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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 39] 석조당과 즉조당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12-04 20:24:42
  • 수정 2024-04-15 17: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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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석어당은 조선시대 사가(私家) 건축물로는 드물게 당당하고 품위있는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많지 않았던 2층 집으로 1층은 정면 8칸, 측면 3칸이고, 2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이뤄져 있다. 건물의 품도 넓고 높이도 높아 대단히 당당하고 기품이 넘친다. 


이 정도 규모라면 월산대군 시절에는 장안에서 가장 큰 저택 중 하나였을 것이고 행궁의 임금 처소로 삼을 만 하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6칸 누각 공간이 칸막이 없이 아주 널찍하고 사방으로 창이 나 있어 여름철 더위를 피하는 데 제격이라고 한다. 




석어당은 궁궐 건물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다. 덕수궁 안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없기  때문에 ‘백골집’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즉조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옆으로 긴 건물로, 오른쪽과 뒤쪽에 각각 툇마루를 덧달아 면적을 넓혔다. 전통 건축에서는 이를 가퇴(假退)라 한다. 의젓한 기품이 돋보이고 팔각지붕의 날개를 편 듯한 곡선미가 아름답다. 1897년 고종이 경운궁으로 옮겨온 뒤 즉조당은 다시 법전(法殿)으로 사용됐다. 후에 그 곁에 준명당(浚明堂)을 지어 두 건물을 복도로 연결했다. ‘준명’은 ‘밝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즉조당과 준명당은 돌기둥 복도로 연결돼 자못 길면서도 당당한 위용을 보여준다. 그만큼 앞마당도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이는 다른 궁궐에서는 예를 찾아 볼 수 없다. 즉조당과 준명당은 비슷한 형태와 비슷한 크기로 서로 대칭을 이룬 듯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대칭이 아니라 정확한 대칭을 피해 평면은 대칭을 이루나 입면은 대칭을 피하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비대칭의 대칭’을 엿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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