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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 40] 덕수궁에서 고종의 체취가 가장 잘 느껴지는 공간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12-04 21:17:25
  • 수정 2024-04-15 17: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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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녕전과 덕흥전

함녕전(우측)과 덕흥전(좌측)

[이승준 기자] 대한문을 들어서면 금천교가 있고, 금천교를 건너면 오른편으로 덕수궁의 전통 건축 공간이 펼쳐진다. 바로 고종황제의 침전이 있던 함녕전 구역으로, 회랑으로 둘러진 안쪽에 함녕전과 덕흥전이 있고, 뒤편의 화계 너머로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이 있다.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으로 쓰였던 곳으로, 화재로 인해 3년간 중명전에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줄곧 여기서 기거하다 세상을 떠난 곳으로, 덕수궁에서도 고종의 체취가 가장 잘 느껴지는 공간이다.  






함녕전 건물은(보물 제820호)은 정면 9칸, 측면 4칸이며 서쪽 뒷면에 4칸이 더 붙어 짧은 기역자 형인데 반해, 덕흥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측면의 폭이 정면보다 넓다. 이는 전통 한옥에서 보기 힘든 형태로, 아마도 정면을 더 넓게 펼칠 수 없는 입지 조건 때문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변형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덕흥전은 측면이 넓은 만큼 팔작지붕의 세모꼴 합각으로, 이 빈 공간을 아름다운 꽃무늬로 장식한 것이 특징으로, 덕수궁에서 가장 늦게 지어진 건물로 원래는 명성황후의 혼전인 경효전이 있었단 자리였다. 화재 후 이 건물을 지어 귀빈들을 접견, 한 때는 고종황제가 덕흥전을 쉽게 드나들도록 함녕전까지 복도를 놓았다고 하나 현재는 흔적만 남아 있다. 




함녕전은 2016년 실내장식을 옛 모습대로 재현해,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주렴(珠簾)과 방풍을 위한 우리식 커튼인 무렴자(無簾子)를 동실과 서실에 설치했다. 또 방장과 무렴자가 있다. 방장은 방풍과 방한을 위해 사면 벽을 둘렀다. 방장은 나무로 만든 틀에 천을 발라 만들었다. 


무렴자는 지지대 없이 창문과 출입문에 설치한 천을 발라 만들었고, 위쪽에 금속 고리를 달아서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말아서 올려둘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함녕전에 설치한 방장, 외주렴, 무렴자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각종 의궤에 나오는 그림을 바탕으로 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조대용을 비롯해 나전장, 소목장, 두석장의 기능 보유자와 이수자들이 참여, 제작했다. 



함녕전 시첩/출처-LG연암문고

일제강점기에 함녕전 뒤에는 흰 대리석에 칠언칠구를 새긴 시비(詩碑)가 사진으로만 전해진다. 이 시비에는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의 수행원 모리 다이라이, 2대 통감 소데 아라스케, 친일 대신 이완용 등 국권피탈의 주역 4명의 이름이 각 행 아래 쓰여 있다. 이 시비는 8.15 해방 뒤 철거됐는데 함녕전 뒤뜰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의 원본은 ‘함녕전 시첩’으로 현재 명지대 LG연암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발문(跋文)을 보면 1907년 7월 함녕전에서 벌어진 초대 통감 송별연 때 연작시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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