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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74] 한국은행 앞에 있는 3.1독립운동기념 터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4-01-29 22:25:01
  • 수정 2024-04-10 1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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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한국은행 앞에 있는 3.1독립운동기념(三一獨立運動紀念) 터는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이 모여 제1차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했던 곳이다.


남대문로2가의 3.1독립운동기념(三一獨立運動紀念) 터는 3.1독립운동 당시 제1차 독립만세 시위가 있던 곳 중의 하나이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 중 지방에 체류하던 4인을 제외한 29인이 모여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직후 파고다공원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시가로 나가 시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남녀학생들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전국에서 상경해 대기하던 시민과 민중이 가담하여 그들의 독립시위의 의지와 열기는 가열됐다.



학생과 시민단체의 시위경로는 파고다공원에서 종로를 거쳐 서울역전.의주로.정동.미국영사관.이화학당 등을 거쳐 다시 광화문.서대문.프랑스영사관.서소문.소공동으로 진행됐다. 그러던 중, 당시 조선은행 앞 광장에서 일본 경찰들의 무차별 구타와 발포로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전열을 정비해 광화문을 거쳐 대한문 앞에서 또 다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조국독립의 염원을 끝까지 이어갔다. 이 열기는 차츰 전국으로 확대 파급돼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국은행 앞에 있는 3.1독립운동기념 터 주변 전경

한국은행 앞에 있는 3.1독립운동기념 터 주변 전경3.1독립운동 이후 3개월 동안의 전국 독립만세 시위운동 상황을 보면, 집회 횟수는 1,542회에 이르고, 참여인원수는 202만 3,089명에 달했다. 이 3.1만세운동으로 사망자 수는 7,509명에 달했고, 부상자 역시 1만 5,961명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일본경찰에 체포된 인원수만 4만 6,948명이고, 소각당한 교회당이 47개소에 학교 2개교와 민가 715채에 달했다. 이때 서울의 10개교에서 참여한 여학생의 인원 또한 1,929명에 이르고 있다.


세계평화와 민족의 자주독립을 주창하면서 우리 민족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어선 3.1독립운동을 기념하는 표지석이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9 한국은행 좌측 지하보도 앞에 세워져 있다./사진-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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