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시민들 “추모 우선, 정치화 말라”... 채팅창엔 “희생자 모욕땐 신고”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1-02 11:34:52

기사수정

꽃으로 뒤덮인 이태원역/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참사’ 피해자 애도 공간에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박광준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틀 뒤인 지난달 31일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임시로 마련된 애도 공간 앞에서 한 남성이 “이상민 ××, 윤석열 ××”라며 욕설을 했다가 곧 밀려났다. 한 여성이 “여기는 추모하는 공간이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게 먼저”라면서 막아선 것이다. 전날에도 한 남성이 “이게 다 문재인 탓”이라고 외치다가 슬며시 물러났다. 주변 시민들이 “희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면서 말렸기 때문이다.


1일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에는 추도객 200여 명이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었다. ‘너희들 탓이 아니야’ ‘못다 이룬 꿈 하늘에서 마음껏 펼치길’ 같은 글이 적힌 종이가 건물 벽에 빼곡히 붙어 있었다. ‘희생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글도 보였다. 


희생자를 애도하러 왔다는 50대 남성은 “비극적 참사를 정치 도구로 이용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유권자들이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다.


‘참사의 정치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온라인 등에서도 나타났다. 방송사 뉴스 생중계 화면에서 특정 정치 세력을 비난하는 댓글이 달리면 바로 “정치화하지 마라” “제발 추모만 하라”는 답글이 올라오고 있다.


사망자와 부상자 등에 대해 허위 사실로 명예훼손 하는 등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일부 네티즌들에 대해서도, 다른 네티즌들이 “희생자를 모욕하는 게시 글이 보이면 신고하자”면서 나서는 모습도 보였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참사의 정치화’ ‘희생자 명예훼손’ 등에 대해 다수 대중이 ‘이러면 안 된다’며 중심을 잡으려는 일종의 ‘자정(自淨) 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재난이 터질 때마다 가짜 뉴스를 동원한 정치적 선동,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모욕 등이 이어졌던 부작용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심리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이어 “과거 경험을 통한 학습 효과로 시민 의식이 성숙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2차 가해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태원 같은 곳에 다니며 술 먹고 놀기 좋아하는 애들은 죽어도 아깝지 않다’ ‘귀신 축제에 갔다가 귀신 됐네’ ‘이런 거 보면 기분이 좋아짐’ 같은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계속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부 네티즌은 ‘술 마시러 갔다 죽은 거 아니냐’며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데, 이는 ‘짧은 치마 입어서 성폭력당한 것 아니냐’와 같은 논리”라면서, “희생자 가족들에게 조용히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2차 가해에 정부도 적극 대응 중이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행위와 개인 정보 유출 행위 등 온라인상 허위 사실 유포 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명예훼손 게시 글 6건에 대해 내사에 착수하고 허위 사실 유포 게시 글 63건을 삭제.차단 요구했다고 밝혔다. 


방통위와 개인정보위도 관련 게시 글을 모니터링하고 차단 조치키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국가트라우마센터 내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하고 사고 관련자들에 대해 심리 지원에 나섰다.


이동귀 한국상담심리학회장(연세대 교수)은 “여러 정부 기관들이 연계해 빠르게 2차 가해를 막아야 트라우마(trauma)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반려동물관리사 교육과정 모집
 Campus 라이프더보기
 건강·병원더보기
 법률/판결더보기
 교육더보기
 보건더보기
 환경더보기
 지역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