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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의 여행이야기 35] 경복궁 연못 안에 '경회루'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4-04-13 10: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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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경복궁 경회루(景福宮 慶會樓)는 경북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위치한 정자로 큰 연회를 베풀거나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외국 사신이 왔을 때 접대하던 곳으로 1867년 재건됐다. 가믐 때에는 연못가에서 비를 기원하는 기후제를 지내기도 했던 곳이다.

 

경회루는 1412년(태종 12)공조 판서 박자청이 왕명으로 경복궁 서쪽 연못안에 지은 다락집으로 처음 지을 때는 작은 규모였다. 경회(慶會)는 '경사스런 연회'란 뜻으로 경회루慶會樓) 편액은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이 썼다. 지금의 현판은 고종 4년(1867)에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浩, 1811~1884)가 쓴 것이다.


높은 2층 누마루에 올라 서쪽으로 인왕산, 동쪽으로 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주위의 넓은 연못에서는 뱃놀이를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아 있던 경회루는 270여년이 지난 1867년(고종 4) 대원군이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재건됐다.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경회루 바깥 둘레에 둘리어진 둥근 연못은 하늘은 본 뜬 것이며, 연못 안의 네모난 기단은 땅을 본 뜬 것으로 기둥 하나, 돌 하나가 모두 이상세계를 추구하여 만들어졌다.

 

경회루는 앞면 7칸, 측면 5칸 바닥 면적은 282평으로 현존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2층 건물로 팔작지붕의 형태를 보인다. 지붕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사진=문화재청


   ▲ 경복궁 경회루 내부,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사진=문화재청


고종 때 재건된 경회루는 당시 유가(儒家)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1층 내부 기둥을 원기둥(圓柱), 외부 기둥을 사각기둥(方柱)으로 한 것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나타낸다. 2층 마루는 3겹으로 구성됐는데, 2층 평면의 제일 안인 내내진은 세 칸으로 이루어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상징하고, 이 세 칸을 둘러싼 여덟 기둥은 천지 만물이 생성되는 기본인 ‘주역(周易)’의 팔괘(八卦)를 상징한다. 내내진을 둘러싼 다음 겹인 내진은 12칸인데 1년 12달을 상징하고, 가장 바깥을 둘러싼 외진 24칸은 1년 24절기와 24방(方)을 상징하는 등 동양적 우주관을 건축으로 상징했다. 

 

   ▲ 경복궁 경회루 연못에서 발견된 용/사진=문화재청


중건 당시에 1997년 11월 경회루 연못 준설작업 도중에 출토된 유물로 경회루의 건축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경회루전도 (慶會樓全圖)’에 의하면 경회루는 불을 억제하기 위하여 주역의 원리에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또한 연못에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구리로 만든 용 두 마리를 넣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1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물을 모두 뺏더니 이 용은 그 중 하나로 경회루 북쪽 하향정(荷香亭) 앞 연못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된 용은 현재 고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경회루의 초기 기둥은 48개의 기둥에 꿈틀거리는 용을 조각한 모양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현재와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 기둥을 세웠다. 가까이서 보면 기둥 이곳저곳에 패인 부분이 보이는데, 한국전쟁 때 총탄의 흔적이다.


    ▲ 경복궁 경회루 내부,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사진=문화재청


경회루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쌓았고, 2층 바닥에는 마루를 쌓았는데 마루의 높이를(임금이 않게 되는 자리는 높이를 높게 했다)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자리에 않도록 했다.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뚝을 쌓아 네모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했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는 왕비 침전의 뒤편의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조성했다.

 

    ▲ 경복궁 아미산


경복궁 아미산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고종 3년(1866)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새로 만든 것이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 경복궁 아미산 굴뚝(景福宮 峨嵋山), 보물 지정 1985, 조선시대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 경복궁 경회루, 국보 지정 1985년, (조선 고종4)


경회루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장식과 섬세한 수법을 간직한 조선 후기 건축 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수면 위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은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다./사진-윤예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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