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수덕사근역성보관, 신축개관기념 특별전(1) ‘철조석가여래좌상’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4-01-04 07:45:30
  • 수정 2024-01-04 21:59:25

기사수정


[윤여금 기자] 수덕사근역성보관 신축개관 기념 특별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원사지 출토 통일신라 철조여래좌상을 전시하기 위해 2021년부터 수덕사(주지 정묵스님)와 보원사(정범.정경스님)는 문화재환수연대(대표 이상근)와 당시 충남도의회 김연 의원, 이공휘 의원, 서산.태안 국회의원 성일종 의원이 함께 노력했다. 


특별전에는 통일신라 철조여래좌상, 수덕사대웅전(국보)아미타여래복장유물인 발원문(보물), 유령통(보물), 오보병(보물), 면포(보물), 수덕사목조연화대좌편(보물), 수덕사소조석가여래좌상 복장유물, 문수사 복장유물(보물),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보물), 서산 개심사 묘법연화경 목판(보물), 성관재구수욕자선정 목판(보물), 서산 보원사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목판, 상길암 목조관음조살좌상 및 복장유물(유형문화재), 문수사 지장시방왕도(유형문화재)등이 전시되어 있다. 


        ▲ 예산수덕사 일주문


         ▲ 예산수덕사


         ▲ 예산수덕사근역성보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철불로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에 전시되어 있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2014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황금나라, 신라’ 전시에서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보다도 더 많은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당당한 양어깨와 풍만한 가슴, 결가부좌한 다리의 풍성한 입체감 등은 석굴암 본존불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사실감이 잘 드러난다. 결가부좌한 다리 사이로 펼쳐진 부채꼴의 옷 주름은 석굴암 본존불과 거의 같다. 왼쪽팔목에 표현한 유려한 옷 주름은 석굴암 본존불을 능가할 정도이다. 


         ▲ 철조여래좌상(서산보원사지 출토), 통일신라시대, 높이 1m5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철조여래좌상(서산보원사지 출토), 통일신라시대, 높이 1m 50cm


       ▲ 철조여래좌상(서산보원사지 출토),통일신라시대, 높이 1m50cm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에서 출토된 통일 신라 시대 철제 여래 좌상(普願寺址出土統一新羅鐵製如來坐像)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불로, 아름답고 완벽한 주조 기술을 자랑하는 불상이다. 해외에서 열린 ‘한국 미술 5000년전’ 전람회 때에도 출품되었던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철불이라고 할 수 있다.


        ▲ 철조여래좌상(서산보원사지 출토),통일신라시대, 높이 1m50cm


       ▲ 철조여래좌상(서산보원사지 출토),통일신라시대, 높이 1m50cm


1918년 서산 보원사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는데, 불상 명칭을 ‘전(傳) 보원사 터 철조여래좌상’이라 소개하고 있다. 한편, 2006년 12월 15일 서산 보원사지 발굴 조사 중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普願寺址五層石塔) 주변에서 건물 터와 불상 대좌의 기단부가 확인됐는데, 보원사지 출토 통일신라 철제여래좌상의 대좌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 철조여래좌상(서산보원사지 출토),통일신라시대, 높이 1m50cm


       ▲ 철조여래좌상(서산보원사지 출토),통일신라시대, 높이 1m50cm


눈, 코, 입 등의 윤곽이 분명하며 선이 유려하면서도 강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얼굴에 비해 턱은 작고 볼에 살이 올라 있다. 머리는 둥근 선을 그리는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는 낮다. 선이 반듯한 이마 가운데에 둥근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구멍은 주물 자국이거나 계주 구멍일 가능성이 높다. 자비로운 얼굴은 체구에 비해 작고, 눈썹은 가늘며, 반쯤 뜬 눈은 날카롭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입술은 작고 얇으며, 귀는 큼직한 귓불이 약간 밖으로 벌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전체적인 인상은 대체로 딱딱한 편이나 자세히 보면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 아래로 목에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한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옷 주름은 다소 도식적이지만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고 있다. 따로 만들어 붙였던 손이 떨어져 나가고 없지만, 팔의 자세로 보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석가모니의 성도상(成道像)을 표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팔과 어깨 및 가슴이 드러나 보이는데 가슴이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옷깃은 한 겹의 단을 대었고, 그 밑으로 규칙적인 옷 주름을 만들었다. 왼팔에 난 주름은 많다.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튼 두 다리 사이 밑으로 부채꼴 옷 주름이 나 있다.




일반적으로 철불은 철이라는 재료의 특성 때문에 마무리가 거칠기 마련인데, 보원사지 출토 통일신라 철제여래좌상은 비교적 높은 숙련도로 공들여 제작하였기에 이음매도 매끄러운 편이다. 



8세기 불상의 특징과 10세기 불상의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다. 완벽한 몸매의 균형, 유연한 옷 주름의 표현, 풍만한 육체, 알맞게 살찐 얼굴, 그리고 근엄하면서도 너그러운 인상이 전형적인 8세기대의 특징이라면, 얼굴의 표정이 젊고 체구가 당당하며 입이 작고 귓불이 밖으로 휘어 내린 것 등은 10세기 철불의 일반적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불상의 이런 특징 때문에 조성 연대를 8세기로 보는 의견과 10세기로 보는 견해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 철조여래좌상(서산보원사지 출토),통일신라시대, 높이 1m50cm


보원사지 출토 통일신라 철제여래좌상의 조성 시기는 8~10세기로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12세기 송나라 때부터 철불이 등장하는 중국이나 13세기 가마쿠라[鎌倉] 시대부터 철불을 만들기 시작한 일본보다 적어도 200년 이상은 앞선 것으로 당시 우리나라 철 주조 기술이 동양 최고였음을 증명해 준다. 이와 함께 통일 신라 및 고려 시대 불상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忠州丹湖寺鐵造如來坐像) ‘보물 제512호’과 대원사 철불 좌상, 백운암 철불 좌상 등과 같이 고려 시대에 많이 조성된 철불의 모본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철불은 내포지역 철기문화를 밝히는데도 중요하고, 백제근초고왕이 일본 왜왕에게 선물로 보냈다는 서산 지곡에서 만들었다는 칠지도(일본 국보 고고자료 제15호)와 함께 내포 철기문명의 수준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대감식안 ‘이조묵’의 찬문 


‘이조묵’의 찬문에는 거문고가 청포뿌리만큼 넉적하지만 보배로 삼을 만하다. 공민왕이 신령스러운  오동을 얻어 이것을 만들었으니 그 후 야은이 보배롭게 여겨 잘 간직하고 명현도사들이 그 맑고 상쾌한 소리와 음운을 특이한 것으로 삼아서 다투어 켜지않음이 없었다. 태강이식 등과 함께 진실로 아꼈으니 이제 거의 마멸됐으나 그 질은 세간에 증명하기 충분하여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기는 바이다. 정유년에 대를 쪼개는 날 육조(이조묵)는 이에 적어 찬한다고 기록되어 전한다. /다음회에 계속


       ▲ 거문고(만공스님의 유품), 고려시대, 예산수덕사 소장


          ▲ 거문고(만공스님의 유품), 고려시대, 예산수덕사 소장


          ▲ 거문고(만공스님의 유품), 고려시대, 예산수덕사 소장


[참고문헌]

'한국 고미술의 이해'(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최성은, '철불'178(대원사, 1995)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3-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창작과 비평사, 1997)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관련항목 보기4-충남(돌베개, 1997)

'한국 미의 재발견'4-불교조각Ⅱ(솔출판사, 2003)

'서울신문'(2006. 12. 20), '서산문화원'(http://seosan.cult21.or.kr)

1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