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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11] 안관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신암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0-03 19:57:20
  • 수정 2022-10-03 20: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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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신암서원은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있었던 서원으로, 1780년(정조 4)에 안관(安灌)을 향사키 위해 사(祠)와 서원강당이 건립되고 1784년(정조 8)에 승원(昇院)했다. 


1823년(순조 23)에 강당을 이건하고 1850년(철종 1)에 두 번째 중건을 행했으나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 한동안 복원하지 못했으나, 1990년 3월 신암서원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리해 향내 유림의 지원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1992년 10월에 착공해 1993년10월 23일에 준공했다.



안관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관지(灌之), 호는 취우정(聚友亭). 안축(安軸)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안해(安該)이고, 외할아버지는 성산 이씨이윤창(李胤昌)이다. 아버지는 안존도(安尊道)이고, 부인은 권순(權舜)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아들은 안인로(安仁老).안의로(安義老).안덕로(安德老)이고, 사위는 오수정(吳守貞).박윤수(朴允秀).이희인(李喜仁).권기(權紀)이다.



안관(安灌)[1491~1553]은 경기도 시흥[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태어났다.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교유했고, 1510년(중종 5) 효성과 학행으로 천거돼 돈령부 참봉에 임명됐으나 사양했다. 연이은 사화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1523년(중종 18) 동생 안탁(安濯), 조광조의 고제(高弟)인 박덕손(朴德孫)과 함께 경상남도 함안군여항산 속에서 은거하면서 강학 활동에 전념했다. 




1537년(중종 32) 사직(司直)에 제수돼 잠시 나아갔다 여항산으로 돌아왔다. 1548년(명종 3) 만하봉(晩霞峰) 아래 사락동(士樂洞)에 취우정을 지어 강학했다. 1552년(명종 7) 오위도총부 용양위 부호군(五衛都摠府龍驤衛副護軍)에 올랐다. 1553년 2월 23일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도음동(都音洞)에서 63세로 생을 마감했다.



저서로 2권의 '취우정 실기(聚友亭實紀)'가 전한다.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산38-1에 있다.


1780년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신암 서원을 세워 안관을 제향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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