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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122]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흥국사'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2-04 14:09:28
  • 수정 2024-04-02 04: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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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흥국사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미산(漢美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661년(문무왕 1)에 원효(元曉)가 창건해 흥서사(興瑞寺)라 했다. 원효가 한산(漢山)의 원효대에서 수행을 하던 어느 날, 서쪽 산기슭에서 3일 동안 서기(瑞氣)가 일어 찾아가보니, 현 약사전 자리에서 약사여래좌상이 솟아나 방광하고 있었으므로 이 절을 창건햇다고 전한다. 1,000여 년 동안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다가, 1686년(숙종 12)에 중창했다.


1770년(영조 46)에는 왕이 이곳을 친행(親幸)한 뒤 이 절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여 절 이름을 흥국사로 고치고 망모(亡母)의 원찰(願刹)로 삼아 약사전을 증축하고 미타전을 신축했고, 상궁(尙宮)들이 번갈아 머무르면서 선학(禪學)을 익히도록 허락했다.





1785년(정조 9) 당시 남북양산성(南北兩山城)의 승도대장(僧都大將)이었던 관선(觀禪)과 법헌(法軒)이 중창했고, 1867년(고종 4) 뇌응(雷應)이 약사전을 중건했고, 1876년 칠성각(七星閣), 1902년에는 나한전(羅漢殿)과 산신각(山神閣)을 창건했다. 1904년 10월에는 완해(玩海)를 회주(會主)로 해 만일회를 열었다. 1913년에는 이 모임을 주도했던 해송(海松).뇌응.풍곡(豊谷).호봉(虎峰) 등 여러 승려들이 새로운 건물을 짓고 대가람(大伽藍)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했다.


이 절의 중심 건물은 약사전(경기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인데, 고종 4년(1867)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밖에 1792년(정조 16) 상훈(尙訓) 등이 그린 영산회상도(경기도 유형문화재, 2014년 지정),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극락구품도(경기도 유형문화재, 1991년 지정), 18세기를 전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경기도 문화재자료, 2001년 지정), 괘불(경기도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 등이 소장돼 있다.


# 한미산흥국사 약사전(경기도 문화재자료)






명부전 내부 전경이 약사전은 흥국사의 주불전으로, 신라 문무왕 11년(661) 원효대사가 절을 짓고 흥서사라고 이름했다. 조선 숙종 12년(1686) 절을 다시 지었고, 영조 46년(1770)에는 이 절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하여 절 이름을 흥국사로 고쳤다. 이와 함께 약사전을 크게 중건하고 궁궐의 상궁들이 번갈아 머물면서 선학을 공부하도록 허락했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현판의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조선후기인 고종 4년(1867) 승려 뇌응이 약사전을 다시 세웠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수리해왔다.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정면의 기둥머리에는 용 조각의 안초공이 창방과 평방에 직각 방향으로 놓여 결구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도 대들보 위에 직각방향으로 놓여 합각부의 하중을 받아 측면 평주와 대들보에 분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충량의 머리에 용 조각이 공포와 잘 어우러져 있다. 


# 한미산 흥국사 나한전(고양시 향토유적 제34호)



흥국사 본전인 약사전에서 보아 오른쪽에서 위치하고 있는 나한전은 약사전에 비해 규모가 약간 작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이다. 나한전은 잘 다듬어진 화강석의 기단 우에 4개의 배수구가 있는 직사각형의 초석을 두르고 있고, 정면 가운데 계단을 두었다. 나한전은 광서 4년(1878)에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기둥은 배흘림이 거의 없으며 머리에는 평방과 창방을 돌리고 그 위에 여러개의 공포를 짜 맞춘 맞배지붕 건물로 19세기 후반의 일반적인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은 매우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의 문살로 장식됐고 건물의 측면은 단청을 한 방풍판이 있으나 특별한 문양이나 조각은 보이지 않는다. 나한전 안에는 183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탱화가 보관되어 있다. 원래 나한전 정면에는 초서체로 쓴 뛰어난 필체의 '칠성각'이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이 현판은 조선조 후기의 김성근이 소나무판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고 최근에 법당에 나한을 모신 관계로 나한전이란 현판으로 바꾸고 건물의 명칭을 나한전이라 부르게 됐다.   


# 고양흥국사극락구품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사진/문화재청

흥국사 미타전 안에 봉안된 극락구품도는 가로 205cm, 세로 146cm 크기로, 전체 화면을 상하좌우 각각 3등분해 총 9면에 아미타불에 의한 극락정토의 아미타회상 장면과 왕생 장면을 상품, 중품, 하품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화법을 보면 각 화면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색체는 전체적으로 짙은 녹색과 밝은 황토색으로 채색하고 홍색.백색.청색을 가미했는데, 필선은 모두 가는 선으로 묘사했다. 인물들과 연화 극락조 구름 등은 선세하면서도 유연하게 처리됐고, 인물들의 얼굴자세도 생동감이 있다. 산수표현에 있어 산을 몇 개의 선으로만 처리하고, 나무의 잎을 빗살문으로 표현하는 등 도식적인 느낌을 주나, 공간의 깊이감을 살리기 위해서 장식적인 구름을 배치했다.


# 고양흥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경기도 문화재자료)


사진-문화재청흥국사 미타전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좌상이다. 불산의 머리는 소라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듯한 머리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평편하게 깍은 후 누, 코, 입 등을 조각하여 다소 평면적이지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부드러운 느김을 준다. 두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양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다리는 결가부좌한 자세이다. 양어깨를 모두 감싼 옷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차례로 계단식의 주름을 만들고 있다. 얼굴의 표현이나 옷 주름, 조각 수법 등에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보이고 있고, 1758년에 보수한 기록으로 보아 18세기를 전후한 불상으로 생각된다. 바록 규모는 작으나 매우 부드러운 느낌의 이 불상은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 고양 흥국사 대방(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592호)





대방(大房)은 전통사찰 흥국사에서 가장 큰 건축물로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어 일명 미타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록에 의하면 1904년에 25칸으로 증축했고, 1912년 또는 1915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말 염불이 성행하고 접대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주요 불전과는 다른 기능으로 대방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규모가 큰 절, 특히 왕실의 원찰(願刹)을 중심으로 생겨나게 됐다. 이는 사찰의 여러 기능을 하나로 합쳐 경제성과 합리성을 추구한 점에서 근대 불교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흥국사 대방은 염불당 형식의 큰 방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승방(스님들이 기거하며 불도를 닦는 공간), 부엌, 누각, 마루, 툇마루 등으로 이루어 졌고, 규모는 좌측 2칸은 부엌, 가운데 3칸은 큰 방, 우측 2칸은 승방의 구조이다. 흥국사 대방은 19세기부터 나타난 대방이 부분적 사라진 가운데 조선 말기 대방의 전체적인 형태와 구조를 원형대로 잘 보존하고 있고, 근대 불교 대방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한미산 흥국사 만일회비(고양시 향토문화재 제62호)


조선말기 불교가 왜색화 되고 타락하게 되자 불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이에 뜻이 있는 스님들과 신도들이 흥국사 만일회 결사를 통해 당시 불교계의 타락상을 비판하고 독경.선 수행.염불수행.자작노동으로 지켜야할 청규를 사기시키며이를 통해 기울어가는 나라의 국운을 회복하고, 청정 불법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만일회를 결성했다. 



한미산 흥국사 만일회비는 1904년 해송스님의 주도로 시작돼 일제의 간섭으로 1929년 중단된만일회의 역사를 기록한 비문이다. 흥국사의 만일회는 만일동안 국태민안과 불법옹호 및 청정계율을 통해 스님과 신도들이 부처님 법을 참답게 실천하고자 하였고 이는 나라의 원찰로서 중요한 역할의 사찰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문 앞면에는 흥국사가 신라 문무왕 때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는 내용과 이후 조선 영조 때 흥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뒷면에는 만일회에 큰 사주를 베푼 사람의 명단인 대단월질과 만일회에 참여한 사람의 명단인 대중질이 있다. 앞의 명단에는 대한제국의 고종을 비롯해 순비 엄씨, 귀인 양씨와 승려 및 신도들의 이름이, 끝부분에는 흥국사 주지인 해송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승려와 신도들의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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