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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둘러보기 4]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근현대 건축 전문 시립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12-09 09:27:56
  • 수정 2023-12-25 03: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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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김중업건축박물관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근현대 건축 전문 시립박물관이다.


한국 근현대 건축의 거장인 건축가 김중업(金重業, 1922~1988)의 작품세계를 만나 볼 수 있도록 그가 설계한 (주)유유산업 안양공장을 개축해 2007년 5월 개관했다. (주)유유산업 안양공장은 1950년대 후반 지어진 김중업의 초기 작품으로, 2007년 5월 업체가 충북 제천으로 이전하면서 안양시가 부지를 매입해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공사 중 안양(安養)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고려시대 안양사(安養寺) 명문 기와가 출토되면서 관련 유물을 신축 건물인 안양사지관에 전시했고,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 중 4개 동 외에 나머지 건물들은 철거했다. 



2016년 8월 18일 김중업박물관에서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2017년 9월 28일에는 기존 평촌아트홀에 있던 안양박물관이 해당 부지로 이전해, 김중업건축박물관, 안양박물관이 같은 장소를 공유하게 됐다. 이와 함께 기존 안양사지관이 특별전시관으로, 김중업관은 안양박물관으로 변경됐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의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있고, 부지면적은 16,243㎡로, 사진, 도면, 스케치, 주요 건축물 모형 등 김중업 건축가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주요 시설은 상설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는 박물관 건물로, 김중업이 설계한 유유산업 공장 건물 중 하나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상 2개 층 모두 김중업의 생애와 작품을 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다. 



1층에서는 김중업의 약력, 건축 세계, 스케치, 작품 중 하나인 서산부인과 등을 소개하면서 컴퓨터 화면으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 테이블을 마련해 놓았다. 2층은 김중업의 생애와 관련 유물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그의 도면, 작품모형과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통해 건축관을 이해할 수 있게 꾸몄다.


신축 건물인 특별전시관에서는 1층과 2층의 전시 공간을 활용해 안양시 및 김중업과 관련된 다양한 기획 및 특별전시를 선보인다. 특별전시관 2층에는 문헌자료실이 있다. 유유산업 공장 건물을 개축한 교육관에서는 심포지엄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중엽(1922∼1988) 건축가의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여천(如泉). 평양 출생. 아버지 김영필(金永弼)과 어머니 이영자(李英子)의 5남 2녀 중 둘째 아들이다. 군수인 아버지를 따라 강동.중화.성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39년 3월평양중학교를 졸업한 뒤, 요코하마(橫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파리미술대학 출신인 나카무라(中村順平) 교수로부터 건축교육을 받고 고전에 대한 눈을 떴다.




1941년 12월 졸업한 뒤 마쓰다(松田).히라다(平田)건축사무소에서 3년간 건축실무를 익혔다. 1944년서울에 있는 조선주택영단 기수로서 일했고, 광복 전 1945년안양에 있는 조선비행기제작주식회사에 근무했다. 1947년 3월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조교수가 되어 건축을 가르치면서 시를 썼다.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사범대학을 비롯해, 한양공과대학.이화여자대학교.숙명여자대학과 부산공업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다.


1952년 9월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UNESCO 주최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에 한국건축가 대표로 참석했고, 파리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건축사무소에서 1952년 10월부터 3년 6개월간 건축 및 도시계획을 수업하고 자아발견의 가르침을 받았다.


1956년 3월 귀국해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열고 본격적인 건축창작 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고전을 현대감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홍익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쳤다. 1957년 4월중앙 공보관에서 제1회 김중업건축작품전람회를 개최하였고, 1971년 10월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제2회 작품전을 열고 그 동안의 작품과 프랑스 정부가 만든 영화 '건축가 김중업'을 선보였다.



서울이 당면한 도시계획.건축 등의 문제에 대한 정부시책을 과감하게 비판했다가 1971년 11월 출국해 프랑스에 거주하게 됐고, 1972년 3월르 코르뷔지에 재단이사로 선임됐다. 그 뒤 미국으로 이주해 프로비던스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1979년 귀국해 별세할 때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한국문화 속의 샤머니즘적인 체험과 내면에 분출된 원초적인 힘 등 보이지 않는 무한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주제를 가지고, 시정(詩情)이 흐르는 생략적이고 암시적인 방법으로 건축에 대한 정취를 표현했다.




초기 대표작품으로는 '명보극장'(1956), '서강대학교 본관'(1958), 서울 장위동 「‘人’자의 집」(1958), '드라마센터'(1959) 등이 있다. 1960년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선보였는데, 콘크리트로 지붕 처마선을 직선과 곡선으로 처리한 형태와 단아한 전체구성 및 공간처리는 한국의 얼과 프랑스다운 우아함이 잘 어우러진 건물로서 한국 현대건축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뒤의 주요작품으로는 '설씨 청평산장'(1962), '제주대학 본관'(1964), '서산부인과의원'(1965), '부산 UN묘지 정문'(1966), '3·1빌딩'(1969) 등이 있다.


1970년대 외국에 체류하면서 설계한 작품으로는 '성공회회관'(1974), '한국외환은행본점 설계경기안'(1974) 등이 있고, 1979년 귀국 후에는 '바다호텔'(1980) '하늘교회'(민족대성전, 1980) 등의 계획안을 발표했고, 'KBS국제방송센터'(1988), '올림픽공원 상징조형물'(1988) 등을 설계했다.


1962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65년주한프랑스대사관 설계로 프랑스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과 슈발리에(Chevalier) 칭호, 1985년 산업포장(건설유공 부문)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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