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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유형문화재 15] 성월대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 '안양암'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0-09 22:08:05
  • 수정 2023-10-12 14: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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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5호 아미타불도-제186호 감로도-제187호 팔상도-제188호 극락왕생도-제189호 아미타괘불도


[박광준 기자] 안양암은 1889년 성월(性月) 대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서 현재는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의 분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해 명부전(冥府殿), 천오백불전(千五百佛殿), 금륜전(金輪殿), 관음전(觀音殿), 염불당(念佛堂), 영각(影閣) 등의 불전(佛殿) 및 불교 관련 전각(殿閣)들과 고산당(古山堂) 축연(竺演) 등 당대 최고 화사(畵師)들에 의해 조성된 불화 및 불상들이 다수 남아 있다.


# 아미타후불도(阿彌陀後佛圖)


유형문화재 제185호로 지정된 아미타후불도(阿彌陀後佛圖)는 대웅전의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 뒤쪽에 모셔져 있다. 1958년 간행된 '안양암지(安養庵誌)'를 통해 창건 당시인 1889년, 즉 고종 26년에 제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린 이는 경성(慶惺)스님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觀音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가섭(迦葉), 10대 제자 중 1인, 동방천왕(東方天王), 북방천왕(北方天王) 등을,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아난(阿難), 10대 제자 중 1인, 남방천왕(南方天王), 서방천왕(西方天王) 등을 그린 그림이다. 특히 사천왕상(四天王像)까지만 간단히 표현하는 등 도상(圖像) 면에서 작품이 제작되던 시기의 특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미타불의 광배(光背) 위쪽을 보면 금니(金泥)로 가득 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문화재청이러한 표현 기법은 화계사, 보광사 등 같은 시기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보이고 다른 지방에서는 보이지 않는 등 같은 시기의 다른 지방 불화들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당대의 대표적 화사(畵師)인 경성(慶惺)스님의 작품일 뿐만 아니라 도상과 표현 기법 면에서 시대적․지역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고 원형도 잘 유지돼 있어 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 


# 감로도


감로도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불보살(佛菩薩) 앞에서 시식의례(施食儀禮)를 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안양암의 감로도는 대웅전 향우측(向右側) 극락왕생도(極樂往生圖)의 옆에 걸려 있다. 이 그림은 1909년 경선당(慶船堂) 응석(應釋)에 의해 제작됐다. 응석 스님은 청량사(淸凉寺) 극락보전(極樂寶殿) 신중도(神衆圖)․ 미타사(彌 陀寺) 삼성각(三聖閣) 칠성도(七星圖)․ 개운사(開運寺) 대웅전(大雄殿) 신중도(神衆圖)․ 개운사(開運寺) 지장전(地藏殿) 현왕도(現王圖)․ 진관사(津寬寺) 독성각(獨聖閣) 독성도(獨聖圖)․ 봉은사(奉恩寺) 북극보전(北極寶殿) 칠성도(七星圖)․독성도(獨聖圖)․산신도(山神圖)․ 봉은사(奉恩寺) 판전(板殿) 후불도(後佛圖)․ 봉은사(奉恩寺) 영산전(靈山殿) 십육나한도(十六羅漢圖) 등 불화 조성에 참여한 이 시기 대표적인 화승(畵僧)이다.


이 감로도 역시 일반적인 감로도 도상에 따라 공양물이 성대하게 차려진 제단(祭壇)을 중심으로 상단에는 다보여래(多寶如來).보승여래(寶勝如來).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응박신여래(應博 身如來).이포외여래(離怖畏如來).감로여래(甘露如來).세간광대위덕(世間廣大威德) 등 7불(七佛)을 비롯해 그 좌우로 아미타불, 지장보살, 관음보살, 그리고 직접 영혼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등 불보살(佛菩薩)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천, 인, 아수라, 귀신, 축생, 지옥도 등의 6도(六途)를 표현했다. 육도 부분에는 싸움하는 모습, 농부가 소를 끌고 가는 모습, 남사당 패거리가 놀이하는 모습, 형벌 받는 모습, 재판 받는 모습 등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사진-문화재청이 그림은 이와 같이 전통적인 감로도의 도상 구도를 따르면서도 제단 주위에 아귀를 크게 묘사하는 등 19세기 이후 서울.경기지역 감로도의 새로운 도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수국사.불암사.흥국사 등의 감로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림의 하단 좌우로는 다음과 같은 화기(畵記)가 적혀 있어 1909년(隆熙 3년) 경선당(慶船堂) 응석(應釋)이 그려 삼각산(三角山) 감로암(甘露庵)에 모셨고 시주자는 이익수(李益洙)와 이흥수 (李興洙)이다. 이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이 불화제작에 시주했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大韓隆熙三年己酉閏二月日 三角山甘露 庵甘露幀 奉安 證師比丘虛無堂聖訓 誦呪比丘慧庵堂 守珎 畵師比丘慶船堂應釋 供司沙彌奉照 <왼 쪽> 幀畵獨瓣大施主 乾命己亥生李益洙 乾 命癸未生李興洙 伏爲亡母辛亥生開城金氏靈駕以此善根 功德往生極樂上品 上生之大願


제작연대와 화사․제작경위․최초 봉안장소․시주자 등을 분명하게 알 수 있고, 서울이라는 지역적 특색이 강하게 나타난 도상인데다 작품성 또한 인정되고, 원형이 잘 유지됐다. 2004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됐다.


# 팔상도(八相圖)


팔상도(서울 安養庵 八相圖)는 2004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됐다.


팔상도(八相圖)는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일대기를 8개 장면으로 압축해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兜率來儀相]․ 비람동산에서 내려오는 상[毘藍降生相]․ 4문에 나가 관찰하는 상[四門遊觀相]․ 성을 넘어 출가 하는 상[踰城出家相]․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雪山修道相]․ 보리수 아래서 마귀에게 항복받은 상[樹下降魔相]․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鹿苑轉法相]․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하는 상[雙林 涅槃相] 등 총 8폭으로 구성됐다. 


팔상도는 대웅전 향좌측(向左側)에 모셔져 있다. 다른 팔상도와 달리 제1상 兜率來儀相․ 제2상 毘藍降生相과 제3상 四門遊觀相․ 제4상 踰城出家相이 바뀌어 걸려 있다. 


사진-문화재청원래 제3상으로 걸려 있을 사문유관상이 현재 제1상으로 걸려 있는데 이 그림은 세존이 태자 시절에 동.서.남.북의 사문(四門) 밖으로 나가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을 그렸다. 제4상으로 걸려 있을 유성출가상은 현재 제2상으로 걸려 있는데 이 그림은 밤에 궁중 시종들이 잠든 뒤 4대천왕의 호위를 받으며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을 그렸다. 원래 제1상으로 걸려 있어야 하나 현재 제3상으로 걸린 도솔래의상에는 부처님이 호명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다가 카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왕비의 태자로 탄생해 도솔에서 내려오는 것을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내려오는 꿈을 꾸고 있는 마야부인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원래 제2상으로 걸려 있어야 하나 제4상으로 걸려 있는 비람강생상은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장면들이 묘사됐다. 제5상 설산수도상은 설산(雪山)에 들어간 태자가 대신들을 보내어 환궁을 종용하는 정반왕의 요청을 물리치고 신선들과 함께 수도에 정진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고, 제6상 수하항마상은 태자가 마군(魔軍)들의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고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 장면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제 7상 녹원전법상은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불법을 설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고, 제8상 쌍림열반상은 80세가 된 부처님이 이월 보름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시고 열반에 드시는 장면들이 묘사됐다.


그림의 제2․4․6․8상에는 화기가 적혀있어 이 그림들이 1917년 화암(華庵)․학봉(鶴峰) 선호(善昊) 등에 의해 제작되어 삼각산 안양암에 모셔진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대웅전의 팔상도는 전통적인 팔상도보다 많은 장면을 삽입해 도상이 굉장히 복잡함에도  장중하고 짜임새 있는 안정된 구도와 정교하고 섬세한 필선, 마치 민화를 연상시키는 수지법 등이 돋보인다. 이 그림을 통해 조선 후기 팔상도와 민화와의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등 중요한 학문적 자료가 된다.


# 극락왕생도(極樂往生圖)


극락왕생도(極樂往生圖)는 2004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됐다.


현재 대웅전의 향우측에 모셔져 있는 이 그림은 화기(畵記)가 없어 정확한 제작연대와 화사는 알 수 없지만 작품의 경향으로 볼 때 19세기 말~20세기 초반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사진-문화재청2폭의 그림이 상․하로 나눠 조성 됐다. 위쪽의 그림은 극락연지를 배경으로 아미타삼존이 청련화(靑蓮花)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고 연꽃이 만발한 연지 속에는 활짝 핀 연꽃 속에서 연화화생(蓮花化生)하는 장면을 그렸고 아래쪽의 그림은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를 그렸다.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는 전각형의 용선(龍船) 안에 여래와 극락왕생하는 중생들이 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용선 앞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극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고 용선(龍船) 뒤쪽에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서 있다.


이 그림은 20c 초반 일섭(日燮) 스님의 아미타불화에도 응용될 만큼 도상적으로 우수하고, 그림 왼쪽에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라는 글씨가 적혀 있어 당시 이와 같은 극락왕생도에 어떠한 명칭을 붙여 불렀는지도 알 수 있고 원형도 잘 유지돼 있다.


# 아미타괘불도 (安養庵 阿彌陀掛佛圖)


괘불(掛佛)이란 옥외에서 법회를 할 때 밖에 내어 걸고 의식을 행하는 걸개 그림 형태의 불화를 말한다. 2004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됐다.


사진-문화재청아미타괘불은 대웅전 신중도를 그린 당대 최고의 화사 고산당(古山堂) 축연(竺演)이 1919년 제작한 작품으로 세로 6.90m×가로 3.24m의 거대한 화면 중앙에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가슴 부근에 댄 아미타불을 크게 배치하고 그 양 옆으로는 흰 옷을 입은 관음보살과 연꽃 가지를 들고 자비로운 표정을 한 대세지보살, 그리고 아난과 가섭을 좌우 대칭적으로 작게 묘사한 다음 그림 아래쪽으로는 코끼리 타는 보현동자와 사자를 탄 문수동자를 표현했다. 중앙의 아미타불은 넓은 어깨에 당당한 체구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아미타삼존 중 아미타불을 상대적으로 크게 강조해 그린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도상 역시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유행 했다. 보문사 괘불과 함께 지역적 특징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축연(竺演) 스님의 다른 작품에서처럼 이 그림에서도 음영법이 잘 나타나 있는데 가섭과 아난의 얼굴, 불보살의 옷 선 등에서 잘 드러난다.


아미타불의 발 좌우에는 패(牌) 모양으로 구획을 지어 화기를 적어 놓았다. 화기에 의해 이 그림이 1919년 고산당(古山堂) 축연(竺演)에 의해 그려져 안양암에 봉안됐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상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고 적극적으로 음영법을 수용하는 등 고산당(古山堂) 축연(竺演)의 화풍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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