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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기념관 기획전시,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북간도 사진전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3-28 18: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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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어른들[우성훈 기자] 윤동주기념관 기획전시,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북간도 사진전이 오는 4월 28일까지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3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간도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인과 조선인의 입주가 금지되면서 두 나라 사인 섬 같이 비어있는 땅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혹은 조선 후기에 우리 농민들이 이 지역을 새로 개간한 땅이라는 뜻에서 '간도'라고 일컫기도 했다. 


조부 윤하현 회갑연 1936윤씨가문 며느리들간도는 서간도와 동간도로 구분된다. 서간도는 압록강과 송화강의 상류지방인 백두산 일대를 가리키며, 동간도는 북간도라고도 하며 훈춘.완청.연길.화룡의 네 현으로 나누어져 있는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을 말한다.


북간도 상점장재촌 함경도식 가옥 처마북간도는 19세기 조선 말기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이주했던 이주민들의 굳건한 터전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 전후에는 국권 회복을 도모하는 정치적 망명자와 항일 독립운동자의 이주 공간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과 민족해방투쟁의 발상지이었다. 서구 열간과 중국, 일본의 분쟁 그 '사이'의 틈새 속에서 북간도는 시대적 아픔과 수난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공간이었다. 




북간도의 교육기관이었던 서전서숙과 명동서숙은 바로 그 시대적 사망과 무관할 수 없었다. 1906년 이상설은 신학문과 항일민족주의 교육으로 민족의식을 함양시키고자 서전서숙을 열었으나 일제 통감부 간도파출소와 감시와 고초로 한 해 만에 문을 닫게 된다. 1908년 서전서숙의 정신을 이어받아 근대적 민족운동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위해 김약연(윤동주의 외삼촌)을 중심으로 명동촌에 명동서숙이 문을 연다.



명동서숙은 1909년 명동학교로 교명을 개최하였고 이후 3년제 중학부를 증설하고 북간도 최초로 여학교를 신설했다. 윤동주의 아버지 윤영석은 명동학교에서 수학했고 북경 유학 이후 명동학교에 교편을 잡기도 했다. 어린 윤동주는 북간도의 민족주의적.기독교적 공동체 속에서 성장했고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명동소학교에 첫발을 내디뎠던 것은 1925년의 봄이었다. 



그러나 윤동주에게 북간도는 유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임과 동시에 '잃어버린 역사'(눈오는 지도 중)의 한복판에서 상실된고향이기도 했다. 윤동주가 용정의 중학교에 진학하고 그의 가족들이 용정으로 거처를 옮길 당시,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북간도는 일제에 의해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전락했다. 평양의 숭실학교와 경성의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일본의 유학 시절까지 그가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름다운 유년의 고향과 나란히 놓일 수 없는 자신의 '부끄러운 이름'(별 헤는 밤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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