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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 12]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천향교'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09-17 01:31:35
  • 수정 2023-12-21 16: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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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양천향교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향교로, 1990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양천향교는 재단법인 서울특별시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교이다. 1411년에 창건해 문묘기능과 함께 유학을 연구.강론하는 지방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오다가 1909년 학제가 개혁됨에 따라 타향교와 마찬가지로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상실되고, 문묘기능만 갖게 됐다. 그러다가 1914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천군(陽川郡)이 김포군(金浦郡)에 합군(合郡)되면서 양천향교가 김포향교에 통합됐다.






그 후 1945년 광복과 함께 김포향교에서 분리.독립되면서 관내 유림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교궁(校宮重修)을 중수하고 비품(備品) 등을 구비하게 됐고, 이어 1969년에 대성전(大聖殿)과 외삼문(外三門)을 보수(補修)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 동안 향교 복원공사 계획을 수립하고 향교의 재산 처분과 복원사업 승인을 얻어 1980년 11월에 복원공사에 착공, 1981년 8월에 완공을 보았다. 또한 향교 비품도 장만해 향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 향교가 위치한 이곳은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공암(孔岩)으로 고쳐서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이 됐다. 1018년에 수주(樹州)의 속현이 됐다가 1310년에 양천현(陽川縣)으로 고치고 현령(縣令)을 두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했다.


그 후 1895년에 군(郡)이 되었다가 1914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포군에 병합됐고 1963년에 서울특별시에 편입돼 오늘에 이른다. 현재 양천향교에서는 대성전에 오성(五聖)과 송조 4현(宋朝四賢), 그리고 우리 나라 십팔현(十八賢)의 위패(位牌)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한다.




현재 건물은 대성전.명륜당.전사청.동재.서재.내삼문.외삼문과 부속건물 등 8개 동이 남아 있다. 규모는 대성전 54㎡, 명륜당 77.91㎡, 전사청 11.52㎡, 내삼문 11.97㎡, 외삼문 18.63㎡, 동재 29.52㎡, 서재 29.52㎡, 화장실 5.27㎡이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지역주민과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문과 서예, 사군자 등을 가르친다. 해마다 봄가을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과 10철, 송의 6현, 동국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덕을 기리는 행사로 대성전에서 석전제례를 개최한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행사를 담당하고, 지방 향리들의 자제를 교육하는 기관이었으나, 현대적 교육기관이 생겨나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향교가 해체되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 전국적으로 230여 군데 남아 있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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