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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64] 천축사 비로자나삼신불도 및 복장유물 外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2-09 19: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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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 천축사 비로자나삼신불도 및 복장유물


서울 천축사 비로자나삼신불도 및 복장유물은 가로가 긴 화면이 상하로 구분돼 있는데, 상단에는 삼신불이 나란히 앉아있고, 하단에는 보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삼신불은 중앙에 지권인(智拳印)을 취한 법신 비로자나불, 왼쪽(向右)에는 양손을 어깨높이로 들어 설법인(說法印)을 취한 보신 노사나불, 오른쪽에는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올린 설법인을 취한 석가모니불이 자리하고 있다. 삼불은 모두 원형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지고 목리문(木理文 : 나무결 무늬)이 표현된 불단 위의 연화좌에 앉아 있다.


삼불 이외의 공간에는 최상단에 4보살과 좌우에 시방제불, 그 아랫단에는 2보살과 범천 및 제석천이 삼불 사이에 배치돼 있다. 그 아랫단은 삼불과 하단의 보살중 사이에 해당하는데 중앙 비로자나불의 무릎 좌우에는 가섭과 아난존자, 양 끝에는 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하단의 8보살은 모두 원형의 두광과 모서리가 둥글려진 직사각형의 신광을 지고 있다. 지장보살을 제외한 모든 보살은 동일한 모습의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각기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이 불화는 이처럼 삼신불도임에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19세기 중엽부터 서울.경기 지역에서 활발하게 불화제작을 한 경선당 응석(慶船堂 應碩)이 편수(片手)를 맡아 환감(幻鑑).혜조(慧照).경림(璟林).탄인(呑仁).창오(昌悟) 등이 제작한 작품이다. 경선당 응석은 천축사 삼신불도처럼 전통적인 화법으로 작품을 그리되 간혹 도상을 나름대로 변화시켜 새로운 도상을 창출하곤 하였다. 갸름한 얼굴과 지극히 작은 이목구비의 얼굴, 꽃무늬가 새겨진 대의, 적.녹.청색의 색조, 목리문의 표현 등 응석 불화의 양식적 특징들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화폭의 오른쪽 하단에'臣尙宮己酉生朴氏 尙宮己酉生金氏等○○奉爲 王妃殿下辛亥生閔氏玉體恒安聖壽萬歲'라 시주질이 기록되어 있어 상궁 박씨와 김씨 등이 명성황후 민씨(1851∼1895)를 위해 시주한 불화임을 알려주고 있다.


상태는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으나, 화면의 상단이 그을음 등으로 채색이 어두워져 있고, 화폭의 상단 오른쪽이 일부 찢어져 있는 상태이다.



이 불화는 19세기 서울 경기 지방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당 응석이 주관하고 대선사 하은 예가(荷隱 例珂 : 1828~1898)가 증명한 불화로 독특한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고, 또한 명성황후를 위해 상궁들이 시주하여 제작하였다는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천축사 비로자나삼신불도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발견된 복장유물(2015년 1월 15일 추가지정)은 현 천축사 삼신불도와 같은 시기에 조성된 유물로, 이와 함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천축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 (天竺寺 毘盧舍那三神掛佛圖)


천축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는 비로자나삼신불입상이 화면에 꽉 차게 그려진 구도이다. 중앙에 지권인을 취한 법신 비로자나불, 왼쪽에는 설법인을 취한 보신 노사나불, 오른쪽에는 항마인(降魔印)을 취한 화신 석가모니불이 배치돼 있다. 보통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은 각기 지권인과 촉지인(觸地印)을 취하는 여래형으로 표현되고, 노사나불은 양손을 어깨쪽으로 들어 설법인을 취하고 보관(寶冠)과 영락(瓔珞) 장식으로 장엄한 보살형 또는 여래형 두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19세기 서울.경기 지방에서는 이러한 삼신불 혹은 삼세불을 주제로 한 괘불이 유행했는데 삼신불을 주제로 한 괘불 중에는 흥천사 괘불(1832년).청계사 괘불(1862년).불암사 괘불(1895년)처럼 삼불을 모두 여래형으로 표현하는 불화도 있는 반면 이 천축사 괘불처럼 지권인.설법인.촉지인의 전형적인 수인(手印)을 취하고, 삼불이 동일한 대의를 입은 여래이지만 보신불과 화신불 모두 보관을 쓴 보살형으로 표현된 예도 있다. 법신불의 우위를 부각시키고자 한 의도일 수 있겠으나 19세기 들어 빈번히 보이는 도상의 와해현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화면 상부의 여백에만 구름을 간략히 표현하였을 뿐 다른 존상이나 장식이 없이 오직 삼불(三佛)로 화면을 채우는 구성 뿐만 아니라 뾰족한 육계, 화려하고 도식적인 큼직한 보관, 적.녹.청색의 주조색, 그리고 육색(肉色)을 황색으로 처리한 점, 대의 끝단의 작은 꽃무늬, 색의 농담으로 입체감을 표현하고자 하는 설채법(設彩法) 등이 19세기 경기도 지방 불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괘불은 하운당 유경(河雲堂 有鏡)이 창엽, 총지, 봉조, 총륜과 함께 제작한 불화로 유경은 3년후 1861년 화계사 칠성도(가평 현등사 소장)를 조성했으나, 이외의 작품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넓적한 형태의 얼굴과 눈은 가늘지만 비교적 큼직한 이목구비, 특히 리본처럼 그려진 입술의 모습이 하운당 유경의 특징적인 양식으로 보인다.


창엽과 총륜은 같은 해 9월 응석의 주관으로 조성된 남양주 흥국사의 괘불 제작에도 함께 참여했다. 두 괘불은 같은 해에 제작됐고 참여한 화승도 2명이나 공통되나 수화승(首畵僧)에 따라 불화의 양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불화는 화면에 손상이 없고, 화기가 완전하게 남아있고 채색도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등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또한 괘불(掛佛)로서 규모는 크지 않고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삼신불을 그린 구성과 양식 등이 19세기 서울.경기지방 괘불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으며, 금어인 하운당 유경은 남아있는 작품이 희귀하여 그의 독특한 불화 양식 규명과 19세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 (天竺寺 木彫釋迦三尊佛)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은 조성발원문과 복장 전적 등이 남아있지 않지만, 중수 발원문 가운데 한 장에는 17세기 전반에 조성됐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삼존불상의 양식이나 착의법 등은 17세기 전반의 불상들과 일치한다. 특히 당시 대표적인 조각승 가운데 하나였던 현진과 그 계보 조각승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 서울시 유형문화재 가치가 있음


# 천축사 목조불단 (天竺寺 木造佛壇)


천축사 목조불단은 서울 도봉산 천축사 대웅전의 중앙에 위치해 예배대상인 목조석가삼존불(서 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7호)이 안치되어 있던 대형 불감(佛龕)의 일부에 해당한다. 천축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흑백 사진에 의하면 이 불감의 원형은 가자상(架子床) 형식임을 알 수 있다. 가자상 형식은 명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가구의 일종으로서, 중국에서는 규모가 작은 묘사(廟社) 건축에 배치되어 불상이나 도교상 및 관우상 등의 존상을 안치하는 감실로 대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천축사 불감 또한 명대 가자상 형식의 영향을 받아 조선식을 절충하여 제작했다.


복장된 발원문과 1600년 경 간행된 묘법연화경 등에 의해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석가불, 재화갈라보살, 미륵보살임이 밝혀졌고, 발원문 중 하나를 보면 목조석가삼존불상은 만력연간(1573~1619)에 제작해 1713년 조각승 진열과 영희 등에 의해 경기 고양 북한산 露積寺(현, 천축사)에서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이 불감의 조성연대를 1713년(숙종 39)으로 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나, 대웅전 중수 기록에 의해 후대로 내려갈 수도 있다.



현재 천축사의 불감 중 상부의 닫집은 제거된 채, 현재는 하부의 불단만 남아 전하고 있다. 천축사의 불단의 특징은, 첫째, 천축사 불단의 재료는 단단한 소나무로 만들었고, 3단의 수미단 형식으로 되어 있다.


둘째, 불단의 외부에는 주칠을 하고 금박으로 장식했다.


셋째, 불단은 구조적인 보강과 마구리 부분을 금속제 장석으로 보강하고 있다.


넷째, 불단은 현재 흑칠이 되어 있지만 장석 안쪽이나 금박이 붙었던 부분에 의하면 전체 적으로 주칠이 되어 있다.



다섯째, 불단에는 원래 주칠 위에 마름모꼴의 금박문이 붙여져 있고, 현재는 그 흔적이 남아 몇 군데에서 확인된다.


여섯째, 전체적으로 불단은 앞쪽 면만 초엽을 장식하고, 팔보문을 투각하고, 황동제 장석을 대고, 화려한 금박을 붙이고 있다.


일곱째, 이 불단과 비교가 되는 유물은 대부분 수미단 형식의 불단이고 그것들은 대부분 보물이나 지방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본 불단은 불감형태의 하부 구조만 남아 있지만, 목공예품은 재질의 특성상 보존이 어려워 시대가 올라가는 유물이 많지 않고 조선 후기의 유물조차 거의 없는 여건이어서 본 유물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목공예사적으로 주목된다. 더욱이 본 유물은 불단 위에 모셔져 있던 목조석가삼존불상이 17세기 초 불상으로 가치가 인정되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47호로 지정된 바 있고, 유물의 역사적 가치나, 예술적 가치 및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 천축사 마애사리탑 (天竺寺 磨崖舍利塔)



천축사 마애사리탑 2기는 도봉구 도봉산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사찰인 천축사의 일주문 뒤편 암벽에 각각 새겨져 있다.


암벽의 남향으로 조각된 사리탑은 사리를 넣었던 감실 위에 음각으로 “청신녀정월 영주봉안탑 정축사월일(淸信女淨月 靈珠奉安塔 丁丑四月日)이라고 새겨져 있어, 여성 재가자인 정월(淨月)의 사리를 봉안한 것임을 알 수 있고, 동향으로 조각된 사리탑은 ”신녀○영영주탑 임오팔월(信女○英靈珠塔 壬午八月)이라고 새겨져 있다.


천축사 마애사리탑은 명문을 통하여 제작연대와 사리탑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는, 19세기 후반 석조미술사 연구에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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