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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01] 가회동 백인제 가옥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2-04 03:26:39
  • 수정 2024-04-10 21: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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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대문간채/대문간채는 조선 사대부가의 솟을 대문 형식을 그대로 채용했고, 전통한옥의 격조 높은 대문을 연상시킨다.  


[박광준 기자]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으로, 1977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북쪽 가회당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한옥이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m2의 대지 위에 당당한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아담한 별장채가 들어서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수용해,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 면에서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건평 47.53평, 대지 737평의 목조가옥으로 1913년 6월에 건축됐다. 이완용의 외조카 한상룡이 압록강의 곰솔[黑松]로 지었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당당한 사랑채/사랑채는 북촌의 높은 대지에 위치해 있고, 건립 당시부터 한상룡을 비롯한 여러 소유자들이 사회적 활동의 배경으로 삼았다. 





높이 46cm의 화강암으로 두벌대 기단을 쌓고, 화강암으로 잘 다듬은 육모뿔형 주춧돌 위에 높이는 3.1m의 높은 각기둥을 세웠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은 기둥의 높이가 보통 2.5m인데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것이기 때문에 건축법의 규제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별동으로 분리돼 있는 서울지방의 상류주택과는 달리 한동으로 되어 있다.


행랑채 마당에서 사랑채 마당으로 출입하는 일각대문의 의장수법은 특이하다. 또한 사랑채 뒷벽에서 안마당 쪽으로 보이는 화초담은 태극문양과 완자문양으로 잘 꾸며져 있고 합각부의 문양도 잘 보존되어 있다.


아담한 별당채/별당채는 백인제 가옥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북촌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높은 대지 위에 솟을대문과 행랑채가 있고 행랑마당에 들어서면 앞쪽으로 상당히 높은 기둥으로 일부 2층으로 된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져 있다. 솟을대문 좌우에는 광과 부엌이 있고 그 앞에 담장이 있다. 이 담장에 설치된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과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에는 네 칸의 방과 대청이 있고 대청과 방은 앞뒤에 퇴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 이 사랑채는 다시 긴 툇마루로 안채와 연결되고, 그 사이에 작은방이 있다.


안채는 행랑마당의 다른 쪽으로 난 중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다.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이 모두 남향에 일자로 배치되고 여기에 퇴칸과 기타 크고작은 방들이 딸려 있다. 뒤뜰 북서쪽에 방과 마루로 된 별당이 있다.





1907년 경성박람회 때 서울에서 처음 소개된 압록강 흑송을 사용해 지어진 백인제 가옥은 동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과 구별되는 여러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한 다른 전통한옥들과는 달리 두 공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을 두거나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많이 사용한 것은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안채의 일부가 2층으로 건축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전통한옥에서는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백인제 가옥만의 특징이다. 


넉넉한 안채/안채는 앞마당을 중심으로 서울의 넉넉한 근대 한옥 모습을 보여주며, 백인제 가옥의 가족들이 주로 생활했던 공간이다. 


백인제 가옥은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건립한 이래 한성은행, 최선익 등을 거쳐 1944년 백인제 선생에게 소유권이 이전됐다. 한성은행이 사용했던 시절에는 천도교 단체가 가옥을 임차해 지방에서 상경한 교도들의 숙소 겸 회합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소유자인 최선익은 개성 출신의 청년 부호로, 1932년 27세의 나이로 중앙일보(1933년 조선중앙일보로 개칭)를 인수해 민족운동가인 여운형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 언론사에 중용한 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1944년 이후에는 당시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였던 백인제 선생과 그 가족이 소유자였고, 건축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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