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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306] 극단 백수광부, 이성열 연출 '서교동에서 죽다'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3-11-25 19: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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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꿈빛극장에서 백수광부의 고영범 작 이성열 연출의 서교동에서 죽다를 관람했다.


고영범은 1962년 평안북도 출신의 실향민 부모님 밑에서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에서는 신학을, 미국에서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공부했다. 대학원을 마친 뒤 십수 년 동안은 이런저런 방송용 다큐멘터리와 광고, 단편영화를 만드는 한편, 영화와 광고 등의 편집자로 일했고, 그후로는 번역과 글쓰기를 주로 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1, 2》(이승민과 공역)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불안》 《별빛이 떠난 거리》 《나는 다시는 세상을보지 못할 것이다》 《스웨트》 《예술하는 습관》 《우리 모두》 등이 있고, 쓴 책으로는 《레이먼드 카버》, 장편소설 《서교동에서 죽다》와 희곡 & 태수는 왜? 이인실 방문, 에어콘 없는 방, 단편소설 필로우 북_리덕수 약전 등이 있다. 현재 미국에 살면서 집안의 실향민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성열은 연세대 사학과에 입학해 연희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며 연극을 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극단 목화(대표 오태석)에서 연기와 연출을 배우고, 제대를 해서는 극단 산울림(대표 임영웅)에서 연출을 익히며 산울림 소극장의 극장장을 맡기도 했다. 그 후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임명되고 현재는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이다.


연극으로는 <화수조> <아버지와 아들> <햄릿아비> <벚꽃동산> <과부들> <봄날> <여행> <그린 벤치> <자객열전> <미친극> <키스> <야메의사> <굿모닝? 체홉> <햄버거에 대한 명상>과 무용극은 <비천사신무> <두 도시 이야기> <유랑> <운수좋은 날>, 음악으로는 <톨스토이 IN Music> <드라마가 있는 음악회> <파가니니&리스트> ',죠르쥬>, 오페라는 <손탁호텔>(협력연출) 등을 연출했다.


1998 한국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 <굿모닝? 체홉>, 2005 서울연극제 "연출상" , 2007 김상열 연극상 <물고기의 축제>, 2009 서울연극제 "연출상" <봄날>, 작품상으로는 1997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키스>· 2004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자객열전>· 2005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 서울연극제 "우수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여행>, 2006 서울연극제 "우수상" <여행>, 2009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봄날> 2013 이해랑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무대 배경은 상수쪽으로 경사진 연덕을 오르도록 만들고, 무대 좌우 세 개로 나누어진 벽면은 넓은 공간과 통로로 설정되고, 바닥은 과거 화곡동 시절 아버지의 방을 재현시키는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앞 무대 공간은 현재의 편의점이나 병원으로 그리고 과거와 현재로 연출되면서 버스 내부, 진수의 어린 시절, 시장통, 진희의 이혼 이야기 등의 공간으로 사용된다.. 중간막과 배경막을 사용하고 중간막을 출연진이 열고 닫으며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영상을 투사해 진영의 과거를 재현해 내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주인공 진영이 캐리어를 끌고 누나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부터 전개된다.

진영의 회상은 디지털창작콘텐츠과’에 다니는 조카 도연으로부터 시작된다. 도연의 기억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은 시간의 복원을 통해 중2때 이혼한 부모님으로부터 분열되었던 자아를 이전의 시간으로 돌이킴으로써 손상된 시간을 회복시키고 싶은 욕망에서 분출된다. 도연은 자신을 붙들고 있는 과거의 존재들과 직접 부딪히는 기억의 여행을 제안한다. 진영은 홍대 입구 앞 청기와주유소를 지나 서교동 주택과 화곡동 시절로 돌아가며, 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을 대면함으로써 도연은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는다. 연극에서 과거 시간을 제대로 기억하는 인물은 누나 진희와 형 진석이고, 진영의 노모는 여전히 화곡동에서 과일 장사를 하던 시절, 연탄불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아들 진수의 죽음을 머리 속에서 지워내지 못 하면서이런 이야기가 소설로 집필되기 시작된다.


본격적인 공연의 시작에 앞서 무대에 선 배우가 관객들에게 예고한다. 이것은 한 ‘아재’의, 아주 사소하고도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그 말처럼 연극은 한 사람의 오래된 상흔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다. 동시에 관객들은 한 개인의 역사 속 “아프고도 그리운 세계”를 따라 한 시절의 막막했던 삶의 풍경들, 그 안의 화해할 수 없었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관객들에게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 사람,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내레이터인 ‘진영’이다. 1962년생,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재미 작가 진영은 암투병 중인 누나 병문안을 위해 수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그리고 작가를 꿈꾸며 편의점에서 일하는 이십대 조카 도연과의 대화를 통해 차츰 마음 한 켠에 묻어뒀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연극은 진영과 가족들이 재회한 현재 시점에서 출발해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옛 서울 서교동과 화곡동을 오가며 전개된다. 그 시절 진영의 가족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부촌이던 서교동에서 화곡동의 시장통으로 이사하고, 어머니는 간경화로 몸져 누운 아버지를 간병하며 시장에 구멍가게를 열어 생계를 이어간다. 건강을 포기하고 술만 마시는 아버지, 그런 남편과 자식 넷을 건사하기 위해 분투하던 어머니, 어머니의 요구로 남자 형제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던 누나 등 진영에게 가족은 원망과 피해의식, 죄책감이 중첩된 대상이다. 그리고 죄의식의 중심에는 자신이 돌봐야 했던 막내 동생, 진수가 있다. 이제 치매에 걸린 노년의 어머니를 통해서나 가끔 불리는 이름, ‘진수 삼촌’에 대해 묻는 조카 도연에 의해 진영은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그해, 두 명이 죽었다. 한 명은 화곡동에서, 또 한 명은 서교동에서.


기억과 상처에 대한 연극이지만 세대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소탈하면서도 시니컬한 진영은 소위 ‘86세대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기 자신을 반성적으로 들여다보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진영을 통해 한 세대의 내면과 현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영과 대비되는 90년대생 조카 도연은 진영의 이야기의 직접적인 청자이자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글을 쓰는 인물이다. 동시에 단순 청자를 넘어 새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극의 마침표를 찍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글을 쓰는 젊은이의 모습은 아름답다는 진영의 말처럼, 작가는 “도연을 통해서야 전 시대를 들여다보는 일은 가능해지고 이게 이 이야기의 희망이라면 희망이라고 밝힌다.


서진, 박완규, 린다전, 박정민, 김두은, 강해진, 박정현, 이하늘, 신대철, 강민재(아역) 등 출연진의 호연과 열연은 2시간의 공연동안 관객을 감상에 젖도록 만든다.


드라마터그_조만수, 무대_윤시중.김채연, 조명_최보윤, 의상_이수원, 음악_김선.정중엽, 영상_플레이슈터, 디자인_노운, 사진_이노아, 기획_김경회, 무대감독_조문정, 조연출_안현근 등 스텝진의 기량도 드러나 극단 백수광부의 고영범 작 이성열 연출의< 서교동에서 죽다>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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