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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만에 국보된 고려 걸작 ‘동종’...그 뒤엔 금속공예 장인 ‘한중서’ 있었다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4-01-13 20: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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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북 부안 내소사에서 진행된 내소사 고려동종 국보 지정서 전달식. 최응천 문화재청장(왼쪽)과 내소사 주지인 월봉 진성스님/사진-문화재청 제공[이승준 기자] ‘청림사에 봉안하려고 1222년 한중서라는 장인이 구리 700근(420㎏)을 들여 빚었다.’


지난 9일 전북 부안 능가산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내소사. 경내 보종각이라는 종각까지 세워 귀하게 보관된 고려 동종(銅鍾.구리로 만든 종)에 음각으로 새겨진 제작 이력이다. 고려시대 걸출한 장인 한중서가 만든 종이라는 사실과 함께 표기된, 뚜렷한 제작 시기. 이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 종이 지난해 말 60여년 만에 국보로 승격된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제작 시기와 제작 장인을 명확히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습니다.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드러난 고려 범종의 백미로도 손에 꼽히는 종이죠.”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이날 내소사에서 진행된 국보 지정서 전달식에서 형형한 눈빛으로 이같이 말했다. 2017년 국보 승격 대상 선정 소위원회에서 내소사 동종을 적극적으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최 청장이다. 당시 그는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전북 부안 내소사 경내 세워진 보종각에 보존돼 있던 동종 모습. 현재 동종은 인근 수장고로 이동됐다/사진-문화재청 제공고려 후기 동종 중에서도 가장 큰 종(높이 104.8㎝.입지름 67.2㎝)인 내소사 동종은, 동종으로는 우리나라 다섯 번째 국보다. 동종의 섬세함은 종을 매다는 용뉴와 동종 몸체에 주조된 삼존상(三尊像)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용뉴에 장식된 목이 구부러진 한 마리의 용은 마치 꿈틀거리는 듯 정교하다. 한국의 용은 단용으로 한 몸체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중국의 쌍용과는 구분된다. 내소사 동종의 용은 두 개의 여의주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쩍 벌린 입에 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왼쪽 발로 받친 당찬 모습이다. 설법을 하는 부처 주변에서 부처의 존재를 찬탄하는 천인상(天人像) 대신,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삼존상이 배치된 점도 흥미롭다.


이밖에도 입체적으로 표현된 어깨 부분의 연꽃 문양, 몸체 위아래를 두른 덩굴무늬 띠, 섬세한 꽃잎으로 표현된 4개의 당좌(종을 치는 나무 묵대가 닿는 부분) 등 장식성은 동종에 깃든 고려시대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극치다.


이처럼 기술력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동종을 만든 이가 한중서라는 고려시대 당대 최고의 금속공예 장인이다. 그는 13세기 전반부터 중엽까지 40여년간 활동했다. 보물로 지정된 고성 옥천사 청동북, 고령사명 청동북, 신룡사명 소종도 그가 제작했다. 최 청장은 “조선시대 후기를 제외하고 한 장인이 만든 여러 작품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례는 한중서가 유일하다”라고 설명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이 지난 9일 전북 부안 내소사 경내 수장고에 보관된 동종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사진-문화재청 제공당초 청림사에 보관된 동종이 내소사로 오게 된 유명한 설화가 있다. 10일 만난 내소사 주지인 월봉 진성스님이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청림사가 폐쇄된 뒤 땅 속에 묻힌 동종을 한 농부가 발견하게 됐다. 농부는 그 소리가 궁금해 종을 쳤는데 이상하게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농부는 종을 울릴 수 있는 사람에게 동종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인근 사찰에서 스님들이 찾아와 차례로 종을 쳤다. 그러나 동종은 쉽게 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종을 친 내소사 스님만이 종소리를 냈다. 진성스님은 “이런 인연으로 동종은 내소사로 모셔지게 됐다”며 포근하게 웃었다.


‘이 소리를 듣는 모든 이는 본성을 깨우치고 깨달음을 얻으리라(범유이자개각본심·凡有耳子開覺本心)’ 내소사 동종에 새겨진 또다른 문구다. 이 종은 1980년대까지 실제 경내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의식을 치를 때 사용됐다. 다만 아쉽게도 지금은 실제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 보존 가치를 위해 일부러 종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나라뮤직이 제작한 ‘한국의 범종’ 음반을 통해 들은 녹음된 내소사 동종 소리는 우렁차면서도 맑다. 현재 동종은 보종각에서 인근 수장고로 이동돼 보관·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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