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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70]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 '보구녀관[普救女館]'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4-01-28 11:13:49
  • 수정 2024-04-10 11: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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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1887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이다. 


당시 한국 감리교의 의료선교에 대한 관리자였던 스크랜튼(Scranton, W. B.) 목사가, 한국에는 여성이 남자병원에 갈 수 없는 풍속이 있는 까닭으로, 한국 여성들만을 위한 병원설립기금의 청원을 미국 감리교 여성해외선교부에 제출했다. 이것이 승인되어 같은 해 10월에 미국 감리교 여의사인 하워드(Howard, M.)가 내한, 서울 정동(貞洞)에 있는 이화학당 구내에서 여성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보구녀관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부인병원이었다. 한옥을 개조해 병원으로 꾸몄기 때문에 입원실은 온돌방이었다.


이 때 서울에는 알렌(Allen, N.)이 경영하는 왕립병원이 있었고 또 스크랜튼 목사가 시작한 감리교 정동병원이 있었으나 여자들은 대부분 이 보구녀관에 와서 치료를 받았다. 처음 10개월 동안 하워드 여의사는 1,137명을 치료했고, 다음해에는 1,423명의 환자를 돌보았다. 이런 일들이 그녀에게 과로를 가져와서 건강을 해쳐 2년 만에 귀국하게 됐다.


고종은 이런 의료사업을 치하하고 격려하는 뜻으로 이 병원에 ‘보구녀관’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하워드의 후임이 오기까지 이 보구녀관은 스크랜튼 의사가 약 1년 동안 돌보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 '보구녀관[普救女館]'

1890년 10월에 하워드의 후임으로 셔우드(Sherwood, R.)가 내한해 처음 10개월 동안에 무려 2,350명의 여자 환자를 치료했고 그 밖에 82명에 대한 왕진을 실시, 35명을 입원 치료하게 하는 등 정열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녀는 보구녀관에 온 지 2년 만에 ‘여성을 위한 의료사업은 여성의 손으로’라는 구호 밑에 최초의 여성의학교육을 실시했다. 먼저 이화학당 학생 4명과 일본 여인 1명으로 의학훈련반(Medical Training Class)을 조직하고 이들에게 기초적인 의학훈련을 시켰다.


이런 훈련의 열매로서 이 중의 한 사람인 김 에스더(흔히 박 에스더라고도 부름)는 1896년 10월에 미국 유학의 길에 올라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The Woma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에 입학해 정식으로 의학수업을 받고 1900년에 이 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가 됐다.


그녀는 귀국 후 정동에 있는 보구녀관과 평양의 감리교 의료기관에서 일하면서 한국 여성을 위한 의료사업과 여성의 지위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편, 보구녀관은 1893년에 동대문 쪽에 동대문분원을 설치해 그 이름을 ‘볼드윈 시약소(Baldwin Dispensary)’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사는 볼드윈 여사(Baldwin, L. B.)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그녀가 최초로 한국여성운동과 한국여성의료사업을 위해 희사한 돈으로 지금의 동대문교회 근처의 토지와 가옥을 구입해 이곳에 약국을 개설하고 동대문교회를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이화여자대학교의과대학부속병원의 기초가 된 것이다.


감리교 의료선교의 동대문 진출은 당시 미국공사관을 비롯한 외국공관들이 있어서 외국인지대로 알려졌던 정동이 한국인들의 출입에 불편하므로 정동에 있으면 한국인들에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스크랜튼이 내린 때문이었다. 또 한편, 1902년에 내한해 보구녀관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하던 에드먼드(Edmunds, M. J.)는 정동에 위치한 보구녀관에 1903년 간호원양성소(The Nurses’ Training School)를 설립해 한국인 간호원 양성에 힘썼다.


이 양성소는 1912년 동대문병원으로 이전해 간호교육을 이행했다. 그때까지 보구녀관 안에 있는 간호원양성소에서 60명의 간호원을 배출해 우리나라 근대 초기의 의료인 양성에 크게 공헌했다.


현재의 이화대학 병원그러는 동안 정동에 있는 이화학당이 커지고 보구녀관도 현대식으로 개조해야 했기 때문에 1908년에 지금의 동대문 이화여자대학교의과대학부속병원 자리에 현대식 최대 규모의 부인병원 건물을 착공해 1912년에 준공, 그 웅장한 모습은 일약 서울 장안의 명물이 되었다.


이 병원의 이름을 처음에는 ‘해리스 기념병원(The Lillian Harris Memorial Hospital)’이라고 불렀다. 이는 1897년 10월에 내한해 5년간 서울과 평양에서 한국여성의 병치료를 담당하다가 평양에서 발진티푸스에 걸린 여자를 치료하던 중 결국 그 병에 걸려 1902년 5월에 사망한 해리스양을 기념한 것이었다.


이후 정동에 있던 보구녀관이 동대문으로 이전되어 이 병원에 통합되면서 1930년부터는 ‘동대문부인병원’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1945년이화여자대학교에 행림원(杏林院) 의학부가 창설됨에 따라 이 동대문부인병원은 김활란(金活蘭) 총장의 노력에 의해 이화여자대학교부속병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사진-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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