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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구석 168] 조선 말 화폐발행을 주관하던 관청 '전환국'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1-27 12:38:28
  • 수정 2024-04-10 11: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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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훈 기자] 전환국은 1883년(고종 20)에 설치된 상설 조폐기관으로, 당면한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통화정책을 정비하기 위해 화폐발행을 주관하던 관청이다. 전환국터는 그 전환국이 위치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세종대로 55에 해당한다.


설명 전환국(典圜局)은 조선 후기 화폐를 다량으로 발행하기 위해 근대식 기계를 도입해 1885년(고종 22)부터 1898년(고종 35)까지 근대식 백동전을 찍어내던 관청이다. 전환국은 조선 정부가 맞닥뜨린 재정위기를 보완하고, 문란해진 통화정책을 정비할 목적에서 1883년(고종 20) 독립된 상설조폐기관으로 설치됐다. 전환국(典圜局) 터는 그 전환국이 소재하였던 장소로 현재 서울특별시 세종대로 55에 해당한다.


처음 조선 정부는 전환국을 지금의 서울 태평로2가에 설치했으나 1892년(고종 29)에 인천으로 옮겼다. 이는 일본인의 영향력이 강한 인천에서 자본과 기술을 미끼로 조선의 화폐권을 장악하려는 일본의 속셈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1900년 전환국을 다시 용산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일본의 의도는 좌절됐다. 1898년(고종 35)을 전후로 자주적 독립과 자강에 대한 의지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가운데, 일본과 대립하던 러시아를 배경으로 일본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한 대한제국 정부의 조치였다.


광무 2년 두돈오푼 백동화 (1898)1904년 전환국이 폐지될 때까지 21년 동안 전환국에서 주조한 화폐의 총액은 1,896만 685환인데, 그중 백동화는 1,674만 3,522환으로 주조된 총액의 88%를 차지했다. 이런 백동화의 남발은 화폐제도의 정착을 어렵게 하고, 통화질서의 문란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으나 이러한 한계에도 전환국의 설립은 우리나라에 근대적 화폐제도를 도입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다. 결국 1904년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에 의해 전환국이 폐지됨으로써 통화 주권에 대한 대한제국 정부의 지배권 확보는 최종적으로 좌절됐다.


전환국 터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현재 태평로2가 삼성생명빌딩과 신한은행본점 사이에 세워져 있다.


# 백동화 위조 사건

 

참고로, 백동화 위조 사건을 살펴보자. 백동화는 1892년부터 1901년까지 발행한 구한말 동전이면서 조선 최후의 동전이었다. 대한제국 당시 은본위제로 바뀌면서 그에 따른 동전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유통이 됐는데 문제는 위조 동전이 시중에 너무 많이 풀리게 되면서 경제가 빠른 속도로 일본에 예속됐다. 우리 경제가 빠르게 일본 식민지화가 되는데 백동화 위조 사건이 있었다.


대한제국은 은본위제로 전환하면서 백동화를 주조했다. 그중에 2전 5푼 백동화가 유명했는데 25배 가치에 비해 제조 비용이 낮았기 때문에 조선 조정으로서는 발행이 쉬웠다.



근대적 화폐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위조 주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국내 사람들은 위조 화폐를 만들어 낼 수 없었지만 반면 일본 상인은 쉽게 위조 화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상인은 계속해서 백동화를 위조해서 주조했고, 그것을 시중에 풀어버렸고 조선 조정은 재정을 확충한다는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백동화를 주조하면서 시중에 너무 많은 백동화가 풀리게 된다.


시중에 많은 백동화가 풀리게 되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는 1902년 ‘한국의 백동화 위변조범 처벌령’까지 제정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으로 우리 경제를 망가뜨렸다.


이에 광무 2년인 1898년 백동화 위조를 두고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관계가 좋지 않을 정도였다. 서울 시내 유통된 화폐의 25% 정도, 평양에서는 80% 정도가 위조 백동화였다. 오죽하면 탁지부 재정 고문으로 고빙된 러시아 알렉시에프는 1898년 2월 22일로 은화 통용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과 영국의 압력에 의해 7월 11일 해제됐다.


결국 대한제국은 1901년 금본위제로 전환하고 그에 따른 화폐를 발행했다. 문제는 백동화를 회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일본이 화폐정리사업을 진행하고, 전환국을 없애버렸다. 이 과정에서 결국 대한제국 경제는 일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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