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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83] 박정기의 공연산책 TNT레파토리 40주년 기념공연, 백순원 연출 '낭독극 여로의 끝'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3-09-29 07: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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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공간 서로에서 TNT레파토리 40주년 기념공연 이지훈 작 백순원 연출의 낭독극 여로의 끝을 관람했다.


이지훈 교수의 극단 TNT 레퍼토리와 백순원 연출가의 극단 씨어터 백의 합동공연이다.


이지훈은 극작가 겸 연출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와 뉴욕 올버니 주립대학교 출신이다. 극단 TNT 레퍼토리 대표이자 희곡읽기 창작 연구소 D Forum 대표, 창원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다. 창작희곡집 『기우제』 2007 (평민사) 『나의 강변북로』 2021 (평민사) 수상/선정 1994 신인문학상(희곡) 여성신문사 2015 올빛상(극작) 한국여성연극협회 2020 아르코 창작산실 작품 공모 선정 <여로의 끝> 2022 서울연극협회로부터 특별공로상 수상한 원로다. 발표작으로 <기우제>, <천사, 여자에게 말을 걸다>, <원: 시간의 춤>, <그 많던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 <조카스타>. <나의 강변북로> 등이 있다.


백순원 연출은 씨어터백 대표, 연출집단 여고 대표로 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로 제13회 2인극 페스티벌 연출상과 제11회 부산국제연극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으며 2012년 제33회 젊은 연극인상, 2019년엔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상, 2022년 여성연극협회 올빛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연출작으로 <햄릿> <문신>, <자살 당한 자>, <햄릿>, <슬푸다, 이도 꿈인가 하니> <개놈 프로젝트> <서바이벌 파라다이스> <히폴리투스의 말>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이번 낭독극은 출연진이 낭독과 연기를 병행하고, 배경에 영상을 투사해 관객의 이해를 돕고, 효과음은 물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친필까지 감상하면서 공연시간이 2시간 동안 계속되는 역작이다.


<여로의 끝>은 셰익스피어 말년의 이야기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613년 귀향하여 1616년에 죽었다. 28년 만에 돌아온 고향 스트랫포드 에이븐에. 아내 앤과 혼기를 놓친 작은 딸 주디쓰가 새 집에 살고 있고 큰 딸 수잔나는 결혼 후 근처에 살고 있다. 아들 햄닛은 작은 딸 주디쓰와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열한 살 때 전염병으로 죽었다. 윌의 부모도 이미 다 죽었으며 뉴 플레이스에는 부부와 딸 주디쓰만 남게 된다.


윌에게 아내 앤은 이제 낯선 여인이다. 너무나 오래 떨어져 있어서, 윌은 고향에서 자신을 타자로 느낀다. 에이번 강가에 홀로 앉아 그는 런던에서의 삶을 반추한다. 자신이 쓴 시와 비극, 같이 작업했던 배우들, 극단 후원자 사우스햄튼 백작, 자신의 수많은 애인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죽음을.


돌아온 땅은 윌에게 잊었던 앤과의 옛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 사랑이 언제 식어버렸을까? 얼어붙은 앤의 마음을 죽기 전에 녹여주고 싶다. 세 자녀와 부모를 다 그녀에게 떠맡기고 혼자 런던으로 가버린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그토록 오랜 세월 외롭게 살게 한 점에 대해서도.


늙은 윌은 자신이 마치 리어가 된 것처럼 느낀다. 사실 고향으로 돌아 온 건 딸 수잔나와 가까이 있고 싶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디쓰의 마음의 그늘을 알게 되면서 그녀에게 더 관심을 가지며 정을 붙인다. 이 딸을 코딜리어라 부르며 결혼하지 않고 부부 옆에 같이 살기를 원한다,


주디쓰는 가족을 버려두고 떠난 아버지 윌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고 또 엄마 앤의 외로운 삶에 공감을 느끼지만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좋다는 윌의 뜻에 점점 마음을 연다. 그녀는 햄닛의 죽음에서 딸인 자기 대신 아들이 죽었다는 주변의 안타까운 시선을 의식한 이후로 여자로서의 삶에 예민하다. 그래서 자유로운 주체적 삶을 살기 원하며 글을 배우고 싶어 하고 런던으로 가서 윌처럼 자기 인생을 한번 던져 보고 싶다. 형부 존 홀로부터 윌의 비극에 나오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또 에밀리아 라니어라는 최초 여성 시인에 대해서도 알게 되며 그녀의 의식은 자라간다.


수잔나는 주디쓰와는 달리 세상에 순응한다. 세상이 남자의 것임을 알고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했고 다행히 남편 존 홀과 원만하게 지낸다. 윌이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것에 대해 이해의 시선을 가진다. 그녀는 극에서 세 번 정도 잠깐 비켜 나와 드라마 전체를 조망하게 해주는 해설자의 역할을 겸한다.


나이 60이 다 된 앤은 28년 만에 돌아온 윌을 침묵으로 지켜보며 받아들이지만 그녀의 마음 속 깊이 오래 억압된 말과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그녀는 그 못 다한 말을 품고 이 말을 토해 낼 그 날을 기다리지만 부부는 겉돌기만 한다.


30년 전 앤은 미혼모가 될 처지였다. 만일 윌이 결혼을 회피하고 도망 가버렸다면 그녀는 마을 공동체에서 따돌림 받고 태어난 자식은 사생아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윌은 결혼에 응했고 우스터 주교의 특별 허락으로 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30년 전 일어났던 그 일이 그녀의 생애에 다시 한 번 발생한다. 딸 주디쓰가 갑자기 결혼을 한다며 서두른다. 결혼안하고 혼자 자유롭게 살겠다던 주디쓰의 주장이 급변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이 시기는 사순절 기간으로 결혼식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식을 강행한다.


윌은 코딜리어 처럼 곁에 있으리라 믿었던 딸에 대해 씁쓸한 배신감을 느끼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앤은 딸이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반복하는 것에 대해 더 충격을 받고 다만 신랑 토마스가 (과거 윌처럼) 딸을 떠나지 않기만을 바란다. 사순절임에도 결혼식은 감행되어 주디쓰와 토마스는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다.


그런데 결혼식 후 한 달 만에 놀라운 일이 마을에서 벌어진다. 마을 처녀 마가렛이 출산을 하다 죽게 되는데 이 아기의 생부가 토마스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토마스는 그녀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주디쓰와의 결혼을 서둘렀다고 할 수 있다. 주디쓰는 이 일을 다 알고 있었을까? 앤은 이 마가렛도 주디쓰도 꼭 30년 전 자기의 모습이라고 여기며 고통스러워한다.


윌은 거듭되는 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더 노쇠해진다. 강가에 앉아 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던 그는 자신의 말년에 일어난 이 일이, 자기가 쓴 어떤 극본보다 더 심한 반전이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극본은 신이 쓴 극본 ? 자신의 인생 1막에서 일어난 일이 5막 끝에서 다시 한 번 일어나는 구조의 매우 훌륭한 극본, 자신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극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죽음이 문지방 앞에 다가왔음을 윌은 느낀다. 부부는 못 다한 속내 말을 드디어 조금씩 뱉어낸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로 흐르지 못하고 여전히 차갑게 비껴가기만 할 뿐이다. 윌은 점점 실성한 상태가 되어 횡설수설하며


허허벌판의 리어처럼 변해간다. 앤과 두 딸은 마치 리어의 세 딸처럼도 보이고 <맥베쓰>의 세 마녀처럼도 보인다. 그들은 대화를 시도하나 윌은 알아듣지 못하고 두 눈에 통증을 느끼고 헤맨다. 그는 마침내 여로의 끝에 도달한다. 호흡이 사라지고 윌은 쓰러져 고독하게 죽음을 맞는다.


정아미가 앤, 성경선이 수잔나, 김진곤이 윌, 장정선이 주디스, 강희만이 존 홀, 이윤주가 메리, 정지환이 토마스 퀴니, 조소영이 마가렛 휠러 등 출연진의 연기과 낭독을 겸한 2시간 동안의 열과 성을 다한 공연은 관객을 몰입시키고 우레보다 큰 갈채를 받는다.


조명 김윤희, 음악디자인 박민수, 영상디자인 정혜지, 홍보물 디자인 유 정, 음향오퍼 윤가연, 조명오퍼 길미정, 영상오퍼 이정국 등 스텝진의 기량도 부각되어 이지훈 교수의 극단 TNT 레퍼토리와 백순원 연출가의 극단 씨어터 백의 합동공연이자 TNT레파토리 40주년 기념공연인 이지훈 작 백순원 연출의 낭독극 여로의 끝을 기억에 남을 독특한 낭독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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