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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93] 한민족의 독립 선언-비폭력만세운동을 벌인 것을 기념해 건립한 '3.1독립운동기념탑'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4-02-01 19:58:42
  • 수정 2024-04-10 2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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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남산공원 안에 있는 3.1독립운동기념탑은 1919년 3월 1일에 일제의 지배에 저항해 한민족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만세운동을 벌인 것을 기념해, 1999년 3월 1일 만세운동 80주년을 맞아 3.1독립운동기념탑건립위원회에 의해 건립됐다.


일본은 1905년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의 동의 없이 을사오적 대신들의 동의만 얻은 상태였지만 을사늑약을 맺었다고 덕수궁 중명전에서 선언하고선 조약 내용을 강제 집행했다.


고종황제는 1907년 6월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네덜란드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보내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려 했으나, 열강들의 외면과 일본, 영국의 방해 때문에 실패했다.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이 외교권을 일본에 모두 이양한다는 을사늑약 내용을 어긴 것이라면서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킨다. 



이로 인해 고종 황제는 덕수궁 함녕전에 갇히고 순종이 황제로 등극한다. 1910년 이완용, 박제순을 필두로 한 친일내각을 통해 한일병합조약 합의를 맺고 순종 앞에서 형식상의 어전회의를 열어 결의한다. 이후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일본은 한일병합을 전후해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면서 민족문화를 말살시키고 경제를 침탈했다. 


민족자본가 계급은 민족자본의 성장을 억제한 회사령(1910)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농민의 경우 토지조사사업(1910~1918)으로 조상에게 물려받은 토지를 빼앗겼고, 이후 도시로 흘러들어 노동자가 된 농민은 일본인 노동자의 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과 장시간 노동, 비인간적 대우, 민족차별 등으로 끼니를 거르는 처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했다.



1919년, 고종황제의 독살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자 수많은 민중들이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3.1만세운동을 주도한 33인은 수많은 민중들이 장례식에 몰릴 것을 예상하고,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 오늘날 종로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읽고 만세삼창을 했다. 이와 비슷한 시각 종로 탑골공원에 모인 5,000여 명의 학생들도 팔각정에 올라선 독립운동가 정재용의 독립선언서를 듣고 만세를 부른 후 함께 시위에 나선다. 


이들 시위 행렬에 수만의 서울 시민들이 참여했다. 시위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몇 개월에 걸쳐 만세 운동이 지속됐다. 당시 시위운동 상황을 보면 집회회수 1,542회, 참가인원수 202만 3,089명이나 됐으나,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검거된 인원이 5만 2,770명이고 교회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715채가 불에 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3·1운동은 세계 최초의 비폭력 평화운동이며 세계 최초의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종교연합운동이다. 그리고 중국의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무저항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편, 3.1독립운동기념탑(三一獨立運動紀念塔)은 광복회(3.1독립운동기녑탑 건립위원회)에서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조국과 민족의 비폭력 독립운동을 전개한 3.1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건립한 기념비로, 남산공원 내 국립극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199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제50주년 기념일에 착공해, 3.1독립운동 제80주년 기념일인 1999년 3월 1일 준공했다. 기념탑에는 3.1독립선언서, 취지문, 건립개요, 헌시를 새겼다.


3.1독립운동기념탑(三一獨立運動紀念塔)은 광복회(3.1독립운동기녑탑건립위원회)에서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세계 최초의 천도교.기독교.불교의 종교가 연합해 비폭력으로 전개한 3.1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건립한 기념비이다. 






기념탑의 높이는 19.1m로 이 숫자는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단(基壇) 오석판(烏石板)에는 비폭력 평화운동정신인 3.1독립선언서를 새겼다. 전면에는 원문, 좌.우측에는 한글 및 영문, 뒷면에는 기념탑 건립 취지문과 건립 개요, 헌시를 새겼다. 탑의 뒷면에는 민족의 힘이 평화운동으로 승화되어 일제침략에 항거했던 상황을 부조로 설치했고, 좌측에는 민족의 수난과 투쟁의 상을 환조(丸彫)로, 우측에는 평화와 민족영광의 상을 환조로 설치했다.



기념탑에는 하늘(天).땅(地).사람(人)과 천도교, 기독교, 불교 연합의 상징인 3개의 기둥축을 세워 우주를 의미하는 삼태극(三太極)을 원구로 구성하고, 그 위에 동서남북 4방위를 조형화해 우주로 비상하는 민족웅비(民族雄飛)의 상을 설치했다.


3·1독립운동기념탑은 남산공원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2002년 11월 2일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10-1-6호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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