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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 이야기 10] 자연과 예술을 담은 갤러리 '강릉역'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09-03 0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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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1962년 11월 6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강릉역은 서울에서 영동과 태백의 험준한 산자락을 따라 6시간을 넘게 달려야 도착할 수 있던 곳이었다. 그러던 2017년 12월, 강릉역은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서울역을 1시간 54분만에 연결하는 강릉선이 건설되면서 첨단역사로 다시 태어났다.




아득히 높은 천장 아래 경포대의 해돋이, 50년 만에 핀 경포호 가시연이 그대로 재현되는 명품 갤러리로 돌아왔다. 새로운 강릉역은 야경의 아름다움이 더욱 특별하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떠오르는 해돋이를 형상화한 역사는 강릉을 다녀간 여행객들에게 오랫동안 남을 추억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철도가 선물한 강릉의 거리, 월화거리와 안목커피거리


2014년 고속철도의 강릉시 도심구간 지하화로 옛 철도부지에는 새로운 관광명소인 월화거리가 조성됐다. 월화거리는 신라시대 무월량과 연화부인의 사랑이야기에서 유래된 길 이름이다. 이 길과 이어진 곳에 애틋한 사연을 담은 월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강릉에는 신라시대부터 화랑들이 차를 마신 흔적이 남아있는 신라시대 유일의 차 문화 유적지인 한송정이 있다. 



과거부터 차를 즐겼던 강릉에는 안목해변의 커피거리가 연인들의 커피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도시 전역에 국내 최고 수준의 커피명장들이 모여 커피거리가 탄생했다. 또한 강릉이 커피거리로 성장함에 따라 이 곳에서 매년커피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경포대, 경포해변, 오죽헌 등이 있다. 


1. ‘남대천 월화정 설화’는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신라 시대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된 명주군왕 김주원의 부모인 ‘무월랑’과 ‘연화 부인’이 그 주인공이다. 신라35대 경덕왕시절 경주에서 강릉(옛지명.명주)으로 부임한 무월랑은 지방 토호의 딸인 연화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조정의 명으로 다시 경주로 떠난 후 무월랑은 연화를 잊게 되고, 부모님의 성화에 다른 이와 혼례를 치러야 하는 연화는 자주 가던 연못의 잉어에게 편지를 부탁하고 바다로 보낸다. 


월화정

한편,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장에 들렸던 무월랑은 잉어 한 마리를 사오게 되고, 잉어의 배를 가르니 편지가 나오는데 바로 연화의 편지였다. 무월랑은 급히 다시 강릉을 찾게 되고, 이 일이 사람의 힘이 아닌 정성에 하늘이 감동된 일임을 인정한 양쪽 부모에게 허락을 얻어 드디어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월화거리춘향전의 모티브이기도 한 이 ‘남대천 월화정 설화’는 ‘월화거리’로 재탄생돼 천년전 설화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로 다시 채워지고 있다. 사랑의 '성지(聖地)' 로 다시 태어난 월화거리! 월화거리는 지금, 사랑이다.


2. 한송정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 있는 정각으로,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안에 있는 정각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차 유적지 중 하나로, 일명 녹두정(綠豆亭)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진흥왕 때 화랑들이 한송정을 찾았다는 기록과 이후 여러 인물들이 한송정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는 기록과 시문들이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송정은 ‘동쪽은 큰 바다와 접해있고, 소나무가 울창하다. 정자 곁에 차샘(茶泉), 돌아궁이(石竈), 돌절구(石臼)가 있는데 곧 술랑선인(述郞仙人)들이 놀던 곳이다’ 라고 기록돼 있다. 현재 정각과 남아있으나, 정각 안에는 특별한 기록물이 남아있지 않다. 1997년에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에서 석조(石竈:돌 아궁이)를 복원했다.


3. 경포대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이 현 방해정(放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중종 3년(1508년)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이전한 후 영조 18년(1742년) 부사 조하망(曺夏望)의 중수를 비롯한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앞면 5칸.옆면 5칸 규모로 단층겹처마 팔작지붕(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뤄졌고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고, 경포호를 바라보는 정면의 모서리에 2층 누대를 꾸며 상좌(上座)의 자리를 만들어 입체면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익공양식에 2고주 5량 가구(架構 - 여러 재료를 결합해여 만든 구조)이며,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대호(臺號)인 '경포대(鏡浦臺)'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李翊會)의 글씨이고, 정자 안의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 또는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누대 천장에 율곡 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해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 왕이 직접 지은 시)와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 등이 걸려있다.


2. 경포해변


해안 최대 해변으로 유명하며 시내에서 북으로 6km, 경포대에서 1km 되는 곳에 동해의 창파를 가득 담고 펼쳐진 명사오리(明沙五里)이다. 모두를 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밀려오는 파도, 이를 쓸어 안는 길이 1.8km, 면적 1.44km2의 하얀 모래밭과 외부와의 세계를 차단하는 듯 둘러 쳐진 송림병풍 4km는 정(靜)과 동(動)의 조화로 경포해변 특유의 아름다움이다.



3. 오죽헌


1536년(중종 31년) 율곡 이이 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축물이다. 세종조(世宗朝)당시 공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의 벼슬에 오른 강릉 12향현 중의 한 분인 최치운에 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됐던 곳으로 처음 오죽헌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이다. 오죽헌을 정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게 했고 오른쪽 한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게 했다. 이 방이 바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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