 오스카 또한 뉴욕 무대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메트에서 연기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메트 역사상 최고의 루치아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조수미는 루치아를 메트에서 7번 연기했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여주인공 로시나 또한 메트에서 호평받은 역할이자.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1993년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을 15번의 공연 중 무려 10회를 공연했다.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에서는 2000년에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카라얀이 지휘할 예정이었던 잘츠브루크 페스티벌의 가면 무도회 공연에서도 캐스팅됐는데 카라얀이 급서한 바람에 계획이 무산될 뻔하다가 게오르그 솔티가 대신 지휘한 덕에 카라얀이 구성한 프로젝트는 무사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1990년 가면무도회 잘츠브루크 페스티벌 실황이며 TDK에서 DVD로 출시됐다. 파바로티의 1989년 메트 실황과 도밍고의 1975년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 실황과 더불어 완성도가 높은 영상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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