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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03] 남별궁 터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4-02-04 05:20:36
  • 수정 2024-04-10 21: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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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남별궁(南別宮) 터는 조선 태종의 둘째딸 경정공주(慶貞公主)가 출가해서 거주하던 저택이 있던 곳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이다. 경정공주의 남편은 개국공신(開國功臣) 조준(趙浚)의 아들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대림(趙大臨)이다.


1583년(선조 16) 선조는 이 집을 크게 수리해 셋째아들 의안군(義安君)에게 주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왜장 우키타[宇喜多秀家]는 처음엔 종묘(宗廟)에 주둔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병사들이 갑작스럽게 참혹한 죽음을 맞아 이곳으로 옮겼다. 우키타는 이듬해 4월 서울에서 철수할 때까지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참전해 서울을 수복했을 때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이곳에 머무르기도 했다. 1593년 10월 선조가 환도한 뒤에는 자주 이곳에 나가 명나라 장수를 접견했는데, 여기에서 왕의 거소(居所)를 의미하는 별궁, 즉 ‘남별궁(南別宮)’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남별궁은 이후로도 계속 왕이 중국의 사신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1778년(정조 2)에는 빈객(賓客) 접대와 연향(宴享) 등의 일을 맡아보는 관서인 예빈시(禮賓寺)를 이 남별궁 안으로 옮겨 설치하기도 했다.



남별궁에는 청나라 사신이었던 덕패(德沛)가 누액(樓額)을 쓴 명설루(明雪樓)가 있었고, 칙사(勅使)들이 지은 시도 다수 현판에 새겨져 있었다. 후원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고, 동구(洞口)에는 아름드리 통나무의 두 기둥을 세운 큰 홍살문을 설치하기도 했다.


189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면서 여기에 환구단(圜丘壇)을 세웠다. 하지만 1913년에 이를 헐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세웠다./사진-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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