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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144] 씨어터 쿰-극단 희래단, 황성은 연출 '아일랜드 청춘을 외치다'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1-04-22 20:56:51
  • 수정 2023-02-15 07: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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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어터 쿰에서 극단 희래단의 아돌 후가드 작, 황성은 연출의 <아일랜드 청춘을 외치다>를 관람했다.

황성은은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과 출신의 배우이자 연출가다. 룸넘버 13, 나는 배우다, 시나리오, pray, 우리가 있는 곳, 경섬 등의 대본을 집필하거나 연출하고 출연도 한 기대주다.

1932년 남아연방 미들버그에서 태어난 아돌 후가드는 케이프타운 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회인류학을 전공한 뒤, 영국, 미국, 구라파 지역에서 연극관계 일에 종사하다가 케이프타운에서 활약하던 여배우 세일라 메이링을 만나 1957년 결혼해서 실험적 연극집단을 이끌게 된다. 1958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육개월 동안 재판소 서기로 근무한 생의 체험과 현대실험연극의 기수인 폴란드의 그로토후스키의 저서 <가난한 연극을 위하여>를 접하게 된 것은 후가드의 인생과 예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사건이었다. 그는 재판소 생활에서 인간적 고통의 심연을 목격했고, 남아연방이라는 한나라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이 세상의 구석, 한줌의 땅인 포트 엘리자베드에서 인종차별을 받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내일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을 통해서 내일을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오늘의 냉혹성을 통감하게 된다. 그는 이 현실앞에서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했지만 그의 작가적 양심은 역사의 오점을 전세계 인류에게 증언해야 되겠다는 사명감을 부여했다. 그는 그로토후스키의 예술적 방법을 도입해서 무대 위에 그의 결의와 꿈을 펼쳤다.

<아일랜드 청춘을 외치다>는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다 체포된 죄수들만이 갇혀있는 남태평양상의 고도(孤島) 로빈섬이 실제무대로서 한 감방의 두 죄수 윈스톤과 존의 극한상황 속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그들은 단순히 이상(理想)과 신념 때문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판사는 이들의 신념과 이상을 한낱 어린애 장난이라고 가볍게 밀어붙이면서 무기형과 10년형을 선고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게 되고 법의 모순을 회의하게 되며 권력의 비리에 울분케 된다. 

그러나 자기들의 주장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인간적 삶마저 차단된 그들은 유일한 변론기회로서 '안티고네' 재판극을 생각해낸다. 그때 마침 10년형의 존이 3년으로 감형되고 석방이 3개월 뒤로 다가오게 된다. 존은 기뻐 날뛰지만 종신형의 윈스톤은 더욱 절망한다. 이상과 범용한 삶이란 두 극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던 그들은 불굴의 신념을 되찾고 절망과 내면적 죽음마저 초극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최후 수단으로서 안티고네 재판을 연출하여 당국을 통렬하게 비판한 뒤 다시 손발에 수갑을 찬다. 안티고네 재판은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로서 인위법(人爲法)이 신법(神法) 위에 놓일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들이 본보기로 가져온 희랍비극이다. 그러니까 인위법이 자연법 위에 놓이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기본권마저 짓밟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법과 양심, 정치와 도덕성의 갈등으로서 인류사를 관통하여 언제나 제기되는 문제인 것이다. 

<아일랜드>가 설득력과 감동을 안겨주는 이유는 바로 인위법에 맹종하지 않고 자연법과 양심, 그리고 인간애를 좇아 참담한 죽음을 택하는 처녀 안티고네의 비극적 삶을 남아 흑인들의 리얼리티로, 더 나아가서는 모든 세계 관객의 리얼리티로까지 승화시킨 데 있다. 이처럼 <아일랜드>는 자연법과 인위법의 갈등, 자유와 운명의 갈등, 국가와 개인적 삶 등을 매우 예각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러면서 법 뒤에 도사린 권력악을 고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흑백 인종문제를 넘어 인간 대 정치권력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고 현대인의 자기 확인으로까지 이어져 간다. 이처럼 문제성을 지닌 작품이면서도 예술성이 높은 것은 인간탐구에 대한 깊이는 물론 두 죄수의 인간적 삶에 대한 끝없는 동경과 좌절, 고통과 슬픔이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무대는 감방이다. 깡통 식기와 작은 그릇, 그리고 담요가 놓여있다. 배경 가까이 감방의 철창문이 있어, 열면 철문 여닫는 소리가 난다. 죄수들은 안티고네를 공연하기 위해 노끈으로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만들어 쓰고, 역시 노끈으로 장식을 만들어 사용한다. 출연자가 머리를 박박 깍고 죄수복장 차림으로 연기한다.

이한별과 박민서가 죄수로 출연해 성격설정은 물론 호연과 열연으로 연극을 이끌어 가고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기획 홍보 도유정, 조연출 정현찬, 후원 케이티 이큅먼트 건설기계협동조합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깃들어, 씨어터 쿰에서 극단 희래단의 아돌 후가드 작, 황성은 연출의 <아일랜드 청춘을 외치다>를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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