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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한계산성’사적 지정 예정
  • 민병훈 기자
  • 등록 2019-10-17 16:18:14
  • 수정 2023-12-21 1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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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지역 험준한 지역에 쌓은 13세기 입보산성으로 대몽고 승전지


[민병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오는 21일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인계 한계산성’(寒溪山城)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3호로 지정해 관보 고시할 예정이다. 


‘인제 한계산성’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설악산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유적으로, 한계산(해발고도 1,430.4m)을 중심으로 동남쪽과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자연적인 암벽지대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성벽을 구축했다. 


산성의 둘레는 약 7㎞에 달하고, 상성(약 1.7~1.9㎞)과 하성(약 5~6㎞)으로 구분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에서도 이미 상성과 하성의 존재가 명확하게 기록됐다. 


인제 한계산성은 13세기경 축조된 산성으로, 그 입지와 축조양상을 볼 때 시대변화에 따른 성곽 확장과 성벽이 연장된 구조가 잘 나타나고, 성벽과 별도로 축조된 돈후(墩堠) 시설물을 갖추고 있다. 



고려 시대 몽골과의 항전에서 사용된 입보용 산성으로서의 평면구조와 축성방식, 부속시설물이 변화되는 양상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중세산성이다. 특히, 상성은 현재 남한 내에서 가장 험준한 곳에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지고 있는 등 13세기 험지위주 산성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한 상성과 하성 시굴조사 결과, 고려~조선 시대의 다양한 유구와 유물을 확인했다. 상성과 하성별로 시대적으로 비교되는 건물지 중심의 유구와 유물이 나와 한계산성 활용시기 등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들을 확인했다. 


하성에서는 총 18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출토된 유물 중 ‘至正十八年’(지정십팔년, 1358년, 공민왕 7년)이라고 쓰인 기와 조각과 백자 조각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와 한계산성이 13세기 축조된 이래 고려 말에 다시 대대적으로 보수 또는 증축(혹은 개축)된 후 조선 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상성에서는 총 15개소의 구들 건물지, 부분적으로 잔존 성벽 기저부(基底部)를 확인했고, 청자와 도기 조각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됐다. 


‘인제 한계산성’은 고려 시대 몽골과의 항전지이자 승전지로서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259년(고려 고종 46년) 몽고에 투항한 조휘 일당이 몽고 군사를 끌고 와서 산성을 공격했으나 점령하지 못했다. 오히려 산성을 지키고 있던 방호별감 안홍민(安洪敏)이 야별초군(夜別抄軍)을 거느리고 나아가 습격해 모두 섬멸했다고 기록됐다. 


이처럼 ‘인제 한계산성’은 30년 여몽전쟁의 최후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몽골 영향 아래 있던 쌍성총관부의 세력 확장을 저지한 국난극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또한, 대몽항쟁기 5차와 6차 침입 당시 만든 입보산성으로서 성곽 변화과정과 고려말 조선초 공민왕의 반원정책, 동해안 일대의 왜구 침략 대비 등을 목적으로 축조한 성곽 양식 등을 비교.연구할 수 있는 점에서도 학술적·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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