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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353] 극단 허리, 유준식 긱색/연출 '마라 사드'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4-05-05 0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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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극장에서 극단 허리의 페터 바이스( Peter Ulrich Weiss )작 유준식 각색 연출의 마라 사드 (Marat/Sade) 를 관람했다.


페터 바이스 (Peter Ulrich Weiss, 1916~ 1982)는 독일 베를린의 노바베스에서 헝가리 유대인 출신의 직물업자인 아버지와 스위스 바젤 출신의 여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4년까지 베를린과 브레멘에서 살았고, 이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을 거쳐 체코로, 그리고 스위스에서 스웨덴으로 이주하였다. 이처럼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작가로서 화가로서 영화감독으로서 다양한 예술 장르의 실험을 시도하였고 각 분야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1965년 아우슈비츠 재판 이후 미국의 베트남전을 비판하는 등 적극적인 현실참여 활동을 벌였으며,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항하는 세계시민으로서의 개인적 보편적 삶을 작품에 담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설 '부모로부터의 작별', '저항의 미학', 희곡 '탑', '마부 몸의 그림자', '소실점', '길을 가는 세 사람의 대화', '마라, 사드', '심문', '망명지의 트로츠키', '횔덜린', '소송', '새로운 소송', 에세이집 '아방가르드 영화' 등이 있다.


유준식은 문화예술의 황무지인 경기북부지역에서 지난 90년초부터 본격적인 연극활동을 통해 서민들의 애환을 그려내고 있는 극단허리 대표이자 연출가다. 대학시절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 89년 사회진출을 앞두고 서민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연극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문학활동만으로는 서민들과 호흡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서민의 대표적 표상인 저의 부모님들이 시집 한권조차 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 대체방안은 바로 연극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그가 무대에 올린 연극만도 무려 100여편. 숱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15명되는 단원들에게 연극을 통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숙제였다. 


그러나 단원들의 연극사랑에 대한 일념으로 지금 극단이 자리하고 있는 의정부3동의 30여평 공간에서 아침부터 새벽까지 피나는 연습을 하고 또 했다. 돈을 벌기 위한 세속적인 일상이 아닌 진정한 연극문화창달만이 목표였다. 


유대표는 “후견인조차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이 연극에 대한 정을 더욱더 키워가고 있는데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이 메말라가는 현실에서 연극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곱씹어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마라/사드 (Marat/Sade) 는 페터 바이스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페터 바이스는 이 작품에서 프랑스 극작가 사라를 통해 1793년 샤를로트 코프데에 의해 살해된 프랑스 혁명기의 급진적 언론인이자 정치 지도자 장폴 마라의 암살 사건을 재현했다.


샤랑통 정신병원에 수감된 사라는 장폴 마라의 암살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구상해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병원에서 작품을 공연한다. 마라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 연극은 춤과 노래, 철학적 논쟁까지 더해지며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과 폭력을 모방한 듯 빠르고 혼란스럽게 진행된다. 


사드와 수감자들은 연극을 통해 정의의 본질,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자유라는 상충하는 가치를 두고 철학적인 질문과 씨름한다. 연극에 참여했던 수감자들은 점점 자기가 맡은 역할과 현실을 혼동하게 되고, 병원은 결국 폭동의 장이 되어 버린다.


극중극의 작자 사드는 프랑스 혁명의 이상에 환멸을 느끼고 당시의 폭력과 혼돈을 자신의 욕망과 충동에 탐닉할 기회로 여기는 인물이다. 성 본능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와 악의 문제에 천착한 프랑스 소설가 사드를 극화한 이 캐릭터는 열정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혁명가 마라와 대비되어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작품의 핵심 주제를 드러낸다.


페터 바이스는 마라에 대한 사드의 견해를 통해 정의를 내세운 정치 혁명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독자는 혁명의 당위가 민중의 광기를 어떻게 폭발시키는지, 그것이 어떻게 새로운 지배 논리에 의해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을 낳는지 보게 된다.


이 작품은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형식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적 사실과 연극적 발견이 어우러진 현대 연극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유준식의 각색‧연출로 새롭게 무대에 올려지는 <예술공간 휴서사의 ‘마라/사드’>는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풍자한다. 풍기문란 및 반정부 창작 활동으로 몇 년째 국립서울정신병원감호소에 수용돼있는 마수광 교수가 환자들의 정신병치유와 예술활동수혜를 위해 그곳 환자들을 데리고 연극을 올린다.


극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했던 마라와 사드의 대립은 다른 역할을 하는 정신병 환자들에도 영향이 미쳐가더니, 아니나 다를까, 공연이 진행되면서 정신질환자들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요를 일으키는데…


우리에게 실감되는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건은 ‘동학혁명’과 ‘4.19혁명’이다. 그 중 ‘4.19혁명’은 ‘프랑스대혁명’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하여 2024년 4.19혁명기념일에 창동극장에서 프리뷰 오픈을 했다.


4.19혁명일인 1960년 4월 19일 암살당하는 장 폴 마라! 또는 프랑스혁명일인 1789년 7월 14일 암살당하는 김구, 여운형, 김원봉, 조봉암, 장준하…!


지난 1월 일본 도쿄 초청 공연에서 호평을 받아 작품성이 이미 검증된 극단허리의 <마라/사드>! 더 나은 세상, 제대로 된 삶을 위해 과감히 몸을 던졌던 혁명의 두 실존 인물들이 2024년 대한민국의 정신질환자인 우리들에게 던지는 물음을 한번쯤 둘러보고 가도 좋을 듯하다.


장재승, 이경민, 유희리, 김동윤, 손주원, 이호영, 김경열, 유준식 등이 출연해 성격설정에서부터 감정표현은 물론 호연과 열연으로 극을 이끌어 가고 갈채를 받는다.


조명디자인 김명남, 작곡 음악 유희오, 움직임지도 양길호, 분장디자인 이 인, 조연출 이호영, 기획 박정근 이왕일, 마케팅 CTC 홍보팀 등 스텝진의 기량도 드러나, 극단 허리의 페터 바이스 작 유준식 각색 연출의 마라 사드를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한편의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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