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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 29] 경복궁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 놓인 석교 '영제교'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08-26 04:44:26
  • 수정 2024-04-15 17: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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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교에서 바라본 근정문 [박광준 기자] 광화문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긴 행각을 양옆에 끼고 있는 흥례문에 들어서면 근정문과 마주하게 된다.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는 명당수가 가로질러 흐르고 금천교(禁川橋)가 놓여 있다. 이 다리를 영제교라고 부른다. 


금천교란 궁궐의 안과 밖을 나누는 금천(禁川)에 놓인 다리로, 입궐하는 신하들의 마음을 씻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역할을 했다. 금천교는 경복궁 뿐만 아니라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조선의 5대 궁궐에 모두 조성돼 있다. 이 중 창덕궁 금천교와 창경궁 옥천교는 보물로 지정됐다.




경복궁이 창건된 1395년(태조 4)에 처음 건립됐다.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교(石橋)였으나, 세종대에 이르러 영제(永濟)라는 명칭이 지어졌다. 처음 영제교가 설치될 당시에는 영제교 아래로 물이 흐르지 않았는데, 태종 대에 북악산의 물을 끌어들여 금천을 조성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궁의 조참 의식이 행해질 때에 2품 이상의 관원은 영제교(永濟橋) 북쪽 길 동편에 서고, 3품 이하는 다리 남쪽에 서며, 종친과 무관 2품 이상은 다리 북쪽인 길 서편에 서고, 3품 이하는 다리 남쪽에 섰다고 한다.



1915년 일제가 조선식민통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영제교를 비롯한 흥례문 권역의 전각들이 모두 철거됐고, 이후 영제교가 있던 자리에는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게 된다. 철거된 영제교의 부재들은 조선총독부 박물관 근처에서 보관되다가, 1950년대에 수정전 앞에 설치됐고, 1970년대에는 경복궁 건춘문과 근정전 사이에 재설치됐다.


1990년대 들어서 경복궁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역사바로잡기 차원의 일환으로 1996년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훼손된 경복궁의 전각들을 복원했다.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1년 동안 진행됐다. 영제교는 1996년~2001년에 실시된 홍례문 권역 복원 당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영제교, 흥례문, 유화문 등을 포함한 흥례문 권역은 2001년 10월 26일 완공돼 일반에 공개됐다.



길이 13m, 폭 10m 크기의 홍예교(虹霓橋)로, 다리의 하단에는 2개의 홍예가 조성돼 있고, 상부에는 돌난간이 설치돼 있다. 다리 상판의 중앙에는 임금이 다니는 길인 어도를 두었다.


영제교의 난간과 축대(築臺)에는 총 8점의 서수상이 조각돼 있다. 영제교 양옆의 호안석축에는 돌짐승이 모두 네 마리 조각돼 있다. 이들은 천록이라는 전설 속의 신령스러운 짐승으로 "왕의 밝은 은혜가 아래로 두루 미치면 나타난다"고 한다. 이 천록상에는 왕의 밝은 은혜가 온누리에 비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서려 있다. 




이 천록 조각은 한껏 웅크리고 있는 자세가 실감난다. 특히 금천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의 표정은 살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천록들의 표정은 마냥 개울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능청스러운 모습까지 든다. 네 마리 모두 표정이 다르다. 한 마리는 '메롱'하는 것처럼 혓바닥을 내밀면서, 앞발로 턱을 고이고 넙죽 엎드려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천록 조각은 창건 당시부터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영제교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면서 이 조각들은 수정전 앞뜰로 옮겨졌다가 격복궁 복원 때 다시 제 자리로 옮겨놓은 것인데 그 중 한 마리는 등이 파였고 두겅이 덮여 있다. 



이 천록상에 대해서는 유득공이 영조 46년 3월 3일 스승인 박지원, 선배 학자인 이덕무와 함께 서울을 나흘간 유람하고 쓴 '춘성유기'에 의하면 "다음 날 경복궁 옛 궁궐에 들어갔다. 궁 남문 안에는 다리가 있고 다리 동쪽에는 돌로 만든 천록이 두 마리, 서쪽에는 한 마리가 있다. 비늘과 갈기가 완연하게 잘 조각돼 있다"고 했다. 


유득공이 유람했던 당시엔 천록 한 마리가 없어졌던 모양인데 유득공은 남별궁 뒤뜰에서 등이 뚫려 있는 천록 한 마리를 본 적이 있다며 "필시 다리 서쪽의 하나가 옮겨진 듯하다"고 했다. 남별궁이란 지금 완구단과 조선호텔이 들어서 있는 곳에 있던 별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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