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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142] 애플씨어터, 전 훈 번안/연출 '시라노 드 베르쥬락'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1-04-22 20:44:01
  • 수정 2023-02-15 07: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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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앞 안똔 체홉극장에서 애플씨어터의 에드몽 로스탕 작, 전 훈 번안 연출의 <시라노 드 베르쥬락>을 관람했다.

국내 연극계에서 러시아 유학파 1세대 연출가로 통하는 전훈은 러시아 국립 쉐프킨 연극대학교 연기실기 석사(M.F.A)로 졸업하고, 체호프와 스타니슬랍스키를 전공한 그는 애플씨어터를 창단해, 체호프의 4대 장막극의 연출은 물론 더욱 중요한 번역 작업까지 함께 하고 있다. 2015년에는 <플라토노프>와 <챠이카>를 공연하고, <챠이카>는 2016년까지 아트씨어터 문에서 연장 공연되었다.

2004년, 전 훈 연출가는 안똔 체홉 4대 장막전’을 기획해 1년 동안 <벚꽃동산>, <바냐아저씨>, <갈매기>, <세자매>를 번역하고 연출해 공연기록을 출간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한 명의 연출가가 1년 동안 체홉 4대 장막을 모두 연출한 것은 최초였다. 체홉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 일종의 트리뷰트(헌정) 기획이었다. 이 공연으로 전 훈은 동아연극상 연출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전 훈은 서울生으로, 보성고와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하고, 96년 러시아 모스크바 쉬옙낀 연극대 M.F.A.(연기실기석사)출신 연출가다. 1996년 희곡 <강택구>로 동서희곡문학 신인작가상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극단 애플씨어터 대표 겸 연출이고, 서울예대 연극과 출강중이다.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 1868∼1918)은 1868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파리 스타니슬라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을 공부할 생각을 하지만 1887년 마르세유 아카데미 문학상을 수상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1894년 코메디프랑세즈 무대에서 성황리에 공연된 <레 로마네스크(Les Romanesques)>와 더불어 극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당시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배우 사라 베른하르트와 함께 <머나먼 공주(La Princesse lointaine)>(1895),<사마리아의 여인(La Samaritaine)>(1897)을 무대에 올린다. 

같은 해 코클랭이 시라노 역할을 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1897)가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되고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의 공연은 옛날에 <앙드로마크(Andromaque)>, <에르나니(Hernani)>, <르 시드(Le Cid)>가 그랬던 것처럼 연극사에 기념비적인 날로 평가된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이어서 또 다른 작은 걸작인 <샹트클레르(Chantecler)>(1900)를 발표하고 사라 베른하르트가 자기 극장에서 공연하는데 뤼시앙 기트리(Lucien Guitry)와 코클랭이 참여하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해 그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고, 1901년에는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 되었으나, 몸이 허약해 시골에서 요양 생활을 하다 191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시라노』는 17세기 프랑스의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모티브로 한 5막 운문 희곡이다. 자유분방한 철학자이자 뛰어난 풍자 작가이며 당대 최고의 검술가였던 그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 달타냥의 모델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스탕은 이 호방한 귀족에게 기형적으로 거대한 코라는 외적 장애물을 설치함으로써, 백마 탄 왕자류의 이상적인 연인상을 파괴하는 한편 헌신적인 외사랑의 전형을 창출해 내었다. 또한 작품에 스며 있는 명랑하며 감상적인 영웅주의와 감미로운 연애감정, 그리고 기발하며 화려한 시구들을 오늘날에도 이 작품을 세계적 명작으로 평가 받게 한다.

무대는 접는 문 같은 백색의 장치를 전면에 배치해 막 구실을 한다. 막을 열면 검은 색의 중간막이 있고, 중간막을 이동시켜 록산의 저택 골목길, 테라스로 사용된다. 후반부에서는 갈대풀이 배경 가까이 심어져 있고, 전쟁터로 연출된다. 대단원에서는 록산이 있는 수녀원이 된다. 시라노의 흰 덮개로 가린 코, 그 코를 붕대로 감아 머리 뒤로 묶고 시종일관 행동하고, 병사들의 통일된 행동, 록산의 노래는 극 분위기 상승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주인공 시라노는 코 큰 남자. 코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실력을 지닌 검객이자 재기가 넘치는 시인이기도 하다. 의협심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성격이라, 아부를 극히 싫어해 후원자도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적을 만들고 있지만 재치로나 칼 솜씨로나 호걸 같은 위인이라 용케 신변을 건사하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배우가 서는 희곡 무대를 으름장으로 파탄 낸 다음 보상으로 월급을 몽땅 털어 주고 쫄쫄 굶으면서 다니는 행보에서 그 급한 성미와 고집이 드러난다. 가스코뉴 지방 귀족가의 둘째 자제로만 이루어진 가스코뉴 중대에 소속되어 있다.

팔촌지간인 록산을 애타게 짝사랑하고 있지만, 자신의 추한 외모 때문에 차마 고백은 하지 못한다. 심지어 록산은 가스코뉴 중대에 갓 부임한 노르망디 청년 크리스티앙을 사모하고 있다고 그에게 털어놓는다. 크리스티앙도 남 몰래 록산느를 사모해 온 처지이지만 잘생긴 외모에 비해 언변이 심각하게 모자란지라 그녀에게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시라노는 크리스티앙 대신 록산에게 전하는 사랑의 편지며 글귀들을 대신 일러 주는데, 절반쯤은 록산의 사랑을 성사시켜 주기 위해서고 절반쯤은 크리스티앙의 입을 통해서나마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안타까운 소망 때문이다.

시라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마침내 록산과 크리스티앙은 부부로 맺어지지만, 식을 올리자마자 스페인과의 전쟁에 가스코뉴 중대 전체가 출동하게 된다. 길고도 참혹한 아라스 포위전 동안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이름을 빌려 하루 두 통씩 록산느에게 러브레터를 보낸다. 그것도 편지를 부치기 위해 스페인군이 장악한 지역을 들락날락 하면서. 결국 크리스티앙은 시라노가 록산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동정심을 갖고, 동시에 록산이 그 자신의 진실한 영혼을 사랑한다고 고백해오자 그 사랑이 시라노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 절망하고 만다.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에게 '전투가 끝나면 그녀가 당신과 나 중 하나를 고르도록 할 테니 진실을 말해라' 라고 당부한 다음 돌격하다가 사망하고,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이 치명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진실을 묻어두기로 한다. 결국 록산은 크리스티앙을 기리며 수녀원에 들어가 미망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시라노는 장장 15년 동안이나 수녀원에 매주 들러 록산느를 위로하고 세상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특유의 성격 때문에 점점 적은 많아지고 생활은 쪼들려 가며, 결국에는 머리 위로 누군가 집어던진 굵은 장작개비 때문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만다. 움직이면 곧 사망이나 다름 없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시라노는 끝내 수녀원에 들러 평상시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가장하며 록산느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시라노는 마지막으로 크리스티앙이 록산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싶어 한다.

록산은 너무나 유창하고 또렷하게 편지를 읽어가는 시라노의 목소리를 들으며 점차 의혹에 빠진다. 마침내 사방이 어둑어둑해져 글씨가 보이지 않을 텐데도 편지를 끊김 없이 읽는 시라노의 모습 앞에서, 록산은 크리스티앙의 것으로 여겼던 편지가 모두 시라노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생에 여한이 남지 않은 시라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삶을 통해 끊임없이 싸워 왔던 비겁함, 위선 등의 환영에 맞서 칼을 휘두르다 록산의 품 안에서 눈을 감는다.

조 환이 시라노, 천현진이 록산, 이유청이 크리스티앙, 염인섭이 드 기슈, 김원경이 라그노, 차세인이 빵집 마누라, 류종현이 기사 르브레, 서준호가 까르봉 대장, 노영신이 기사 리니에르, 김 린이 빵집 마누라, 최장천이 기가 르브레, 홍건희가 크리스티앙, 김학건이 발베즈 자작, 이현준이 기사, 반준홍이 기사, 김수현이 수표판매원, 조민경이 귀부인 어린이 성가대, 저스틴 메데스 기사, 엘마스 할르즈 귀부인, 박희도 기사, 서성협 기사로 날자 별로 출연한다. 출연진의 기존의 공연과는 달리 경쾌하고 박력이 있을 뿐 아니라, 각자 성격창출이 확연하고 열정을 다하는 모습에서 관객은 2시간 30분 동안 공연에 몰입하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보낸다.

무대감독 김 린, 안무감독 박철중, 조명감독 최지훈, 무대디자인 드미트리 jh, 소품디자인 권대현, 분장 의상디자인 아오리 모아, 제작 애플씨어터, 기획 안똔 체홉학회, 극장장 정인범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애플씨어터의 에드몽 로스탕 작, 전 훈 번안 연출의 <시라노 드 베르쥬락>을 기존의 공연과는 다른 독특하고 창아기발(創雅奇拔)한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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