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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야기 44] 수원화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수원화성행궁(2)’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1-06 20:09:52
  • 수정 2024-04-15 17: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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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사적 제478호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됐다.


# 경륭관(景龍館)



경룡관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도 사용한 부속 건물로, '경룡'이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하는 것으로 당태종이 거처한 궁궐 이름에서 따 왔다.


정조는 당태종의 궁궐 이름을 차용한 이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조선의 태평성세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1794년(정조 18)에 세워진 경룡관을 2층 구조로 건물의 2층은 모두 마루를 깔아 누마루를 만들고, 아래층은 3칸의 널문을 만들어 '지락문(至樂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 장락당(長樂堂)



장락당은 1795년 을묘원행중 혜경궁의 침전으로서 1794년(정조 18) 화성 성역 중에 완성됐고, 봉수당 남쪽에 있는데 봉수당의 서남쪽 지붕과 겹쳐 있고, 동향으로 세워졌다. 장락당은 전한의 도읍인 장안성의 궁전이었던 장락궁에서 이름을 따 왔다.


혜경궁 홍씨 진찬상/1795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화성행궁 봉수당 앞마당에서 열렸다. 혜경궁 홍씨를 위한 진찬상에는 70종의 음식과 42개의 상화를 올렸는데, 음식은 고임을 높게 올리고 42개의 상화을 꽂아서 장식했다.

글 읽는 환관/봉수당과 장락당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환관이 서책을 보고 있는 장면

채비하는 환관/봉수당과 정락단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환관이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장면

단장하는 상궁/봉수당과 장락당 뒤편에 연결된 행각으로 단장하고 있는 상궁의 모습혜경궁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던 정조는 한나라 태후의 거처였던 장락궁의 이름을 따 행궁의 내전인 장락당의 편액을 직접 써서 걸었다.


# 복내당(福內堂)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內堂)으로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렀던 곳으로, 장락당 남쪽에 위치했다. 상량문은 1796년(정조 20) 11월 민종현이 지었다. 복내당의 이름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원래 복내당은 1790년(정조 14)에 수원부 신읍치소의 내아(內衙)로 건립했고, 1794년(정조 13)에 세웠다. 좌우 두 채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 낙남헌(洛南轩)



낙남헌은 일제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낙남헌이란 이름은 후한의 광무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 이름을 '남궁(南宮)'이라 한 것에서 따온 것으로 1794년(정조 18)에 완공됐다. 1795년(정조 19) 을묘원행시에는 각종 행사가 이 곳 낙남헌에서 치러졌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해 군사들의 회식을 이 곳에서 했고,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문과 5명과 무과 56명을 선발했는데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 주는 행사도 이 곳에서 있었다.


# 노래당(老來堂)



노래당은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꿈꾸면서 지었다는 건물로 낙남헌과 득중정에서 펼쳐지는 여러 행사 도중 휴식을 취하는 데 사용했다. 화성 행궁의 정당인 봉수당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오는데, 곱은 ㄱ자형으로 배치한 초익공(初翼公) 양식의 팔작지붕집이다. 1794년(정조 18) 행궁을 증축할 때 5량 7칸의 규모로 새로 지었고, 편액(扁額)은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나 전하지 않는다. 북쪽으로 낙남헌과 이어져 있고, 남쪽으로는 득중정과 통한다.


# 득중정(得中亭)



득중정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로 편액을 정조가 직접 써서 걸었고, 상량문은 홍양호가 짓고 썼다. 정조는 행차시에 매번 활쏘기를 했는데, 1790년(정조 14)에 새로 만들어진 이 정 자에서 활을 4발 쏘아 4발 모두 맞히고는 이를 기념해 '득중정'이라고 한 것이다. 득중정은 "활을 쏘아 맞으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맞지 않으면 제후가 될 수 없다(射中 則得爲諸侯 射不中 則不得爲諸侯)"라고 한 구절에서 '득'자와 '중'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 집사청(執事廳)




집사는 주인을 모시고 그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들로서 행궁의 집사청은 궁궐의 액정서(국왕이 쓰는 붓과 먹, 벼루 등을 보관하며 대궐안의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 가지 설비, 비품을 관리하는 관청)와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죄익문 밖 동북 담 안에 있는데 1789년(정조 13)에 세웠다. 좌우 두 채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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