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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310] 지공연협동조합, 정범철 연출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3-11-27 16: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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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에서 지공연협동조합 하타사와 세이고 작 정범철 연출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를 관람했다.


하타사와 세이고는 1964년에 태어났다. 극작가 겸 연출가, 극단 ‘와타나베 겐시로 상점’의 점주로 아오모리 시를 근거지로 전국적인 연극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내 시체를 넘어 가라」로 2005년 일본 극작가 대회 단편 희곡 콩쿠르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라디오 드라마 각본으로도 문화청 예술제 대상 등 여러 차례 수상했다. 


현역 고등학교 교사이기도 하며, 고문으로 지도하는 아오모리 현립 아오모리추오 고교 연극부는 전국 고등학교 연극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세 차례나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학교 교장을 교직원 선거로 뽑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 「소명」, 피해자 가족이 수형자의 사형을 직접 집행하는 가상의 상황을 다룬 「동토유케」 등 다수가 있다.


2006년, 일본 후쿠오카 현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자살했다. 가해 학생들은 전혀 뉘우침이 없었다. 어떤 가해 학생은 "아아, 뒈져버렸군, 주물럭거릴 녀석이 없어져서 심심하네"라고 아쉬워했고, 조문을 갔던 또 다른 가해 학생은 관 속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정범철(1976~)은 경기대학교 무역학과와 서울예대 극작과 출신으로 극 발전소 301 대표이자 극작가 겸 연출가다. 2006 옥랑희곡상 ‘로미오와 줄리엣은 살해당했다’로 등단, 2006 옥랑희곡상, 2007 제4회 파크 희곡상, 2009 AYAF 차세대 예술인력 집중육성지원 1기 선정, 2011 차세대 희곡작가 인큐베이팅 선정, 2014 제34회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 희곡상, 연출상, 대상 ‘만리향’, 2015 제35회 서울연극제 연출상 ‘돌아온다’, 2018 서울연극인대상 극작상 ‘분홍나비 프로젝트’, 2019 (사) 한국극작가협회의 올해의 극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테러’ ‘논두렁연가’를 발표했고, 연출작은 ‘점’ ‘도로시의 귀환’ ‘총각네 야채가게’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만리향’ ‘돌아온다’ ‘인간을 보라’ ‘그날이 올텐데’ ‘아일랜드 행 소포’ ‘액션스타 이성용’ ‘주먹쥐고 치삼’ ‘너 때문에 발그레’ ‘분홍나비 프로젝트’ ‘카미카제 아리랑’ “타임택시‘ 등을 집필 또는 연출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는 극작가이자 현역 고등학교 교사인 하타사와 세이고는 "나도 교사이기 때문에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사람이 죽었다면 뭔가를 느끼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라면서, 이것은 반드시 써야겠다고 결심한 희곡이다.


원작 희곡의 무대는 일본에서도 명문으로 손꼽힌다는 기독교계 사립 여자 중학교 회의실. 그날 아침 일찍 2학년 학생 하나가 자기 반 교실에서 목을 맸다. 그 학생은 자살하기 전에, 가해 학생 다섯 명의 이름을 적은 유서를 학교로 보냈다. 학교 측은 오후에 배달된 편지를 읽고 가해자로 지목된 다섯 학생을 개별 선생의 보호 아래 격리한 다음, 그들의 부모를 불러 모은다. 저녁녘에 회의실에 모인 각양각색의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동급생을 자살로 내몬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다는 혐의를 부인한다. 자기 딸은 그럴 리 없으며, 자살을 한 학생에게는 남모르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살을 한 학생은 슈퍼마켓에서 시간제 점원으로 일하는 어머니를 도우고자 신문보급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해 학생들은 학칙으로 금지된 아르바이트를 고자질하겠다고 협박해서 돈을 뜯었다. 이지메(왕따)에 재미를 들인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원조교제를 강요했고, 그것을 거절하자 협박용 나체 사진을 찍었다. 그런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자 가해 학생의 부모들은 '정의로는 애들을 지킬 수 없다'면서 유서와 휴대전화에 남은 사진과 같은 증거를 인멸하고, 교장은 그것을 묵인한다. 한편 보호 중인 가해 학생들은 피자타령과 장례식에 입고 갈 옷 걱정을 늘어놓는다.


일본에서 큰 반향을 얻은 이 연극이 낭독 공연 형식으로 한국에 선보였던 2012년 2011년 12월 말, 대구 수성구 모 중학교 남학생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 학생은 유서에서 자신을 괴롭힌 특정 학생을 지목했고, 가해 학생들은 구속되었다. 자녀를 둔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교육계는 비상이 걸렸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2012년 1월 말, 조용한 극장에서 열린 희곡 낭독 공연장에서 관객들은 이 사건과 똑같은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희곡의 제목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자살하면서 유서에 다섯 학생의 이름을 써놓았고,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이 학교 회의실에 소집되면서 학교 측과 유서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숨조차 편히 쉬지 못했고, 이어지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뜨겁게 질문을 퍼부었다. 관객들을 또 한 번 충격에 빠뜨린 이 작은 연극은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되었고, 신시컴퍼니에서 정식 연극으로 제작, 한 달여 짧은 공연 기간 동안 13,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여러 매체에서 끊이지 않고 회자되었다. 집단 따돌림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문제로 날카롭게 파고든 문제작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소설로 만난다.


소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낭독 공연 직후 도서출판 다른의 제안으로 원작자가 희곡을 소설화하여 출간되었다. 소설로는 일본 독자들보다 국내 독자들을 먼저 만난 셈이다. 작은 규모에도 불구, 단 한 차례의 낭독공연으로 무대화와 소설화가 앞다투어 결정된 것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을 만큼 메시지 자체가 가진 힘이 컸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청소년 자살’이라는 시대의 이슈와 절묘하게 맞물린 까닭일 것이다. 


원작자이자 소설의 작가인 하타사와 세이고는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쓴 이 연극을 2008년 도쿄 신주쿠에서 초연하여 관객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같은 해 일본 쓰루야난보쿠 희곡상의 최종 후보로 거론될 만큼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이런 일이 설마 있을까?’라는 말로 대변되며 우리와는 먼 이야기라고 여겨지던 일본의 ‘이지메’ 문제. 하지만 이제는 ‘세계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이라는 치욕적인 오명에서도 드러나듯, 한국의 집단 따돌림, 소위 ‘왕따’ 문제 또한 날로 그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다. 이 소설이 집필되는 중에도 국내의 청소년들은 학교폭력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연쇄 자살’이라고 불릴 만큼 충격적인 청소년 자살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계속 보도되었다. 밝혀지는 현실은 ‘연극 이상’이었다.


사회성 짙은 소재와 교육적 이슈에 유독 강점을 가지는 것은 그가 현직 교사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첫 작품인 [소명](2000년)에서도 그의 감각과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교장을 교직원 선거로 뽑는 가까운 미래. 아오모리 현 공립 중학교 교장실에서 전임 교장이 세상을 뜨면서 여덟 명의 교사가 새로운 교장을 뽑게 된다는 내용으로, 2007년 도쿄에서 상연될 당시 일본 내 교장 자살 사건과 맞물리며 크게 주목받았다.


무대는 중학교의 상담실, 배경에 커다란 창이 있고 밖에 복도가 좌우로 연결되어 있다. 교무실로 가는 문과 학교 밖으로 가는 문이 좌우에 있고, 의자와 탁자가 중앙 뿐 아니라 무대 좌우에 긴 의자도 배치되고, 상수쪽에 전화기가 있다. 찻잔을 쟁반에 받쳐 가져오고, 종이편지도 들여온다.


차희, 전소현, 권남희, 맹복학, 문혜주, 박용, 김미준, 엄태옥, 전서진, 박현미, 이정인, 구혜령, 우연호, 권기대, 박채익, 김루시아, 김윤태, 김필, 송예리, 최담, 장명갑, 양은주, 율비, 박신운, 박민선 등이 더블 캐스팅되어 날자별로 출연해 기량을 발휘한다. 출연진의 성격창출에서부터 감성표현에 이르기까지 호연을 보여 갈채를 받는다.


조연출 염창선, 무대디자인 유다미, 조명디자인 배대두, 사진 김명집, 오퍼 정솔아, 그래픽디자인 디자인 SNR, 기획 이창훈(컬쳐루트) 등 스텝진의 기량도 드러나, 공연협동조합 하타사와 세이고 작 정범철 연출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를 괄목할만한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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