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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시간이 모무는 섬, 울릉도 16] 울릉도는 어떤 섬인가?
  • 이승준
  • 등록 2024-04-27 10: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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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에서 9번째로 넓은 섬 ‘울릉도’

울릉도 전경/사진-울릉군[이승준 기자] 울릉도(鬱陵島)는 경상북도 울릉군의 본섬으로, 대한민국에서 9번째로 넓은 섬이다. 면적은 72.86km2[1]이고, 인구는 약 9,000명이다. 조선 시대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강원도 삼척, 울진에 속했으나, 1914년부터 경상북도에 속한 후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포항시의 생활권에 속한다. 


이 섬은 동해의 바다 가운데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섬의 중북부에 칼데라인 나리 분지가 있고, 마지막 화산 폭발은 약 5천 년 전에 있었다.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직선 거리로 130.3km로 떨어져 있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곶이고, 독도와는 87.4km 떨어져 있다. 뱃길로 포항에서 217km로 3시간 반이 걸리고, 동해시 묵호항에서는 170km로 2시간 50분이 걸린다.


조선 시대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강원도 삼척, 울진에 속했으나, 1914년부터 경상북도에 속한 후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포항시의 생활권에 속한다.


울릉도 (18세기의 지도) 

울릉도(鬱陵島)는 경상북도 울릉군의 본섬으로, 대한민국에서 9번째로 넓은 섬이다. 면적은 72.86km2이고, 인구는 약 9,000명이다.


이 섬은 동해의 바다 가운데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섬의 중북부에 칼데라인 나리 분지가 있으며, 마지막 화산 폭발은 약 5천 년 전에 있었다.[3]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직선 거리로 130.3km로 떨어져 있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곶이며, 독도와는 87.4km 떨어져 있다. 뱃길로 포항에서 217km로 3시간 반이 걸리며, 동해시 묵호항에서는 170km로 2시간 50분이 걸린다.


울릉도는 현포, 남서, 저동리에서는 고인돌, 무문토기 등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어 당시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 우산국이라 불렀는데, 512년(지증왕 13년) 6월 하슬라주의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다. 이후 고려 때까지 조공 관계가 계속되다가 11세기 초에 여진으로부터 침구(侵寇)를 받은 우산국 사람들이 본토로 도망 오고부터 울릉도는 고려의 직할 구역이 되었다. 


대동여지도 필사본 1407년(태종 7년) 3월 쓰시마 도주는 사신을 파견해 토산물을 헌납하고 납치해 간 포로를 송환하면서 울릉도에 쓰시마 사람을 이주시키어 살게 해서 쓰시마 도주가 다스리게 해 줄 것을 청원했으나, 조선 태종은 이를 거절했다.


또 조선 초기 왜구의 노략과 탈세를 막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1416년(태종 16년) 조정은 섬의 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는 공도 정책(空島政策)을 실시했다. 다음 해 무릉도(武陵島, 울릉도)의 주민 3명을 이주시킨 후 여러 차례 무릉도 일대의 주민을 조선 본토로 이주시켰다. 조선 세종 때에 도망한 사람들을 벌한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과 무릉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 다른 이름으로는 울릉도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고, 지봉유설에는 "임진왜란 이후 사람들이 들어가본 일이 있으나, 역시 왜의 분탕질을 당하여 정착하지 못하였다. 근자에 들으니 왜노가 기죽도를 점거했다 하는데, 기죽도라고 혹 말하는 것은 곧 울릉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울릉군청 전경이 후 1614년(광해군 6년) 6월 쓰시마 도주는 서계를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울릉도를 둘러봐야 하니 길안내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조정은 이를 거절하고 경상감사와 동래부사에게 울릉도의 일본인 왕래를 금지하도록 지시했다. 1618년 도쿠가와 막부는 오타니 집안과 무라카와 집안에게 울릉도 도해 면허를 내어 줬다. 그 집안 사람은 울릉도와 일본을 왔다 가면서 조업했다.


1692년 3월 무라카와 집안이 울릉도로 갔을 때 조선 사람들이 무라카와의 도구로 전복을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조선인에게 나가라고 말하려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일본 사람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가 막부에 도움을 청했지만 막부는 “저쪽이 잘못을 깨닫고 철수할 것이다”는 답변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후 안용복 문제 등 충돌이 생기고 나서 막부도 1696년 일본인에게 울릉도 도해를 금지했다.


울릉도 호박엿공장 내부1787년 프랑스의 라페루즈 탐험대는 울릉도를 최초로 실측하여 '다줄레(Dagelet)'라는 명칭으로 지도에 포함시켰다.


고종 21년(1884년), 임금의 명에 따라 울릉도를 개척했다.


1896년 8월 28일 러시아 제국과 조선 왕조는 의정서를 체결 울릉도의 삼림 벌채 및 식재에 관한 특허를 러시아의 율리 이바노비치 브리네르가(Юлий Иванович Бринер) 설립 한 '조선목상회사 (朝鮮木商会社)"에 준.


울릉도는 독도와 함께 신생대 제3기에서 제4기 사이에 해저로부터 솟아난 해산(海山)이고, 섬 부분은 산의 봉우리 부근이다. 신생대 제3기와 제4기에 있었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종상화산의 정상부로, 조면암.안산암.현무암으로구성되어 있다. 


울릉군청 앞에 새겨진 '칙령 제41호' 화산암의 마그마 발생 심도는 300 km 이상으로 추정된다. 열점 화산활동에 의해 이사부 해산, 심흥택 해산, 독도, 안용복 해산과 함께 울릉도도 생성됐다. 독도의 생성기는 460~250만년전으로, 울릉도는 250만년~5천년전으로 추정된다.


섬 중앙에는 성인봉이 있고, 섬의 북부에는 유일한 평지인 나리 분지가 있다. 나리 분지는 화산의 분화구에 생긴 칼데라로 천지나 백록담처럼 호수가 만들어졌으나 이후 물은 모두 배수되고 호수 바닥에 돌덩이과 흙먼지가 차곡차곡 쌓인 토양이 나리 분지를 형성했다. 울릉군은 주도인 울릉도 외에도 부속 도인 관음도, 죽도 및 여러 개의 암도를 동반하고 있다. 


식물군으로는 너도밤나무.섬잣나무.솔송나무 등 650여 종이, 동물군으로는 흑비둘기 등 50여 종의 조류, 340여 종의 곤충류가 서식하고 있다./사진-이승준 기자, 고지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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