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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125] 삼성산을 주산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안양사'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12-08 08:52:27
  • 수정 2024-04-02 04: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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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사 승탑(앞쪽)과 귀부(뒷쪽)


바위에 새겨진 미륵보살 

[이승준 기자] 안양사는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고종에 소속돼 있는 사찰이다. 삼성산을 주산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다. 삼성산은 관악산에서 갈라져 나온 봉우리로 관악산과 연계된 등산로는 수도권에서 으뜸일 정도로 유명하며, 주말이면 수많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삼성산은 신라 문무왕 때 원효, 의상, 윤필 세 조사가 이 산에 들어와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의상대사가 연주암을, 윤필거사가 염불암을 각각 창건해 수도했다는 설이 있어 삼성산이라고 한다고도 하며, 또한 삼막사에 지공, 나옹, 무학 세분이 주석하셨기 때문에 삼성산이라고 한다는 설이 있다. 그만큼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대웅전과 미륵보살

대웅전안양사 주위에는 안양의 젓줄, 안양천이 흐르고 있다. 이 안양천은 안양뿐만 아니라 수도권 주민들의 휴식처로서 관광지로서 매우 각광받는 지역의 하나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최근 안양천에는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세계의 저명한 예술가, 건축가들이 자신만의 거대 프로젝트를 수행해 안양천 주위에 예술품들을 진열해 놓았고, 안양사 주위에도 많은 작품들이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삼성산과 안양천의 수려한 경관, 더불어 세계적인 예술품들이 조화롭게 구성돼 있는 안양사는 수도권에서 넉넉함과 여유로움과 그리고 또 다른 이색의 문화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의 장이 된 것이다.


심검당

종무소 옆에 있는 명부전

나한전안양사는 고려 태조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그 당시 태조에 의해 7층전탑이 건립됐다고 한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사내에는 7층전탑과 함께 김부식이 글을 지은 비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현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는 귀부가 그 비의 일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안양사는 고려조의 중심사찰 중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안양시는 안양사의 안양에서 그 말을 빌어 도시의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안양은 극락정토을 말하며, 천국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안양시는 하나의 극락정토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신각

범종각

범종각 내 동종


안심당# 안양사귀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귀부만이 남은 탑비. 귀부.비로, 1980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높이 1m, 길이 3m, 너비 2.18m로, 본래는 안양사 뒷산의 일명 거북골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었으나, 지금은 안양사 법당 앞에 옮겨져 있는 이 탑비는 비신(碑身)과 이수(螭首)가 없어지고 귀부만이 남아 있는데, 지대(地臺)는 몇 개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구축되어 있고, 굄대와 귀부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두겹의 선으로 육각형의 귀갑문(龜甲文)을 정연하게 구획지어 배치한 귀부 정상 중앙에 방형의 비좌(碑座)를 설정하고 비좌의 네 면을 연꽃무늬로 장식했다.


똑바로 세우고 있는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모양으로 쫑긋한 두 귀와 툭 불거진 눈, 주름잡힌 코, 쭉 찢어진 입 등을 매우 사실적이고도 생동감있게 표현했고, 목에는 일곱겹의 굵은 선이 새겨져 있다.



땅을 힘차게 짚고 있는 네 발에는 구부린 발가락을 상세하게 묘사했고, 뒤쪽의 꽁무니에는 옆으로 비낀 꼬리를 새기고 있다. 비신이 없어져 이 탑비의 조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실적인 세부묘사, 문양의 도식화 등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미루어보아 신라시대보다는 뒤떨어지는 고려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 안양사 승탑



안양사 승탑은 전통사찰인 안양사(安養寺) 경내 대웅전 앞에 있다. 높이 1.36m, 너비 1.35m이며 탑신과 기단 중석이 없다. 하대석은 높은 2단의 8각 지대석에 복련(伏蓮)을 장식했고, 상대석은 앙련(仰蓮)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8각 3단의 옥개받침 위에 올려져 있는데, 기와골이 선명하고 처마의 상하선이 전각 부분에서 반전한다. 현재 남아 있는 부재로도 원래의 모양이 매우 화려한 승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어 저명한 고려시대 승려의 승탑으로 추정된다.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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