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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44] 조계사의 말사로 관음성지 33호 ‘도선사(2)’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0-16 15:41:11
  • 수정 2024-04-02 03: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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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박광준 기자] # 자비문과 천지문



연화석주로 된 총문인 이 자비문(慈悲門)은 청담대종사의 친필 휘호인 자비무적(慈悲無敵) 방생도량(放生道場)을 조각 한데서 유래한다. 이 자비문에서 또 200m 가량 올라가면 하늘과 땅이 근본에 있어 하나임을 상징하는 일명 불이문(不二門)인 천지문(天地門)이 있다.


# 배바위고개



붙임바위라고 불리는 바위는 돌을 붙여 떨어지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 어진다고 하여 많은 흔적들이 남겨져 있다. 이곳을 지나 왼쪽 계곡에는 청담폭포가 흐르고 있다.


# 마음의 광장과 미소 석가불



산내 광장으로 상당히 드넓은 이 ‘마음의 광장’ 중앙에는 한국 최대의 석조옥외좌불인 미소(微笑)석가불이 있어, 모든 불자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일깨워 참배케 한다. 미소석가불 뒤쪽으로는 삼각산의 주봉인 백운대.만경봉.인수봉이 우뚝 솟아 있어, 마치 미타삼존인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보는 듯 하다.


# 사천왕문(四天王門)



사천왕(四天王)은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4명의 수호신이다. 이들을 모신 사천왕문은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청정도량(淸淨道場)을 만들고 수행자의 마음속에 깃든 번뇌와 좌절을 없애 한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세워진 경계(境界)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온몸에 동방(東方)을 나타내는 오행색(五行色)인 청색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고 오른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대고 있거나 손바닥 위에 보석을 올려놓고 있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몸이 흰빛이며 웅변으로 나쁜 이야기를 물리치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붉은빛을 띤 몸에 부릅뜬 눈을 지니고 있다.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검은빛을 띠며 비파를 잡고 있다.


# 포대화상(布袋和尙)과 부도(浮屠)



포대화상은 당나라 때의 승려로 명주 봉화현 출생.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주를 구하거나 시대나 인간사의 길흉 또는 일기를 점쳤다 한다. 중생의 번뇌를 포대에 담아 든 ‘미륵보살의 화신’이라는 존경을 받았다. 


# 청동지장보살상(靑銅地藏菩薩像)




도선사 자매사찰인 일본의 고야산 진언종 안양원에서 1983년 11월 15일 청담대종사 열반재 때 삼각산 도선사에 봉정 돼 일체 중생의 서원처가 되게 했다.


# 사리탑(舍利塔)과 삼천지장보살상(三千地藏菩薩像)




사적비와 청담대종사 석상, 비, 사리탑으로 올라가는 108계단이 있고 청담대종사의 사리탑 주변은 삼천지장보살상이 조성되어 있다.


# 종각(鐘閣)과 12지신상(支神像)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다. 불법을 널리 전하여 중생의 마음을 울려 해탈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고 온갖 걸어 다니는 축생(畜生)을 제도한다고 한다.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써 만든 구름무늬 모양의 판으로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면서  떠도는 영혼을 천도(薦度)한다.


목어는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배 부분을 파내고 그 안쪽의 벽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게 한 것이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고 하며 지금은 목어의 소리로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2지신상범종은 본래 대중을 모으고 때를 알리기 위해 쳤으나, 점차 조석예불이나 의식을 치를 때 치게 되었다. '범종'은 청정하고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으로 천상과 지옥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의미로 법음을 전파한다. 보통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을 치는데 아침은 욕계. 색계. 무색계 중 천상계인 28천의 중생을 깨우며, 저녁은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5계와 28천을 합쳐 33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



호국참회원 전면에 봉안된 문수보살은 반야 지혜의 권화로 표현되어,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된다.


# 청담심지(靑潭心地)



원래 청담대종사께서 주석하시던 백운정사 곁에 있었던 청담 심지가 대종사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적묵당(寂默堂) 밑 언덕에 새롭게 조성됐다.


# 호국참회원(護國懺悔院)


한국불교의 중흥과 조국 평화 통일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해 참회기도를 제창하신 청담대종사의 원력으로 많은 신도들의 정성과 한국불교의정화불사 의지를 한데 모아 1968년 11월에 건립됐다. 



이곳에는 청담대종사의 진영(眞影)이 모셔져 있고, 주요법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참회원 대법당의 본존불인 아미타불좌상과 대세지 보살상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층에서는 실달승가학원·일요가족법회·어린이회·학생회등 여러 신행단체가 개설되어 마음 수련을 쌓고 있어서 언제든지 참배할 수 있으며, 1층은 참배객들의 공양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명부전(冥府殿)



대웅전의 오른쪽, 청담대종사께서 생전에 주석하시던 백운정사 터에 명부전이 들어서 있다. 지옥고의 중생구원을 서원하는 지장보살과 인간의 선악을 살펴 그 상벌을 다스리는 10대왕 등 33위의 상이 봉안돼 인과(因果)의 엄정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청정지행을 일깨워준다. 


도선사 명부전 안에 모셔져 있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영정

명부전 안에는 고(故) 정주영 회장의 영정도 모셔져 있다.명부전의 앞뜰에는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어떤 고승이 인도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보리

수가 고목이 돼 서 있고, 명부전 옆에는 청담대종사께서 직접 조성했던 심지(心地)가 수줍은 듯이 자리 잡고 있다.


# 윤장대(輪藏臺)



윤장대는 법보인 부처님 가르침이 시방세계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고 지혜가 수승해져 삼독심(三毒心)을 걷어내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불교경전을 안에 넣어 두고 손잡이를 돌려가며 불경을 외는 장치로,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전해진다.


# 대웅전(大雄殿)




도선사 대웅전은 1,100여년전 신라 경문왕 때 창건하여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그 후 고승 혜명, 관수, 연은, 근명스님 등이 광무황제의 어명을 받아 중건하는 한편 아미타불 본존불상을 개금하고 상단불화 등을 그려 봉안했다. 



법당내부에는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등 삼존불이 봉안됐고, 외벽에는 팔상도가 조성돼 있다. 대웅전의 현판은 당대의 신동(神童)이었던 12세 강창회(姜昶會)가 쓴 글씨로 유명하다


# 반야굴(般若窟)



쌍용그룹 창업주인 고(故)김성곤 회장이 석굴암을 참배한 후 감동을 받아서 세 분의 보살님을 조성하여 도선사에 모셨다. 중앙이 십일면관세음보살, 오른쪽이 잔을 든 문수보살, 왼쪽이 경책을 든 보현보살이다.


# 삼성각(三聖閣)


대웅전 옆쪽이자 아래쪽엔 칠성광여래불,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모신 삼성각이 있다. 원래 이곳은 조선 말엽인 철종14년 9월, 세도가 김좌근이 칠성각을 건립해 명(命)과 복(福)을 빌었던 원당(願堂)이었다. 이후 말세의 복밭이라고 신앙하는 나한인, 머리카락이 희고 눈썹이 긴 빈두로존자, 즉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으로 개조 됐고, 다시 중.개축을 해 지금의 삼성각으로 구조를 바꿨는데, 많은 신남신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독성상'은 삼성각에 봉안된 석조 독성상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2호 지정돼 있다. '독성상'은 불교의 많은 나한 가운데 남인도의 천태산(天台山)에 살면서 부처가 된다는 석가불의 예언(受記)을 받고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상은 본래 석불전(石佛殿) 내에 독성각에 봉안돼 있었으나 현재의 자리로 건물을 이건하면서 전각의 명칭 역시 삼성각(三聖閣)으로 바뀌었다.


오른손은 바닥을 짚고 왼손은 왼쪽다리를 세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 머리는 삭발했고 얼굴은 갸름하고 양감이 있고, 코는 비교적 큼직하지만 입이 작고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붉은 가사(袈裟)를 묶은 고리매듭이 왼쪽 어깨에 있다.


독성상은 1992년에 새롭게 개채(改彩)가 이뤄졌는데 이때 1876년(고종 13)에 개분(改紛)한 사실을 기록한 '독성나반존자개분봉안축원문'이 출토됐다. '독성상'의 제작연대는 18세기로 추정된다. 16나한상의 모습과 매우 비슷해서 16나한상의 중의 한 분으로 조성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독성상'은 조선후기에 그 예가 희귀한 석조 독성상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독성신앙과 조각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석불전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



구전에 의하면 조선 말엽인 철종 14년 동호(東湖)스님이 명산을 두루 다니면서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하다가 도선사에 인연이 닿아 머물게 됐다. 10년 동안 석불전에서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부처님의 수기(受記)를 받으리라 발원하면서 주야를 쉬지 않고 지성으로 정진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주위가 금빛으로 빛나는 가운데 홀연히 한 도승(道僧)이 주장자를 들고 나타나 남쪽을 가리키며 “어찌하여 저쪽으로 나가보지 않느냐?”며 일갈한 후,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꿈을 깨듯 정신을 차린 동호 스님은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며칠을 열심히 가다가 보니까 폐사가 된 남지장사(南地藏寺)에 닿았다. 그곳에서 방광하는 부처님의 사리와 치아를 발견 하게 돼 소중히 모시고 와 석불전에 7층 석탑을 세우고 봉안했다 한다.


# 석불전(石佛殿)



도선사의 대표적인 유물로 손꼽히는 '마애불입상'은 대웅전 뒤편 석불전 영역에 있는데, 높이 20m 정도의 커다란 바위 면에 얕게 돋을새김한 여래상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돼 있다.


석벽(石壁) 상단에 보개(寶蓋)를 만들기 위해 암벽을 파내고 직사각형의 석재 일곱 개를 끼워 넣었고, 근래에는 '마애불입상' 주변으로 청동 보호각을 설치했다. '마애불입상' 앞쪽으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고, 1887년에 세운 '칠층석탑'과 조선말기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마애불입상'은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낮은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머리 중앙에는 부채꼴의 중앙계주가 새겨져 있고, 각진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을 음각으로 처리해 눈두덩과 눈 밑 살이 두툼해 보인다. 코는 넓은 콧등과 둥근 콧볼 및 반달 모양의 콧구멍을 표현했고, 인중이 짧고 입은 작아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느낌이다. 작은 입주변으로는 수염을 새겼다. 사적기 등에 언급된 것처럼 도선국사에 의해 조성된 상으로 보기에는 양식적인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어 신라시대 조성설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양식적인 특징으로 미뤄 보아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마애불입상 양식을 이어받아 조선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일심광명각(一心光明閣)



일심광명각은 반야굴 위에 무지개로 화현하신 청담대종사를 기리기 위해 18나한님과 함께 조성됐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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