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판사들 “미성년자 상대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국민 눈높이 외면 안돼”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0-03-26 18:43:57

기사수정


[박광준 기자] 대법원이 ‘n번방’ 사건과 같은 아동.청소년 상대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다음 달 중으로 양형기준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판사들이 “양형기준 설정 작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법원이 마련하게 될 양형기준이 국민 눈높이와 시대적 요청에 동떨어지지 않도록, 판사뿐 아니라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도 요청했다.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젠더법연구회’ 소속 회원 등 판사 13명은 25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이같은 내용을 담은 글을 게시했다.


이들은 글에서 “다크웹 사건과 소위 ‘n번방’ 사건, 그리고 아동.청소년에 대해 카카오톡 오픈방이나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접근해 신체 부위 등을 촬영해서 전송토록 한 후 이를 유포하는 등의 범죄는 다른 디지털 성범죄와 본질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디지털 성범죄는 ‘직접적인’ 성폭력 범죄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이고, 오히려 그 피해 정도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그럼에도 최근 대법원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마련을 위해 판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이 ”이같은 범죄의 중대성을 제대로 고려했는지 의문“이라면서, ”이대로 양형기준이 마련된다면 피해자는 물론 일반 국민도 납득하기 어려운 양형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원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형기준이란 판사가 형을 결정함에 있어 참고할 수 있는 기준으로, 원칙적으로 구속력은 없지만, 판사가 양형기준을 벗어나 판결을 선고할 경우 판결문에 양형이유를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어길 수는 없다.


글을 쓴 판사들은 구체적으로 ▲양형기준 마련을 위해 대법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의 기존 문제점을 재검토한 뒤 새롭게 조사를 진행하고 ▲설문조사 전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디지털 성범죄 유형, 피해자의 특성, 피해의 심각성을 대법원이 심도 있게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이같은 범죄에 관해 어느 때보다도 국민적 관심이 뜨거운 반면 지금까지 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 유사범죄에 대한 처벌은 범죄의 심각성을 반영하지 못했고, 재범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애써 마련한 양형기준이 국민의 눈높이와 시대적인 요청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법관뿐만 아니라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등의 절차를 거쳐 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또 “양형기준을 만드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전문위원이 과연 사회 일반의 다양한 시각과 폭넓은 요구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이들은 대법원 설문조사의 내용상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별도의 글도 게시했다.


앞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제작.배포 등)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기 위해,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열흘 동안 판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판사들이 게시한 글을 보면, 대법원은 이 설문조사에서 14살 여자아이를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의 제작, 판매, 배포 등 범죄에 대한 적절한 양형을 제작의 경우 “2년 6개월에서 9년 이상”, 영리 목적 판매와 배포의 경우 “4개월에서 3년 이상”을 각각 보기로 제시했다.글을 올린 판사들은 설문조사에 제시된 보기의 범위 자체가 “법정형에 비해 상당히 낮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긑으로 설문조사에서 미성년자 상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특별감경인자로 “피해자의 처벌불원(처벌을 원하지 않음)”이나 “피해가 경미한 경우” “음란성이 약한 경우” 등이 포함된 것을 문제로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미성년자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도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고, 설사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표현하더라도 그것을 과연 ‘유효한’ 의사로서 고려하기 어렵다는 점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의 제작.판매.유포.소지에 있어 “경미한 피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정할 수 없다는 점 ▲불법촬영과 유포.소지 자체가 이미 피해자에게는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인데, 그 와중에 촬영물의 ‘음란성’의 정도를 나눠 그 정도가 약하다면 감경인자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13명의 판사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본질은 음란물 유포가 아닌 성학대와 성착취, 즉 지배와 폭력이고, 그 피해는 사회적 유포로 인해 새롭게 추가되며 발생한다”면서, “이러한 점들을 깊이 이해하고 반영한 양형기준 마련, 설문조사 등의 의견수렴이 새로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글을 맺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반려동물관리사 교육과정 모집
 Campus 라이프더보기
 건강·병원더보기
 법률/판결더보기
 교육더보기
 보건더보기
 환경더보기
 지역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