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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82] 제8회 여성연극제 극단 공외, 방혜영 연출 '혜석의 이름'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3-09-29 07: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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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아트홀 1관에서 제8회 여성연극제 극단 공외의 황수아 작 방혜영 연출의 혜석의 이름을 관람했다.


황수아는 아이 둘 키우는 엄마인 시인으로 희곡 작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난 2008년 스물여덟 나이로 문학 계간지 ‘문학수첩’(현재 시인수첩)에서 등단했다. 그는 “문학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라 자신을 소개했다. 2009년 결혼해 이듬해 출산했고 2013년 둘째를 낳았다. 그리고는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자가 되었다.


황수아는 “대학 새내기 때 처음 연극을 봤다”며 “사건을 숨어서 보고 있다는 감각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기업 사보를 제작해주는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학위를 받아 대학 시간강사로 활동했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부터 전업 주부가 됐다. 육아에 한숨을 돌릴 때쯤 다시 활동하려 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청탁은 뜸해지고 선뜻 시집을 내겠다는 출판사도 없었다. “문학에는 육아휴직이라는 게 없으니까 핑계를 댈 수 없었어요. 열심히 하지 못한 일에 해명거리를 만드는 것 같아서요.”


쓰는 일이 최선이었다. 운동하듯 규칙적으로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펜을 잡았다. “글쓰기에도 근육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중간에 그만두면 근육이 줄듯, 글도 쉬면 생각이 느려지고 문장력도 떨어지니까요. 글을 안 쓰는 날이 없도록 하자. 단 한 문장이라도 일기든 생각의 나열이든 무엇이든 썼습니다.” 2017년 첫 시집을 냈지만 독자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희곡은 시를 쓰면서도 계속 도전한 장르. 대학에서 희곡 창작 동아리에 소속돼 작품을 무대에 올려보고 배우도 해봤다. 황씨는 “시와 희곡은 전달하려는 본질을 어떤 대상을 통해 드러낸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했다. “희곡은 삶의 본질을 무대라는 장치를 사용해 은유로 묶어내는 과정입니다.” 신춘문예 당선작 ‘가로묘지 주식회사’는 집값 폭등의 여파로 무주택자들이 고시원 세도 감당하지 못해 관(棺)을 임차해 산다는 설정의 풍자극이다. ‘관’은 터전을 잃고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죽음과 삶을 상징하는 은유다. ‘관’이란 제목의 시가 희곡이 됐다. “13년 결혼 생활에서 이사만 7번 했다”는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가파르게 오른 집값으로 나와 친구들이 겪은 어려움을 담았다”고 말했다. 작품 완성에 1년이 걸렸다. “작은 아이 학원 등·하원을 챙기며 짬을 냈어요. 수업 시간 1시간 30분 동안 카페에서 틈틈이 썼습니다.”


2022년에는 <꿈 소멸 프로젝트>를 발표 공연하고 <혜석의 이름>은 2023년에 제8회 여성연극제 선정작이 된 발전적인 장래가 기대되는 시인이자 극작가다.


방혜영(1981~)은 서강대 국문과와 정치학과 출신의 극단 공외의 대표이자 작가 겸 연출가다. 서강대학극을 관람하고 연극에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어 수 많은 희곡을 집필하고 연출했다. <우리집에 문제인이 온다> <그날 밤 우리는 오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종이 사슴> <어느 울보 페미니스트의 하소연> <거리두기> <우리집에 손주 며느리감이 온다> <아버지의 이름> <소김지섭과 주찬양> <지원서 마감 10분전> <게으른 책읽기> <우리 연인의 연인> <책 읽어주는 배우들 소년을 만나다> <우리시대의 연인> <결혼 전야> <로맨스 그리고 비밀> <오락실 가는 여자> <내 이름은 나무궁화> <여행2> <여행> <2006 이쁜 가족 선발대회> <로맨스> <벌레 이야기> <여관방 이야기>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로또로 기억된 이야기> <우리집에 손주 며느리감이 온다> 등 다수 작을 집필하고 연출한 미녀다.


<혜석의 이름>은 지역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연극 대회에 나가고자 네이버 카페의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의 '연출','마이웨이','카라멜 마끼야또','나룻배’,'노네임' 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연습하면서 펼치는 장면이 공연의 주를 이룬다. 연출'은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전략적으로 여성서사극을 올려야 한다는 후배의 조언에 따라 일제강점기 페미니스트 나혜석을 다룬 <혜석의 이름>을 직접 써 와 무대화하려고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인 탓에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큰 차이가 있어 갈등과 충돌이 이러나고 격앙된 분위기까지 치솟다가 결국 공감대가 형성되고 마무리가 되는 내용이다.


나혜석(1896~1948)은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이며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운동가였다. 먼저 일본에 유학한 오빠의 주선으로 일본 도쿄에 있는 사립여자미술학교에서 유화를 공부했다. 일본 유학 시절 여자유학생 학우회 기관지인 <여자계> 발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 맞서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하는 단편소설 "경희"(1918)를 발표했다. 1918년 귀국하여 1919년 3.1운동에 여성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활동을 하다가 5개월 정도 옥고를 치렀고 1921년에는 서울에서 개인전시회를 가졌다.


유학시절 약혼자였던 시인 최승구가 죽은 후 변호사인 김우영과 결혼하여 만주 안동(지금의 단동) 부영사가 된 남편을 따라 안동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자신이 내딛는 한 걸음이 조선 여성 전체의 진보라고 하는 점을 늘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신여성의 대표 인물로서, 조선미술전람회에 계속 입선한 화가일 뿐만 아니라 자의식적인 여성적 글쓰기를 펼친 작가이기도 했다. 자신의 임신, 출산, 육아 경험을 솔직하게 토로하면서 ‘아이는 엄마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 라고 규정한 "어머니 된 감상기"(1922)는 여성 고유의 경험을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것으로 사회적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림 기법만을 배운 유화 화가로서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난 구미 여행 길에 파리에서 만났던 최린과의 관계가 귀국 후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면서 1930년 이혼을 한 나혜석은 제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여자미술학사를 차리는 등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꿈꾸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애, 결혼,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심리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식민지 조선 사회의 가부장제가 가지는 모순을 비판한 글 "이혼고백장"(1934)과 "신생활에 들면서"(1935)을 발표하여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려면 남성 자신부터 정조를 지키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조라는 것은 남이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주체의 자유 의지에 속하는 ‘취미’의 문제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림이 불타고 병이 나고,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사회로부터 비난과 조소를 들으면서 경제적 어려움과 아이들을 보지 못하는 고통으로 나혜석은 심신이 병들어 갔다.


일제 말기 수덕사에도 있고, 양로원에도 있었으나 매어 있기를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길 위에 서는 것을 좋아했던 나혜석은 해방 후의 어느 겨울날 행려 병자로 죽어갔다.


무대는 사각의 커다란 기둥 세개를 무대중앙에 배치하고 장면전환에 따라 출연진이 이동시키며 돌려 세우거나 옆으로 세운다. 돌려 세우면 장롱 같이 내부에 칸이 있고 물건을 얹어놓은 게 보인다. 접는 의자 다섯개도 마찬가지로 움직이며 사용하고, 극장 출입문이 출연진의 등장로가 되고 무대 앞 복도와 객석으로 오르는 계단도 동선으로 사용된다. 배경에 등퇴장로도 있다.


최유리가 나혜석, 이민하가 마이웨이, 박기림이 카라멜 마끼야또, 양동진이 노네임, 김영준이 연출로 출연해 성격설정에서부터 감성표현은 물론 호연과 열연으로 연극을 이끌러 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무대감독 유준기, 조명감독 임성빈, 조명크루 송미선 김영준, 포스터 사진 황규백 등 스텝진의 기량도 드러나, 제8회 여성연극제 극단 공외의 황수아 자 방혜영 연출의 <혜석의 이름>을 관객의 기억에 남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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