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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18] 정선경 등 제향한 고령 ‘반암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0-10 09:23:16
  • 수정 2022-10-10 09: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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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반암서원은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원전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으로, 여말선초 문신이었던 정구(鄭矩)로부터 아들인 정선경(鄭善卿), 손자인 정종(鄭種), 정비(鄭秠)를 제향한 서원이다. 


정구[1350~1418]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정양생(鄭良生)의 아들이다. 자는 중상(仲常), 호는 설학재(雪壑齋)로 1377년(우왕 3) 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여 전교시부령(典校寺副令)을 지내고, 1382년 김극공(金克恭)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생활을 했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한성부우윤을 지내고 1394년(태조 3) 왕명으로 한리(韓理).조서(曺庶).권홍(權弘).변혼(卞渾) 등과 함께 ‘법화경’ 4부를 금니(金泥)[금박가루를 아교풀에 갠 것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쓰임]로 썼다. 정종 때 도승지(都承旨).대사헌(大司憲), 태종 때 예문관학사(藝文館學士)를 거쳐 공조판서(工曹判書).호조판서(戶曹判書) 등을 역임했다. 1417년(태종 17) 명나라에 건너가 홍무연간(洪武年間)에 만든 각궁(角弓)을 구입해 왔다.


정구의 아들 정선경[1395~1442]의 자는 선지(善之), 호는 반곡재(盤谷齋)이다. 내섬시판관(內贍寺判官)을 역임하고 아들 정종의 훈공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호조판서(戶曹判書)로 증직됐고 동평군(東平君)에 봉작됐다. 정종은 조선 초기의 무신으로 자는 묘부(畝夫), 호는 오로재(吾老齋)이다. 1442년(세종 24) 무과에 급제하고 1453년(단종 1) 11월 이징옥(李澄玉)의 난 때 종성절제사로서 이를 포살(捕殺)한 공으로 군공(軍功) 1등에 책록되고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진했다.



그 뒤 행상호군(行上護軍)이 됐고, 이듬해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도와줌으로써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됐다. 1461년 10월에는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홍익성(洪益成)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7년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율원군(栗元君) 종(從)의 휘하로 총통군(銃筒軍)을 이끌고 출전해 평정에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행충무위상호군 겸 오위장에 임명됐고, 처음 칠산군(漆山君)에 봉해 졌다가 곧이어 동평군(東平君)으로 개봉됐다. 이어 충청도도절제사를 거처 경주부윤(慶州府尹)이 됐다. 정비는 정선경의 아들로 호는 기우자(騎牛子)이다. 관직은 충좌위부사정(忠佐衛副司正)을 지냈으며 호조참판에 증직됐다. 



본래 반암서원은 정종의 별묘(別廟)였다. 처음에 정구는 1777년 정충사(靖忠祠)에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와 함께 모셔져 있었으나 1794년 정충사에서 다른 분을 추향하게 돼 같은 해  9월 이곳으로 이봉(移封)하면서 반암서원이라 현판(懸板)했.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서원이 철폐(撤廢)됐고, 이 후 반암서당으로 현판했다가 건물이 노후해 1994년에 확대 개축했다.



서원에는 강당인 반암서당과 뒤쪽에 사당인 세덕사가 있어 전학후묘(前學後墓)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당인 세덕사(世德詞)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맞배지붕 형식이다. 전면에 반 칸의 툇간을 구성해 의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고 사당으로서는 보기 드문 다포 형식을 보인다. 어칸에는 2구의 간포, 좌우 협칸에는 1구의 간포를 얹었다. 강당인 숭덕재(崇德齋)는 전체 5칸 중 중앙 2칸에 마루를 두고 좌·우로 온돌방을 설치했다. 무익공(無翼工) 형식의 건물로 3량 구조이나 방 전면에 툇간을 구성키 위해 중간에 사잇기둥을 놓았다.



동평군파(東平君派) 종중회 정기총회가 매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반암서당에서 개최되고 음력 10월 5일 향사를 지내고 있다. 소장 자료로는 경내의 현판인 ‘반암서당(盤巖書堂)’, ‘숭덕재(崇德齋)’, ‘수궐문(修厥門)’, ‘고경문(高景門)’과 비석 4기가 있다. 이 비석은 정구, 정선경, 정종, 정인운의 신도비로 이 중 정종의 비문은 그의 후손인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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