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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유형문화재 13] 흥천사 불화 모음(1)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0-09 06:36:41
  • 수정 2023-10-12 14: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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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9호 흥천사 아미타불도-제368호 흥천사 지장시왕도

# 흥천사 아미타불도


흥천사 만세루 아미타불회도(興天寺 萬歲樓 阿彌陀佛會圖)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아미타불회도로, 2017년 6월 8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409호로 지정됐다.


만세루에 봉안된 아미타불회도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보살, 십대제자, 사천왕 등이 배치돼 있고, 상궁들이 시주한 왕실발원 불화로 금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이 불화는 수화승 긍조(亘照)를 비롯해 만파정익(萬波定翼), 혜산축연(慧山竺衍), 보암긍법(普庵肯法) 등 주로 19세기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화승들이 조성했다. 조성연대는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1890년 제작된 만세루의 신중도에 수화승 긍조 등이 참여한 바, 만세루 신중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위의 보살, 십대제자, 타방불, 사천왕, 천부중 등이 배치됐다. 화면의 중앙에는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이 두광과 신광을 등지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다. 본존불 좌우에는 연꽃 등을 든 8위의 보살 및 사천왕이 모두 倚坐像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왕실발원의 이 불화에는 값비싼 재료인 금을 적극적으로 사용, 持物부분에는 주로 金箔이, 天衣 등 복식의 문양에는 金泥로 그렸다. 특히 아미타불의 신광에 사용된 금은 구불구불한 선과 변화 있는 금색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빛이 방사하듯 보여 예배자의 시선을 중앙의 아미타불로 향하게 한다.


사진출처/문화재청화면 하단부 밑부분에 흰색바탕에 먹으로 쓴 화기난이 마련, 이 불화의 조성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만세루의 1890년 作 두점의 신중도 역시 수화승 긍조(亘照) 등이 참여, 동시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1890년에는 흥천사 大房에서 여러 점의 불화를 함께 조성했음을 알 수 있고, 또 인근 사찰인 봉국사 '奉國寺 : 神德王后(?∼1396)의 원당' 大房에 봉안하기 위한 불화도 함께 제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내용으로는 ‘수월도량공화불사(水月道場空花佛事)’와 관련해 불화가 제작된 점이다. 이 불사는 19세기 말에 흥천사를 비롯해 파주 보광사, 수원 청련암, 삼각산 화계사 등 주로 서울과 경기도에서 설행됐다. 


동참시주인 다수의 상궁들 중 가장 먼저 기록된 갑신생 하씨 正德慧는 1878년 화계사 명부전 시왕도(1, 3대왕도), 1878년 개운사 감로도, 1884년 진관사 영산전 석가모니불도 등 여러 불사에 시주자로 기록된 인물이다. 87.6cm, 104.6cm, 84.5cm의 비단 세 폭을 이어 가로로 긴 화면의 바탕을 마련한 1890년 作 만세루 아미타불회도는 일반 불교신도들의 이름과 함께 동참시주로서 상궁들이 다수 참여한 왕실발원 불화로 값비싼 재료인 금을 적극적으로사용한 점이 돋보인다. 채색, 필선, 장식, 문양 등에서도 정교함이 드러나있다. 특히 결가부좌한 본존불 좌우의 8위 보살 및 사천왕이 모두 의좌상을 한 좌세는 특징적이다.


# 흥천사 지장시왕도


사진출처/흥천사 지장시왕도서울 흥천사 지장시왕도는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소재한 사찰 흥천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로, 2015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368호로 지정됐다. 


흥천사 지장시왕도는 19세기 후반 서울지역에서 제작된 개운사 지장시왕도(1870년, 서울시 유형 제215호), 봉국사 지장시왕도(1885년, 서울시 유형 제352호), 미타사 지장시왕도(1885년)의 선행되는 사례이자 모본이 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표현기법과 색채로 미루어 의운자우(義雲慈雨)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본존인 지장보살이 보주를 두 손으로 받들고 지장보살 석장을 선악동자가 들고 있는 새로운 도상이 나타났다.


사진출처/개운사 지장시왕도'(1870년, 서울시 유형 제215호)이 불화는 흥국사 극락보전 향 오른편에 마련된 영단에 봉안돼 있는 지장시왕도이다. 불화 화기가 손상돼 일부 글자가 지워져 제작화승은 알 수 없지만 “同治六年丁卯臘…緣化秩 證明印…別座 靑峯應…化主鏡山…”등의 내용을 통해 1867년 제작시기와 불사에 참여한 중요 인물은 파악이 가능하다. 제작시기를 포함해 증사, 별좌, 화주 등 불사에 참여한 승려들의 法號가 1867년에 조성된 아미타불회도와 동일한 것으로 보아 지장시왕도 역시 같은 화승인 義雲慈雨에 의해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면 중심에는 주존인 지장보살이 연꽃에서 피어오른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고, 지장보살 좌우에는 시왕이 홀.짝수로 나누어 배치됐고 그 옆에 귀왕, 판관, 사자, 옥졸 등의 권속들이 서 있다. 이와 같은 존상 구성은 고려후기 지장시왕도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구성 방식이다. 다만 '흥천사 지장시왕도'에서는 지장보살 앞에 지장보살의 지물인 석장과 무독귀왕의 지물인 인장함을 어깨에 멘 선악동자를 배치해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또한 지장보살이 양손을 들어 수정구슬을 감싸고 있는 표현 역시 기존에 한 손은 수정 구슬을 들고 다른 손은 석장을 쥐거나 무릎 위에 올려놓게 표현한 지장보살과는 다른 표현이다.


사진출처/봉국사 지장시왕도'(1885년, 서울시 유형 제352호)이 불화에서 보이는 지장보살의 수인과 선악동자의 표현은 19세기 후반 서울.경기지역과 경상도 일대에 유행한 지장시왕도 형식이다. 현재 서울지역에서는 '흥천사 지장시왕도'(1867년)을 비롯해 '개운사 지장시왕도'(1870년, 서울시 유형 제215호), '봉국사 지장시왕도'(1885년, 서울시 유형 제 352호), '미타사 지장시왕도'(1885년) 등이 알려져 있다. 이 사실에 의거하면 1867년에 조성한 '흥천사 지장시왕도'는 19세기 후반에 새롭게 유행하는 지장시왕도 형식 가운데 제작시기가 가장 올라가는 작품이다.


이와 같은 미술사적 의미만이 아니라 '흥천사 지장시왕도'에서 보이는 안정된 구도, 19세기 후반의 화풍이 반영된 존상 표현과 홍색을 기반으로 녹색과 청색이 대비를 이루는 색채의 구사력, 세부문양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표현 등이 조화를 이루어 수준 있는 화격을 유지하고 있다.


화면의 상태는 비교적 안정화된 상태이지만, 주존인 지장보살의 상호는 안료박락이 많이 진행됐다. 


사진출처/미타사 지장시왕도'(1885년, 서울시 유형 제359호)'흥천사 극락보전 지장시왕도'(1867년)에서 주목되는 표현은 수정 구슬을 감싸 쥔 지장보살의 자세와 석장과 경함을 어깨에 멘 선악동자이다. 이러한 표현은 19세기 경상도에서 그려지기 시작해 19세기 후반 서울.경기지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흥천사 지장시왕도'는 서울지역에서 제작된 '개운사 지장시왕도'(1870년, 서울시 유형 제215호), '봉국사 지장시왕도'(1885년, 서울시 유형 제352호), '미타사 지장시왕도'(1885년)의 선행되는 사례이자 모본이 되는 작품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비록 화기가 지워져 제작자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세기 후반 서울지역에서 유행한 지장시왕도 형식을 보여주는 가장 이른 예이자 그림의 수준이 우수한 불화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이에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각주는 19세기 후반 서울지역에서 제작된 '개운사 지장시왕도'(1870년, 서울시 유형 제215호), '봉국사 지장시왕도'(1885년, 서울시 유형 제352호), '미타사 지장시왕도'(1885년)의 선행되는 사례이자 모본이 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표현기법과 색채로 미루어 의운자우(義雲慈雨)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본존인 지장보살이 보주를 두 손으로 받들고 지장보살 석장을 선악동자가 들고 있는 새로운 도상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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