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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126] 삼성산 전통사찰 '삼막사'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2-25 10:10:19
  • 수정 2024-04-02 04: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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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이 절은 677년(문무왕 17) 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潤筆) 3대사(大師)가 관악산에 들어와서 막(幕)을 치고 수도하다가, 그 뒤 그 곳에 절을 짓고 삼막사라 했다.



사지(寺誌)에 의하면, 원효가 창건하고, 신라 말 도선(道詵)이 중건해 관음사(觀音寺)라 개칭했는데 고려의 태조가 중수하여 삼막사라 했다고 전한다. 1348년(충숙왕 4) 나옹(懶翁)이 이 절에 머무르면서 수도했고, 1394년(태조 3)에는 왕사 무학(無學)이 이 절에서 국운(國運)의 융성을 기원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1398년 왕명에 의하여 중건됐다.




그 뒤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1880년(고종 17) 의민(義旻)이 명부전(冥府殿)을 짓고 이듬해 칠성각(七星閣)을 지은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을 지칭해 조선시대부터 남왈삼막(南曰三幕)이라고 했다. 이 절이 남서울의 수찰(首刹)이자 서울 주변의 4대 명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망해루(望海樓).대방(大房).요사.칠성각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전은 조선 초기 무학 대사가 석조기둥으로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양식의 건물이고, 내부에 봉안된 탱화와 범종은 광무연간에 제작된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인 망해루는 청명한 날 서쪽을 바라보면 서해가 보인다고 해 망해루라 일컬었다. 또, 명부전 내부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십대왕(十大王).판관 등의 상이 모셔져 있는데, 십대왕상은 이 절의 보물이라 한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높이 2.55m의 3층석탑과 조선 정조 때의 인물인 김창영(金昌永)의 탄생전설을 지닌 거북모양의 감로정석조(甘露井石漕)가 있고, 자연암석에 양각한 아미타삼존불이 있다.





# 삼막사남녀근석


삼막사남녀근석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 남근석과 여근석으로, 높이 각 150㎝, 110㎝.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 인공을 가하지 않은 화강석으로, 삼막사를 창건하기 이전부터 이미 이 바위들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고 한다.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속전(俗傳)에 의하면,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원효(元曉)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이전부터 이미 이 바위들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고 한다. 이 바위를 만지면서 자식 두기를 원하고 순조로운 출산과 일가의 번영, 무병 및 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4월 초파일과 7월 칠석날 등 이른바 깨끗한 날이면 경향 각지로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촛불을 켜고 또 삼색 과일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린다. 이러한 성기숭배 풍속은 선사시대 이래 현재까지도 무속.풍수신앙.동제.미륵신앙의 전통 속에 어우러져 이어지고 있다.


# 삼막사 마애삼존불



마애삼존불은 자연암벽에 감실(龕室)을 만들고, 거기에 부조(浮彫)한 치성광삼존불(熾盛光三尊佛)로 조선후기(朝鮮後期)를 대표할만한 걸작으로, 석굴사원 (石窟寺院) 유구(遺構)로 전해 오는 중요한 자료이다.


주존(主尊)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의 머리는 소발(素髮)에 반달형 계주가 보이며, 얼굴은 사각형이지만 눈과 입, 볼 등을 율동감 있게 묘사해 미소짓게 함으로써 중후하고 자비스러운 인상을 풍기게 한다. 좌우(左右) 협시보살은 일광(日光)과 월광보살(月光菩薩)로 연화대 위에 합장한 모습인데, 머리에는 소박한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고 환한 미소 때문에 활력이 넘쳐 보인다. 



이 삼존불은 얼굴이나 상체의 활달한 부조(浮彫)로서 생동감이 넘쳐나고 조선시대 불상(佛像)에서는 파격적인 수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몸의 표현이 평판적이고 경직된 상체와 하부로 내려갈수록 얕은 기법 등은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불상아래에는 건륭(乾隆) 28년(영조(英祖)39년, 1763)이라는 명문(銘文)이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연구(佛敎彫刻史硏究)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또한 칠성신앙(七星信仰)과 다산신앙(多産信仰)이 결합한 불교(佛敎)와 민간신앙(民間信仰)의 결합형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 삼막사 명부전


삼막사 명부전은 1985년 6월 28일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고, 삼막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명부 10대왕을 모신 법당이다. 삼막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하고, 고려 태조 때 중건했고, 고려말 조선 초의 지공(智空).나옹(懶翁).무학(無學) 등과 조선 후기의 서산대사.사명대사 등이 수도했던 곳이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망해루(望海樓)·명부전.감로정석조(甘露井石漕).삼층석탑.마애불.사적비 등 많은 문화 유적이 있다.


명부전은 중생이 죽은 후 가는 곳인 명부를 다스리는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시왕전(十王殿).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이곳에는 명왕전(冥王殿)이라 현판했다.


건물은 조선 고종 17년(1880)에 건립돼 1975년 개수한 것이다. 장대석(長臺石)으로 쌓은 2단의 석축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됐다. 본래는 팔작지붕이었던 것을 지금은 개수해 3량가구(三樑架構)의 맞배지붕에 방풍판(비바람을 막기 위해 지붕의 박공 부분에 대는 널판)까지 시설했다. 기둥 위에 결구된 공포(拱包)는 장식적 요소가 가미된 조선 말기의 일반적인 주심포(柱心包) 양식이고, 귀포는 용머리 조각 등으로 장식했다.


내부는 층급을 둔 우물천장이고, 정면에 무독귀왕(無毒貴王)와 도명존자(道明尊者)를 거느린 지장보살을 안치하고, 좌우로 명부 10왕을 배치했다. 지장보살 뒷면 벽에는 시왕탱화를 걸어 놓았다.


범종각

삼막사 목어목어는 범종각에 걸려있다. 몸체는 짧고 통통한 모양이고 여의주를 문 용머리에 두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푸른빛을 띤다.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고,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었으나 차츰 용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취한 용두어신(龍頭魚身)의 형태로 변형되어 갔고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을 많이 취한다.


나무로 만든 물고기의 배 부분을 파내고 배 안쪽의 양 벽을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목어는 중국 및 우리나라의 선종에서 사찰 규범의 지침서로 삼았던 '백장청규'에 의하면,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고 했고, 그것을 두드려 수행자의 잠을 쫓고 혼침(어둡고 혼미한 정신 상태)을 경책하고자 했다.


삼성산 삼각사 관음범종 법고는 범종각에 있고 가죽에는 문양이 없고, 몸체에는 용과 구름문양이 장식됐다.


법고(法鼓)는 법을 전하는 북으로, 보통 쇠가죽으로 만드는데 짐승을 비롯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울린다고 한다.


법고는 축생(畜生)의 제도를 위해 친다.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중생을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법고는 예불시간에 가장 먼저 울려 퍼진다. 나무로 된 두 개의 북채로 마음 ‘心’자를 그리면서 두드린다.


법고의 몸통은 잘 건조된 나무로 구성하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양면은 소가죽을 사용한다. 북의 몸체 부분에는 보통 용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고, 두드리는 부분의 가운데는, ‘卍’자를 태극 모양으로 둥글게 그리기도 하고 진언(眞言)을 적어 넣기도 한다.


# 삼막사사적비


삼막사사적비는 1707년(숙종 33)에 건립된 사적비로 1985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장방형의 대좌는 윗부분을 모깎이 형식으로 다듬어 그 위에 비신을 끼웠고, 비신 위에는 지붕돌이 씌워져 있다.



비문은 다소 마멸된 부분이 있으나 신라 때 원효(元曉)대사가 처음 터를 잡고 띠집을 지어 수도 정진하던 것이 이 사찰의 시초임을 기록하고 있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새 절을 지어 관음사라 부르기 시작했고, 고려 말기에는 지공(指空).나옹(懶翁) 등의 선사들이 이곳에 머물러 선풍(禪風)을 진작시켰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삼먁사.삼막사 등으로 절 이름이 바뀌었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지붕돌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네 귀의 추녀 끝은 반전해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이 비석은 소박하고 평범한 조선시대의 석비 형식을 갖추고 있고, 삼막사의 내력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취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삼막사삼층석탑


삼막사삼층석탑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막사에 있는 고려시대 일반형 석조 불탑으로, 높이 2.55m. 198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 삼막사의 선실(禪室) 앞 축대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법당과 떨어져 있어 현재의 위치가 원위치인지는 알 수 없다.



석탑의 구성은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일반형이다. 정사각형의 높직한 지대석 위에 2층기단을 구성했는데 4매석으로 짜여진 하층기단 면석에는 양쪽 우주(隅柱)와 가운데 1탱주(撐柱)가 정연하게 새겨졌다.


갑석은 두툼한데 2매석으로 이뤄졌고, 상면이 경사지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도 4매석으로 짜여졌고 각 면에 양쪽 우주와 가운데 1탱주가 정연하게 새겨졌다. 갑석은 넓직한데 하면에 부연(副椽)이 생략됐다.



탑신부는 각 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기 1석씩으로 조성돼 중첩되었는데 각 층의 탑신석에는 각 면에 양 우주가 정연하게 새겨졌다. 옥개석은 모두 하면에 받침이 3단씩이고, 낙수면은 약간의 급경사를 이루었으므로 각 면의 합각머리가 두툼해지고 있다.



네 귀퉁이의 전각에 반전이 있어서 다소 둔중한 느낌을 감해주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석 하나가 남아 있다. 현재의 노반석 위의 장식들은 모두 근년에 새로이 만들어 얹은 것이다. 이 석탑은 기단부의 구성과 탑신부 각 부재의 조성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엽의 건립으로 추정된다.


사찰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1232년(고종 19) 12월 16일 승려 김윤후(金允侯)가 몽고장수 살리타[撒禮塔]를 화살로 쓰러뜨린 기념으로 이 탑을 세웠다고 하나 전설로 전해올 뿐이다. 현재의 석탑은 1979년에 보수한 것이다.


# 삼귀자(三龜字) 




삼귀자三龜字는 조선 후기에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池雲英, (1852~1935)이 인근 백련암자에 은거할 때 썼다고 하는 세 가지 거북귀 자이다. 삼귀자는 거북귀龜 자가 만들어지기 전의 상형문자로 생각되는 세 가지의 거북귀 자는 글자 각각에도 기운이 서려 있는 듯 힘이 있고, 균형감각이 있으면서도 예술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임종게(臨終偈. 고승들이 입적할 때 남기는 마지막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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