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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73] 서울 봉은사 괘불도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2-28 18: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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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문화재 제231호

서울 봉은사 괘불도(서울 奉恩寺 掛佛圖)는 2007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231호로 지정됐다./사진-문화재청 [박광준 기자] 서울 봉은사 괘불도(서울 奉恩寺 掛佛圖)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로, 2007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231호로 지정됐다. 


1886년 헌종의 후궁인 순화궁 김씨(順和宮 金氏)를 비롯한 여러 상궁들의 시주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원통불사(圓通佛事)를 기념하면서 제작됐다. 19세기 서울, 경기지역의 대표적 화승 가운에 한 사람인 대허체훈(大虛 軆訓)이 출초하고 영명천기(影明天機)와 긍조(亘照), 돈조(頓照)가 함께 제작했다. 


면본으로, 4폭의 천을 이어 그림을 그리고 양쪽에 나무 봉으로 마감했다. 세로 686cm, 가로 394.5cm의 거대한 화면에 1불 2보살, 2제자만을 그린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을 큼직하게 배치하고 왼쪽(향우)에 가섭존자, 오른쪽에 아난존자를 그렸으며, 하단부에는 문수보살(동자)과 보현보현(동자)가 각각 사자와 코끼리 위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석가모니는 화형(花形)의 두광과 신광을 지니고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서,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려 활짝 핀 백련(白蓮)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 가운데로 당겨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처럼 꽃을 들고 있는 석가모니의 모습은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어 보이니 가섭존자 만이 그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다는, 선종의 교법을 단적으로 표현한 염화시중(拈花示衆)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작품에 앞서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1702년), '예천 용문사 영산회괘불탱'(1705년), '부여 오덕사 괘불탱'(1768년), '남장사 괘불'(1788년), '개운사 괘불'(1879년) 등에서 볼 수 있다. 개운사 괘불의 제작에 참여한 대허 체훈(大虛 體訓)과 만파 돈조(萬波 頓照)가 봉은사 괘불의 조성에도 관여하고 있어 유사한 도상이 적용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후 이러한 도상은 화장사 괘불(1901년)로 이어졌다. 얼굴은 이마부분이 넓고 턱 부분이 둥근 편으로 이목구비가 작게 묘사됐고, 육계가 높고 뾰족하며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뚜렷하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건장한데, 안에 군의를 입고 왼쪽 어깨에 붉은 대의를 걸친 후 대의 자락을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친 변형된 통견식이다. 대의에는 화형의 원문 안에 파도문이 정교하게 그려진 황색의 문양이 그려져 있고, 청색의 내의에도 잔잔한 꽃문양이 시문돼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광배는 두광은 녹색, 신광은 노란색인데 바깥쪽에는 붉은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석가모니의 좌우에는 가섭존자(향우측)와 아난존자(향좌측)가 본존을 향해 합장했다. 두 존자 모두 얼굴에 비해 신체가 너무 비대해 약간은 불균형해 보이는데, 그로 인해 중앙의 석가모니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가섭존자는 본존과 같은 문양이 시문된 붉은색의 옷을 걸치고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모아 본존을 향하고 있다. 노년의 존자를 상징하듯 앞머리가 다 빠진 노인의 모습으로, 길게 늘어진 흰 눈썹과 코밑, 턱밑의 흰 수염, 꾹 다문 입술, 형형하게 살아있는 눈빛,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 뼈가 다 드러나는 야윈 목 등이 오랜 세월 수행에 전념한 나한의 참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강한 음영법의 사용으로 인해 더욱 극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반면, 건장한 청년모습의 아난존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본존을 향해 합장했다. 가섭존자와 대조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에서인지 아난존자의 얼굴은 눈과 코, 목 부분에 옅게 바림질을 했을 뿐 음영을 거의 가하지 않았다.


한편, 화면의 하단부는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본존의 광배와 동일한 모습의 화형 광배 안에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그려져 있다. 두 보살은 두 손으로 비스듬히 백련과 모란꽃을 들고 각각 사자와 코끼리에 올라타 마주보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보관을 쓰고 천의를 입은 보살형이 아닌 쌍계(雙紒)의 동자형(童子形)으로 묘사됐다. 


어깨에는 운견(雲肩)을 걸치고 쌍계에는 붉은 리본을 묶은 채 황색 사자와 흰 코끼리 위에 반가좌의 형태로 걸터앉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자와 코를 높이 들고 부르짖는 듯한 코끼리는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지역의 괘불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모습으로, '흥천사 괘불'(1832)과 '안양암 괘불'(1882년), '봉원사 괘불'(1901년), '흥국사 괘불'(1902년) 등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채색은 적색과 황색과 청색, 녹색, 노란색, 흰색, 주황색 등이 많이 사용됐다. 특히 본존의 신체를 황색으로 칠하는 기법은 서울, 경기지역의 동일한 도상의 괘불에서 공통되는 특징으로서, 지역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한 구도에 있어서도 화면을 꽉 채워 그리는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지역의 괘불형식을 답습하고 있다.


화기에 의하면 1886년 5월 26일 원통불사(圓通佛事)를 시작해 6월 5일에 회향했다고 했는데, 원통불사는 관음보살과 관련된 불사라는 점에서 이 괘불은 19세기 활발하게 시행됐던 수월도장공화불사(水月道場空花佛事)와 관련해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光緖十二年丙戌榴夏 掛佛幀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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