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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시간이 머무는 섬, 울릉도 9] 울릉도 수토 행적 남기기 위해 새긴 '도동리신묘명각석문'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12-11 18:45:22
  • 수정 2024-04-27 10: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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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울릉도도동리신묘명각석문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각석문이다. 


1937년 울릉도 도동 죽항 공사장에서 각석문 2기가 발견됐으나, 현재는 독도박물관 옆 향토 사료관에 신묘명각석문 1기만이 전시, 보관돼 있다.


1711년(숙종 37) 5월에 삼척영장(三陟榮將) 박석창(朴錫昌) 일행이 울릉도 수토(搜討)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 새긴 것이다.


마름모꼴의 바위 면에 20행, 총 143자가 각자되어 있다. 글자의 순서는 날짜, 수토 내용, 수토관 및 수행원들의 이름 순으로 새겨넣었다. 현존하는 각석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辛卯五月初九日到泊于倭舡倉以爲日後憑考次 萬里滄溟外將軍駕彩舟平生仗忠信履險自無憂搜討官折衝將軍三陟營將兼僉節制使朴錫昌拙句刻石于卯方軍官折衝朴省三折衝金壽元倭學閑良朴命逸軍官閑良金元聲都沙工崔粉江陵通引金蔓營吏金嗣興軍色金孝良中房朴一貫及唱金時云庫直金危玄食母金世長奴子金禮發使令金乙泰”



반면 망실된 1기는 1735년(영조 11)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 47㎝, 바닥 너비 37㎝, 상부 너비 19㎝이며, 내용은 “擁正十三年乙卯閏四月初八月搜討官三陟營將具億軍官崔獜朴元昌倭學金善義”라 되어 있었다고 한다.


각석문의 내용에서 연호 없이 신묘(辛卯)라는 간지만 확인되지만 박석창이 1711~1712년 삼척영장으로 재임했던 사실을 통해 신묘가 1711년임을 알 수 있다. 울릉도도동리신묘명각석문은 숙종 때 수토관이 파견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삼척영장겸첨절제사(三陟營將兼僉節制使) 박석창이 신묘년 5월에 수토관으로서 부하를 인솔해서 들어와 울릉도를 수토하고 기록을 남겨 놓은 것이다.


또한 동행한 일행의 신분과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수토 때에 왜학(倭學)이 동행한 사실과 왜강창(倭舡倉)이라는 명칭을 통해 당시 울릉도에 일본인이 꽤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각석문은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수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3호로 지정됐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됐다./사진-심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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