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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98] 닭벼슬 닮은 계룡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원사’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4-05 04:21:51
  • 수정 2024-04-02 04: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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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계룡산 남쪽에 위치한 신원사(新元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며, 계룡산 3대(신원사,갑사,동학사) 사찰중의 하나이다. 651년(의자왕 11)에 고구려의 보덕이 창건한 사찰이고, 조선 후기에 무학이 중창하면서 영원전을 지었고, 1866년(고종3)에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신원사라 했고, 1876년에 보연이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충남 유형문화재), 노사나전(국보), 독성각, 천수관음전, 영원전, 중악단(보물), 오층석탑(지방 유형문화재) 등이 자리했다.


 

     ▲ 일주문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돼 사주(四柱)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형식으로 돼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건축양식은 주로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에 현판(懸板)을 걸어 사찰의 격(格)을 나타낸다. 

 



     ▲ 사천왕문


사찰로 들어서는 일주문 다음에 위치하는 대문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시는 곳으로, 그림 또는 조상(彫像)한 사천왕을 봉안한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화적인 존자들로서,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천왕들이다.


사찰에 이러한 천왕상을 봉안한 천왕문을 건립하는 까닭은 절을 외호한다는 뜻도 있고,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이 수호신들에 의해서 도량 내의 모든 악귀가 물러난 청정도량이라는 신성관념을 가지게 하려는 뜻도 있다. 또한 수행과정상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볼 때는 일심(一心)의 일주문을 거쳐 이제 수미산 중턱의 청정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 범종각


범종각은 법당의 네 가지 주요 물품인 범종.운판.목어.홍고 등을 비치하는 사찰당우 중의 하나로 2층의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루라 하고, 불전사물 가운데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고 한다. 이곳에 비치되는 사물은 모두 부처님에게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불과 사시공양(巳時供養), 저녁예불 때에 사용된다.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북으로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구름 모양의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의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신원사는 범종만을 봉안해 있다.

 








      

 







       

    ▲  대웅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신원사는 계룡산 기슭에 있는 절로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이 처음 지었다고 전하며,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번 다시 지어졌고, 지금의 대웅전 건물은 조선 고종 13년(1876)에 보연이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처마의 끝을 살짝 올려 우아한 멋을 나타냈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 건물이며, 연꽃을 조각해 장식했고 매우 간략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하여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위에 닫집을 설치하여 장엄하다.




     ▲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국보 제299호)


노사나불 괘불탱(新元寺 盧舍那佛 掛佛幀)는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대신해 노사나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길이 11.18m, 폭 6.88m 크기의 이 괘불은 노사나불이 단독으로 중생을 설법하는 모습으로,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 등이 그려져 있다. 


단독으로 그려진 노사나불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손은 신체에 비해 큰 편으로 손바닥을 들어올려 설법하는 모습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녹색과 홍색, 분홍색 등을 이용하여 옷을 표현하였고, 5가지색으로 빛을 형상화하여 주변 배경을 표현했다. 중심 불상의 좌우에는 각기 다른 물건과 두광이나 옷색의 차이 등을 이용해 10대보살들을 표현하고 있다. 보살 위의 10대제자들은 서로 다른 얼굴 방향과 표정, 각기 다른 옷과 물건, 자연스러운 동작과 모습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인조 22년(1644)에 제작된 이 괘불은 짜임새있는 구도, 섬세한 표현, 밝게 표현된 색조 등이 세련된 솜씨로 표현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화양식을 보여주는 17세기 대표적인 작품이다.


노사나전은 노사나불괘불탱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어졌다.

 





     ▲ 독성각


독성각은 사찰에서 스승없이 홀로 깨친 독각의 성자를 봉안하는 건축물이다.


독성은 독수선정(獨修禪定)하여 도를 깨달은 자로서, 일반적으로 독성각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봉안하는 것을 통례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독성신앙에 특유의 단군신앙을 가미시켜 새롭게 수용하고 전개시켰다. 따라서 독성각은 우리나라 사찰 특유의 전각 중의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인 독성탱화(獨聖幀畫)를 모시게 되는데, 사찰에 따라서는 탱화만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 천수관음전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사찰 당우로 관음보살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관음전이 많이 세워진 까닭은, 관음이 모든 환란을 구제하는 보살일 뿐 아니라 그의 서원이 철두철미하게 중생의 안락과 이익에 있고, 불가사의한 인연과 신력(神力)으로 중생을 돕기 때문이다.


관음전 내에는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연화좌 위에 앉은 관음상을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이나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양류관음(楊柳觀音), 보관 위에 11개의 다른 모습을 가진 십일면관음, 그 밖에 해수관음(海水觀音)·백의관음(白衣觀音)·용두관음(龍頭觀音)·천수관음(千手觀音) 등을 모시기도 한다.


후불탱화(後佛幀畵)로는 양류관음도.백의관음도·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千手千眼觀世音菩薩圖) 등, 봉안된 관음상의 유형에 따라 봉안하게 된다.

 





     ▲ 영원전


신원사의 영원전은 다른 사찰의 명부전에 해당되며, 사찰에서 저승의 유명계를 상징으로 유명계주1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시왕전(十王殿)이라고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도량으로 이용된다.


또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왕 가운데 다섯번째 왕이다.


원래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 · 소상(小祥) · 대상(大祥)까지 열 번에 걸쳐 각 왕에게 살아 있을 때 지은 선악의 업을 심판받게 된다고 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위하여 절에서 재(齋)를 모시게 된다.


이 때 명부전에서 재를 모시게 되는 까닭은, 지장보살의 자비를 빌려 시왕의 인도 아래 저승의 길을 벗어나 좋은 곳에서 태어나게 하고자 하는 데 있다.


명부전에 봉안하는 후불탱화는 소재회상도(消災會上圖)로, 지장보살 뒤에는 지장탱화를 봉안하고 시왕 뒤편에는 명부시왕탱화를 봉안한다.


우리 나라 사찰에서는 매월 일정한 날에 명부전에서 지장제(地藏祭)를 지내고 있다.


명부전은 일반적으로 대웅전을 향하여 우측 편에 위치한다. 신원사 영원전(명부전)은 무학대사가 건립했으나 현재 건물은 1982년에 지었다.

 

   

     ▲ 포대화상


포대(布袋, 생년 미상-917년(?))는 당나라 말기부터 오대 십국 시대까지 명주(현재의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 실재했다는 전설적인 불승이다. 


본명은 계차(契此) 또는 석(釋)자를 붙여 석계차(釋契此)라고 했다.항상 포대(헐렁한 주머니)를 짊어지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布袋)라는 속칭이 붙었다. 석명현(四明縣) 출신이라는 설도 있지만, 출신지도 속성도 불분명하다. 올챙이 배를 한 자태로, 절에 산 것도 아니고 처소를 누볐다고 한다. 또, 큰 자루를 항상 짊어지고 있었으며, 비린내 나는 것도 상관없이 시주를 받고, 그 중 일부를 포대에 넣었다고 한다. 그 모습은 특이했지만,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을 충만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 공주 계룡산 중악단(보물 제1293호)


계룡산 중악단(公州 鷄龍山 中嶽壇)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원래는 이곳에 대웅전이 자리잡다가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이 위치해 지었다. 이곳의 중악단은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배치하고 있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壇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적용했고,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한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해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셨다.


1.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고,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했다. 



 


중악단은 두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동물 모양의 조각상을 배치했다. 이 조각상은 사찰에서는 신장님을 뜻하며, 경복궁에 11개, 신원사 중악단에 7개, 창경궁에 5개가 있고, 현존하는 건축물에는 유일하게 청와대 지붕 위에 있다. 

이 조각상은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 자금성에 11개가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특징은 탱화가 다른 사찰의 탱화는 호랑이가 있는데, 신원사의 산신각인 중악단 탱화는 호랑이가 없고, 호랑이 대신 물속에 사는 동물로 해태를 그려넣어서 계룡산의 산불을 예방하는 대비를 했다고 전한다.


중악단은 우리나라의 토속신앙과 유교건축물이라는 특징도 갖고 있는데, 조선시대는 정치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써서 유교식 양식에 따라 건축했으므로 문이 세 개가 있다. 가운데 어간문에는 임금님만 들어오시고, 양쪽문은 관료들이 들어와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중악단은 조선후기의 건물로 140년 이상됐고, 보존이 잘돼 있고, 밤낮 기도만 하는 곳으로 언제든지 와서 기도를 할 수 있다. 





담장의 문양도 왕궁의 형식의 전서체로 만수무강(萬壽無疆), 또 다른 쪽 담장에는 수복강령(壽福康寧)이라고 쓰여있고, 꽃담은 일반 사찰의 문양이 아니고, 경복궁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왕실의 문양으로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져서 그 유적 내용을 알 수 없고, 중악단이 잘 보존돼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 신원사 오층석탑(지방 유형문화재 제31호)


오층석탑(新元寺五層石塔)은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인 중악단(中嶽壇) 남쪽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현재는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이것은 목조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것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거의 수평이다. 석탑의 서쪽에는 배례석(拜禮石:탑 앞에 두어 예를 갖출 때 쓰는 돌)이 마련되어 있다.


중후한 느낌을 주는 석탑으로,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1975년 12월 탑의 해체·복원 공사 당시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구와 함께 개원통보, 함원통보, 황송통보, 주둥이와 손잡이가 깨어진 자기주전자, 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병 등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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