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윤여금의 여행이야기 19] 청양 우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삼층석탑’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5-20 21:44:44
  • 수정 2023-06-10 20:45:32

기사수정


[윤여금 기자] 충남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조 불상으로 가운데에 본존불(本尊佛)과 양 옆의 협시불(脇侍佛)로 이뤄져 있고, 각각 머리 뒤의 후광을 표현한 광배(光背)와 네모난 대좌(臺座)가 따로 있다. 삼층석탑(문화재자료)과 함께 인근에서 발견돼 우산 남쪽 기슭에 다시 옮겨져 전각을 짓고 모셔져있다. 





     ▲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1963년 지정)(본존불 310cm, 좌협시 223cm, 우협시 225cm)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은 고려시대 불상 양식에 따라 조성된 불상이다. 돌로 만든 부처가 가운데 있고, 좌우로 부처나 보살이 서 있는 형태를 뜻한다. 


본래 읍내리 1구에 있었으나 1961년 우산 남쪽 기슭로 옮겨왔고, 1981년 보호각을 짓고 이곳에 모셨고,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따로 가지고 있는 독립된 불상이 삼존불(三尊佛)을 이루고 있다.




      ▲ 본존불


     ▲ 본존불


본존불은 당당한 체구의 불상으로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육계)이 있고, 얼굴은 마모돼 윤곽만 남아 있지만, 직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서는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며, 뜬 눈, 긴 코, 두툼한 입술 등의 묘사로 위엄이 있으면서도 얼굴 전체에는 소박한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이다. 


귀는 턱가지 내려왔으며 목에는 수행의 단계를 상징하는 삼도가 표현돼 뚜렷이 남아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군데군데 옷 사이로 드러난 신체는 당당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손 모양은 통인(通印)인데 오른손은 어깨까지 올려 시무외인(施無畏印)을 결하였고 왼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 허벅지 부근에 손바닥을 대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발목 부분까지 U자형의 주름을 이루면서 내려오고 있고, 다리 사이에는 바지 자락이 표현돼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배(舟) 모양으로 불상과 같은 돌로 만들었는데, 파손이 심해서 세부표현을 확인하기 어렵다.


대좌는 앞면에 3개, 옆면에 2개씩 코끼리의 눈을 닮은 안상을 새겼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방식으로 보인다.


     ▲ 왼쪽 협시불


     ▲ 왼쪽 협시불


     

왼쪽의 협시불은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부러진 것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얼굴은 본존과 같은 형태지만 훨씬 부드러우며, 허리를 왼쪽으로 약간 틀어 몸의 중심을 본존쪽으로 두고 있다. 섬세한 옷자락 사이로 목걸이 장식이 보이고, 옷자락은 3가닥씩 T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 오른쪽 협시불 


      ▲ 오른쪽 협시불 


     ▲ 오른쪽 협시불


오른쪽의 협시불은 왼쪽과 같으나, 보존을 향해 허리를 오른쪽으로 약간 틀고 있다.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하고 있고, 왼손이 무릎까지 내려와 있다. 옷주름 등의 세부 묘사는 왼쪽 협시상과 거의 동일하나, 윤곽이 더욱 둥글고 앳된 모습이 다르다.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당당한 신체표현, 강인한 신체묘사, 유려한 각선 등에서 상당한 기량을 보이고 있으나, 평판적인 신체묘사와 형식화된 조각기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청양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48호)(1948년 지정)


청양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돌탑으로,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과 함께 읍내에 있던 것들 군청 뒤뜰로 옮겼다가 1961년 수산 남쪽 기슭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





삼층석탑의 기초가 되는 지대석은 넓은 판석 4매로 돼 있고, 중대석의 각 면에는 탑의 모퉁이 기둥을 뜻하는 우주와 탑의 가운데 기둥을 뜻하는 탱주가 있다. 


      ▲  문고리


높이가 310cm의 삼층석탑의 1층 몸돌 중앙에는 문고리가 장식되어 있다.



지붕받침은 1.2층이 3단, 3층이 2단으로 되어 지붕 모양의 노반과 꽃 모양의 앙화가 남아 있고, 상륜부의 각 부재를 지탱하는 기둥인 찰주가 있다. 






지붕돌의 높이는 낮고, 추녀의 폭이 몸돌에 비해 넓은 고려시대 석탑의 기법을 엿볼 수 있다. 

1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