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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만 전하던 조선후기 미공개 회화, 미국서 귀환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4-04 09: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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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광주박물관, 허민수 컬렉션 기증받아
  • 석농화원 묵매도.신명연 동파입극도 등...조선회화사 중요작 포함

김진규, 묵매도, 조선 18세기, 석농화원 권1 수록작품, 국립광주박물관 소장(허민수 기증)/국립광주박물관 제공[이승준 기자] 제목과 그림의 평만 전해져 내려오던 조선시대 후기의 귀한 그림이 미국서 귀환한다. 한국회화사의 공백을 채워줄 미공개 회화들이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조선시대 최대 서화 컬렉션으로 꼽히는 ‘석농화원(石農苑)’의 기록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김진규(金鎭圭·1658-1716) ‘묵매도(墨梅圖)’와 신명연(申命衍·1808-?)의 ‘동파입극도(東坡笠圖)’ 등 넉 점을 지난달 28일 기증받았다고 4일 밝혔다.


이 작품들은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펙스 카운티에 거주하는 게일 허(Gail Ellis Huh)여사가 시아버지인 고(故)허민수(1897-1972)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 미국사무소의 조사와 교섭을 통해 허민수 선생의 연고지인 국립광주박물관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3월 28일 열린 기증서 전달식 (좌로부터 이애령 국립광주박물관장, 게일 허여사,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장)/국립광주박물관 제공‘석농화원’은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자들 사이 ‘전설의 화첩’으로 불린다. 의관이자 수장가였던 김광국(金光國·1727-1797)이 일평생 모은 그림을 한 데 수록했기 때문이다. 부록 1권을 포함해 총 10권으로 구성됐으며 정선 18점, 심사정 14점, 이정 6점, 윤두서 5점, 김홍도 3점 등 한국 화가 101명의 267폭 작업이 수록됐다. 김광국은 50대 이후를 이 화첩을 만드는데 바쳤다. 58세에 본첩(총 4권)을 완성했고 마지막권인 부록은 70세에 완성했다. 화첩엔 그림뿐만 아니라 당대 문사와 명사들이 짓고 최고 서예가들이 쓴 화제(시문)와 화평(그림평)이 붙었다.


석농화원은 김광국 사후 사라졌고 현재까지 일부 그림만 전해진다. 그러다 2013년 말 서울 인사동 화봉갤러리 고서경매에 석농화원 육필본이 나왔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낙찰받은 뒤 한글 해제본인 ‘김광국의 석농화원’(2015)을 펴냈다. 김진규의 묵매도는 이 책의 권1에 나온다. 유홍준 전 청장은 “김진규의 현존하는 작품 중 최고 명작으로 보인다. 18세기 사실적 화풍과 그 이전 담백한 화풍이 만나는 시점의 작품이다. 담채도 능숙하며 품격이 높은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신명연, 동파입극도, 조선 19세기, 국립광주박물관 소장(허민수 기증)/국립광주박물관 제공신명연의 동파입극도는 동파 소식(東坡 蘇軾·소동파·1037-1101)이 해질무렵 갑자기 비를 만나 귀양 시절 삿갓과 나막신 차림으로 허둥지둥 비를 피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깔깔 웃었고, 동네 개들마저 짖었다는데 정작 소동파는 이런 비참한 상황에도 누구를 탓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다는 일화다. 신명연은 화사한 화훼도로 유명하기에, 귀한 인물화라는 점에서 19세기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다.


기증자 고 허민수는 전남 진도 출신의 은행가이자, 호남화단의 거장 소치 허련(許鍊·1808-1893) 가문의 후손이다. 기증품 중에는 소치의 작품도 2점 포함돼 있다. 힘차게 뻗은 소나무를 그린 ‘송도 대련’과 8폭으로 된 ‘천강산수도병풍(淺絳山水圖屛風)’이다. 특히 병풍 뒷면에는 의재 허백련(許百鍊·1891-1977)이 쓴 표제가 남아있어, 두 사람의 깊은 인연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허련, 송도 대련, 조선 19세기, 국립광주박물관 소장(허민수 기증)/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이번 기증은 2022년 5월 소장자 게일 허 여사가 고인이 된 남편 허경모 씨가 시아버지 허민수 선생에게 물려받은 허련의 그림을 정리하기 위해, 이웃에 살던 한국인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며 시작됐다. 이후 워싱턴한국문화원을 통해 연락을 받은 당시 재단 미국사무소장은 소장자의 자택에서 허련 작품 감정 및 자문을 하던 중 1층 복도 구석에 걸려있던 김진규의 ‘묵매도’를 발견했고, 이후 조사 과정에서 신명연의 ‘동파입극도’를 추가로 확인했다.


재단 측으로부터 소장품들의 회화사적 중요성과 환수의 필요성을 전해 들은 게일 허 여사는 흔쾌히 한국에 기증할 뜻을 밝혔고, 시아버지 허민수 선생의 고향인 진도와 가까운 국립광주박물관에 시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증할 것을 결심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작년 말 현지 조사를 거쳐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들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올해 초 기증 서화 4건이 마침내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허련, 천강산수도병풍, 조선 19세기, 국립광주박물관 소장(허민수 기증)/국립광주박물관 제공미국 현지시간 3월 28일,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개최된 국립광주박물관 기증서 전달식에 참석한 게일 허 여사는 “시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작품들이 가장 잘 향유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매우 기쁘다”며 기증소감을 밝혔다.


국립광주박물관과 재단이 국외 문화재 환수로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17년 분청사기상감 ‘경태5년명’이선제묘지(보물) 이후 두 번째다. 이번 기증으로 재단의 해외사무소를 통한 환수는 총 19건 305점에 이른다.


고 허민수 선생/국립광주박물관 제공시각예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입니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합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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