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훈 기자] 충청북도 북동부에 있는 충북 최동단 군으로 충청도에서는 가장 인구가 적고 인구 밀도도 가장 낮아 인구감소율 역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총 면적은 780.16㎢로, 북서쪽으로 제천시, 남쪽으로 경상북도 예천군, 문경시, 남동쪽으로 경상북도 영주시, 북동쪽으로 강원도 영월군과 접한다.
특히 제천시와는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더러 시멘트 산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 동네와 다름 없는 곳이다. 그나마 중앙고속도로가 뚫려있지만, 월악산, 소백산 협곡으로 막혀있는 도시이기에 접근성이 좋지 못하다.
지금의 단양군은 옛 단양군에 영춘현이 병합된 곳으로, 단양읍, 매포읍, 대강면, 적성면은 옛 단양군 지역이다. 영춘면, 가곡면, 어상천면 일대는 옛 영춘현 지역에 해당한다.
백제, 고구려, 신라의 통치를 모두 받아 본 유서 깊은 동네로,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속했다. 삼국 시대에는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고구려에 병합돼 고구려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현(赤城縣)이 됐다. 장수왕 사후 고구려가 약화되고 신라, 백제가 힘을 되찾자 6세기 중반 이 지역을 둘러싼 삼국의 경쟁이 발생했고, 550년 신라 진흥왕의 명을 받은 이사부 장군이 독살성-금현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신라 영토로 고착됐다.
또한 이때(545년∼550년) 단양 신라 적성비가 세워졌다. 757년(경덕왕 16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름은 그대로 적산현으로 하고 인근 내제군(奈堤郡:현재의 제천시)의 속현이 됐고, 9주 5소경 중 삭주에 속했다.
고려 때인 940년에는 단산현(丹山縣)으로 고쳤고, 이후 1018년(고려 현종 9) 원주에 속했다가 뒤에 충주로 이속됐다. 1318년(충숙왕 5) 단양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 단양군이 됐고, 1895년(고종 32) 충주부(忠州府)가 관할하다가, 1914년 4월에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해 현재의 단양군이 됐다.
한편, 영춘군은 고구려의 을아단현(乙阿但縣)[4]이다. 신라 경덕왕 때 자춘(子春)이라 개칭하여 내성군(奈城郡:현재의 제천시)의 영현이었다. 고려 때 영춘으로 고쳐서 원주(原州)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들어 1399년(정종 1) 충청도에 이관했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뒀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영춘군이 돼 충주부 관할이 됐다가 1896년 충청북도에 속했다.
1979년 5월 1일 단양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1980년 12월 매포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92년 1월 구(舊)단양출장소가 단성면으로 승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