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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모르게 카메라 설치만으론 주거침입죄 안 돼"...'초원 복집 사건' 판례 바꿨다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03-24 22: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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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식당 주인이 손님의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이른바 '초원 복집' 사건에서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식당에 출입한 것은 영업주의 의사에 반하므로 주거침입죄가 성립된다고 인정한 종래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14대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접전이 이어지던 1992년 12월 11일 벌어진 일이다.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은 그날 아침 부산 남구 대연동의 '초원복국'에 당시 부산시장, 부산경찰청장,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부산교육감, 부산지검장 등 기관장들을 불러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식당에서 나온 발언들은 정주영 후보 측인 국민당 관계자들의 도청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도청에 관여한 3명을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했다.


대법원은 1997년 이 3명의 벌금형을 확정하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 하더라도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이라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24일 대법원이 선고한 사건도 구체적인 사실 관계는 같다.


지난 2015년, 전남 광양시의 한 운송업체가 자사에게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몰래 녹음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식당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당시 전남 지역의 한 인터넷 언론사는 수입이 금지된 '왕겨 펠릿'이란 바이오 연료가 썩은 채 방치돼 인근 주민들에게까지 먼지가 날린다는 점을 지적했고, 위 운송 업체가 이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자 이 운송업체 부사장 A씨와 관리팀장 B씨는 2015년 1월 24일부터 2015년 2월 12일까지 4차례에 걸쳐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상대로 식사 등을 대접한다.


식당 내부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뒤, 기자가 부적절한 요구를 하는 장면을 확보키 위해서였다.


문제는 식당 주인도 이 녹음, 녹화 장치가 설치됐다는 사실을 몰랐단 것이다. 


1심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음식점에 들어갔다면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하여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주거침입죄를 인정했다.


반면 2심은 "불법행위를 할 목적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 때에는 주거자나 관리자 등의 명시적 승낙에 따라 들어간 이상 함부로 주거자나 관리인의 의사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하여 들어간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라면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대법원은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침해되었는지에 따라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식당 주인이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이들의 출입으로 인해 식당 주인에게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되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부사장 A씨와 관리팀장 B씨의 출입 목적을 알았다면 식당 주인이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침해됐다고 평가할 근거가 없다면서 죄가 없다고 봤다.


종래의 '초원 복집' 대법원 판결 중 이날 판결과 해석이 달랐던 부분들은 모두 변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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