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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124] 천(天)의 난(蘭若)가 꽃을 피운 영험기도도량 '천축사(天竺寺)'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12-07 09:36:40
  • 수정 2024-04-02 04: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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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도봉산을 품어 안은 천사 도량에서 근심은 바람되어 맴돌다 사라진다.


천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로 조계사에 속해 있고, 북한산국립공원의 도봉산 선인봉 남쪽에 있다. 678년에 의상(義湘 수도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옥천암(玉泉庵)이라는 암자를 세웠고, 고려 명종 때 영국사(寧國時)가 들어섰다. 1398년 조선 태조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하여 절을 새롭게 고치고 천축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사진출처-천축사

사진출처-천축사1474년 왕명으로 중창했고,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가 화류용상을 절에 바치고 불당 안에 부처를 모시는 불좌를 만들었다. 그 뒤 여러 번 다시 고쳐 지었고, 법당 안에는 석가삼존상과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삼세불화.지장탱화.신중탱화가 모셔 두었다. 대웅전.원통전.독성각.산신각.요사채.무문관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유명하고 백년 묵은 보리수나무가 샘물 위쪽에 있다.





천축사는 서울의 명산 도봉산 동쪽에 자리한 천년고찰로, 서울의 관음 영험기도도량으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천축사의 지형은 깍아지른 듯한 만장봉를 배경으로 소나무.단풍나무.유목(木) 등이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어 마치 닭이 계란을 품은 포근한 정경을 연출하고,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연스런 가람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에 보기 좋은 기도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천축사로 모르는 길은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평탄한 코스로 여름이면 울창한 수풀과 푸르른 수림이 산을 찾는 이들을 반기면서, 가을이면 단풍나무들이 절경을 이룬다. 또 겨울이면 서울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설경이 암벽 곳곳에 펼쳐져, 정말 이곳이 지공이 말한 천축국의 영축산을 본딴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천축사( 寺)라고 이름한 것은 고려 때 인도승려 지공(指空) 이 나옹화상(SA)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데서 유래됐다.


천축사의 연혁은 신라 677년(문무왕 13에 의상대사가 의상대에서 수도할 때, 제자를 시켜 암자를 짓게 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 한 것에서 출발했다. 그 뒤 고려 명종 때에 근처 영국사(寧國寺)의 부속암자로 맥을 이었다.



이후 조선시대인 138년(태조 7)에 함흥에서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면서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렸다고 한다. 또 1474년(성종 5)에 성종의 왕명으로 천축사가 중창됐고, 명종 때에는 문정왕후(文定王后)가 화류용상을 하사하면서 불좌를 만들었다고 한다.


1812년(순조 12)에는 경학스님이 절을 중창했고, 1815년(순조 16)에는 신도 김연화가 절에 희사하면서 절의 사세가 넓어졌다. 이후 1986년에는 상공(相公) 김홍근(金根), 판서(判書) 김보근, 참판(參判) 이장호 등이 불량을 희사해, 19세기 말 천축사는 수많은 신도들에 의해 중수.중창됐다. 



1853년에 주지 순(順이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조성하고, 1885년에 화주 성암응부가 민왕후 및 상궁 박씨등의 시주를 얻어 후불탱, 신중탱, 지장탱를 조성했다. 하지만 현재는 삼신불탱과 신중탱만이 전해진다. 


근대에는 1911년에 화주 보허축전이 관음탱을 봉안하고, 1931년에 주지 김용태가 천축사로 모르는 길을 확장했고, 이후 수많은 신도들이 천축사 도량에 불사했고, 1964년에 무문관을 신축해 년 수행결사의 장으로 만든 것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가람으로 조성됐다. 현공(玄公)스님이 2006년부터 대웅전를 비롯해 독성각.산신각, 요사채를 중수하고, 공양간을 신축해 옛 천축사 가람을 복원한 것이다.




한편, 2009년 11월 5일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92호와 제293호로 지정된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天竺寺毘盧舍那三神佛圖),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天竺寺毘盧舍那三神掛佛圖)와 2013년 5월 23일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347호로 지정된 천축사 목조 석가 삼존불상이 있다.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는 19세기 서울과 경기 지방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당(慶船堂)응석(應碩)이 편수(片手)를 맡아 환감(幻鑑).혜조(慧照).경림(璟林).탄인(呑仁).창오(昌悟) 등이 제작했다. 상궁 박씨와 김씨 등이 명성 왕후를 위해 시주한 불화이다. 가로가 긴 화면이 상하로 구분돼 상단에는 삼신불을, 하단에는 보살들을 배열한 구도로서 독특한 도상을 보여 준다.


사진출처-천축사

천축계곡/사진출처-천축사천축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는 화면에 손상이 없고, 화기가 완전하게 남아 있고 채색도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또한 괘불로서 규모가 크지 않고 연대도 오래되지 않았으나 삼신불을 그린 구성과 양식 등이 19세기 서울과 경기 지방 괘불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제작한 하운당(河雲堂)유경(有鏡)의 남아 있는 작품이 희귀해, 그의 독특한 불화 양식 규명과 19세기 불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전래되는 유물 가운데 문정 왕후가 헌납한 화류수 목조 용상(樺榴樹木彫龍床)이 주목을 끈다. 이것은 대웅전 안에 불탑(佛榻)으로 보존돼 있다. 또한 천축사에는 240여년이 된 둘레 4m,높이 20m의 은행나무가 있어 1981년 10월 27일 보호수로 지정됐다. 그러나 2009년 여름의 모진 비바람으로 쓰러져 죽었고, 이에 7월 15일 서울특별시 지정 보호수에서 해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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